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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윤영호의 퍼스펙티브

코로나로 정신·신체 위기…건강 친화적 사회 절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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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포스트코로나 시대 건강혁명

윤영호 서울대 기획부총장·서울대 의대 가정의학과 교수

윤영호 서울대 기획부총장·서울대 의대 가정의학과 교수

인공지능(AI) 챗봇 챗GPT에게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건강에 어떤 위기가 예상되나”고 물었다. 챗GPT의 답변은 이랬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예상되는 건강 문제 중 일부는 불안·우울증과 같은 정신 질환 증가와, 장기간의 좌식 행동과 영양 부족과 관련된 신체 건강 문제를 포함한다. 또 팬데믹 기간 동안 많은 의료 시스템이 축소되었으며, 복구하는 데 시간이 걸리므로 의료 서비스 이용에 잠재적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완벽하지 않지만 놀라운 답변이다. 코로나19 팬데믹이 지나더라도 건강 위기가 오리라는 사실은 일반인과 기업도 알고 있다〈그래픽 1〉. 코로나19로 인해 우리 사회는 다양한 분야에서 파괴적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코로나 팬데믹이 끝나고 우리가 만나게 될 현실은 단순히 코로나 이전으로의 회귀가 아니다. 코로나 팬데믹은 건강에 중요한 의료 체계, 건강 습관, 사회 환경도 파괴했다. 그러나 코로나 팬데믹이 가져온 건강 위기는 건강의 파괴적 혁신의 기회다. 또다시 올, 더 큰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새로운 미래의 삶을 위해 건강 패러다임의 대전환이 필요하다.

그래픽1=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그래픽1=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코로나 사태가 가져온 건강 위기는 파괴적 혁신의 기회
신체뿐만 아니라 정신적·사회적으로도 완전해야
기업은 건강경영으로 위해요소 없애고 직원 건강 증진
개인은 서로 책임지는 건강공동체 노력에 참여해야

임직원 건강에 기업 책임 커

건강 위기로부터 과거로의 회복이 아니라 건강 습관과 환경의 대전환인 ‘건강혁명’이다. 건강혁명에는 4대 요소가 필요하다. 첫째, 동물적 존재를 넘어선 인간의 전인적(全人的) 건강이다. 건강혁명을 위해서는 먼저 건강에 대해 새롭게 이해하고 무엇이 건강을 결정하는지를 알아야 한다. 세계보건기구(WHO)는 1948년 이미 건강을 “단순히 질병이나 허약함이 없는 상태만이 아니라 신체적, 정신적, 사회적으로 완전히 안녕한 상태”라 정의했다. 여기에 영적 건강을 포함한 전인적 건강으로 이해해야 한다.

그래픽2=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그래픽2=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둘째, 기업의 건강경영이 필요하다. WHO는 2008년 유전 5%, 의료 10%, 습관 30%, 사회 환경 55%가 건강을 결정한다고 발표했다〈그래픽 2〉. 건강을 위한 사회 환경의 변화가 필수적이다. 사회 환경 중 현대인이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직장은 건강에 신체적·정신사회적 건강에 위해(危害)가 되기도 하지만 건강을 향상하는 터전이다. 기업이 구성원들의 건강을 위해 건강 경영을 실천한다면 과로사나 직장 괴롭힘으로 인한 자살이 줄어들고 만성질환 관리가 잘 되어 중대재해처벌법에 의한 처벌도 피할 수 있다.

그래픽3=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그래픽3=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셋째, 건강 자산 개념이다. 개인의 금융 자산 관리만이 아니라 건강 자산 관리도 필요하다〈그래픽 3〉. “돈을 잃으면 조금 잃은 것이고, 친구를 잃으면 많이 잃은 것이며, 건강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은 것이다”라는 말이 있듯 특히 노후에는 건강 자산이 중요하다. 우리 국민은 건강 자산 가치는 연간 소득보다 3.4배나 가치가 있다고 평가한 연구 결과도 있다.

넷째, 건강 민주화다. 자신과 국민의 건강에 대한 건강 민주화를 위해서는 국민의 책임과 참여가 필수다. 국민 각자의 건강만을 돌보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건강을 책임지며 서로의 건강을 위한 건강공동체적 노력에 참여해야 한다.

삶의 목표 있는 사람은 사망 위험 낮아

1990년 의사가 된 후 33년 동안 임상 경험, 연구, 정책 등의 활동으로 깨달아 확신하게 된 신념이 있다. ‘국민 삶과 행복의 근본은 건강’이라는 믿음이다. 필자는 이를 ‘국민건강근본주의’라고 부른다. 국가의 주인은 국민이다. 건강은 생명 유지의 필수 요건이다. 국가는 국민의 건강을 책임질 의무가 있고, 국민은 자신의 건강을 요구할 권리가 있다. 국민 건강이 국가 자산이며 경쟁력이다. 비록 코로나19 위기를 겪었지만 100세를 살면서도 건강할 수 있는 미래를 기대한다. 그러나 아직 우리 사회는 과거의 패러다임에 묶여 있다. 인간, 사회, 국가 발전에 따라 친건강 문화로 바뀌어야 한다. 건강 현실에 대한 총체적 진단을 통해 건강공동체의 미래지향적 패러다임의 관점과 방향을 모색해야 한다. 바로 ‘국민건강근본주의’에 기반을 둔 건강혁명이다.

전쟁과 지진만이 공포를 몰고 오는 게 아니다. 성수대교와 삼풍백화점 붕괴, 대구 지하철 화재, 여객기 추락, 세월호 침몰, 이태원 참사와 같은 사고도 우리를 두렵게 만든다. 코로나19의 대확산은 평소 건강 관리를 잘하더라도 예기치 못한 바이러스 감염으로 갑작스럽게 죽을 수 있다는 공포감을 일으켰다. 위험을 피할 수 없는 불가피성, 예측할 수 없는 불확실성, 사회와 개인이 과연 최선을 다하고 있는지에 대한 불신으로 두려워하고 있다. 그러나 인류에게 희망은 있다. 코로나19 팬데믹 3년 동안 겪었던 경험으로 미래의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과거의 건강 위기, 현재의 코로나19 팬데믹 위기, 미래의 더 큰 위기를 진단하고 대비해야 한다. ‘삶의 목적 추구’ ‘긍정적 태도’ ‘사회적 관계’ ‘사랑과 봉사’에 의한 전인적 건강을 통해 위기를 더 건강하고 나은 삶을 위한 기회로 삼을 필요가 있다. 그렇게 사는 사람들은 건강과 삶의 질이 더 좋으며, 사망률도 감소한다. 삶의 목표가 있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사망률이 60% 줄어든다. 긍정적인 생각은 사망률을 30%, 봉사는 20% 감소시킨다.

건강 불공정은 심각한 사회적 책임

건강은 개인적 자산과 노력뿐 아니라 사회 환경의 영향도 크게 받다 보니 같은 시대를 살면서도 소득 수준과 생활 지역에 따른 ‘건강의 불공정’이 나타난다. 유전과 습관의 차이도 있지만 소득 수준이 주거와 근무 환경을 결정하며, 생활 지역에 따른 의료 접근성 차이를 보인다. 소득이 낮으면 좋은 건강 정보의 접근성이 떨어지고, 건강 습관도 나빠진다. 국가 경제 수준이 건강보험과 같은 사회보장제도와 주거·근무 환경을 결정하므로 국가 간 건강의 불공정도 나타난다. 코로나 팬데믹 때문에 격차가 더 벌어졌고 불공정 양상이 가속화됐다.

WHO는 사회적 불공정이 건강 불공정을 유발하고 있음을 인식했다. “부당하게 권력과 부, 기타 필요한 사회적 자원의 분배와 접근을 용인하거나 허용하는 사회 규범과 정책·관행이 일상생활 환경에서 체계적으로 불공정을 초래한다”고 지적했다. 변화와 발전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 사회적 건강 인프라가 초래하는 건강 불공정은 심각한 사회적 책임이다. 개인·시민사회·기업·지자체·정부 모두 하나 된 건강공동체가 필요하다. 개인적 차원의 건강 노력도 중요하지만, 사회의 건강 환경을 변화시키는 건강공동체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 나, 가족, 친구, 사회의 건강권을 보장하고 건강의 불공정을 해소할 ‘공정한 건강사회’를 실현하자.

정부의 저소득층 의료 지원과 질병 예방, 건강 증진 강화 노력도 중요하지만 IT 전문가들과 플랫폼 기업들도 건강 불공정을 해소할 수 있는 효과적인 길을 모색해 주기를 기대한다. 세계를 되짚은 AI 혁명에 따른 기술혁신을 건강 위기 극복에 활용하고 미래 건강 위기를 예측해 대응 방안을 설계함으로써 전인적 건강으로 승화시키며 건강 불공정을 해결하는 대전환의 희망이 될 수 있다.

건강혁명, 지금 시작해야

지금 인류는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한 건강 위기에 직면해 있다. 겪지 않았으면 좋았겠지만 피할 수 없는 운명이었기에 오히려 건강 위기의 현실을 진단하고 발전시키기 위한 기회로 삼아야 한다. 인류는 산업혁명 이후 급속도로 발전했으나 발전에 가려 건강의 진실을 외면하고 있었다. 코로나를 계기로 암·심혈관질환·호흡기질환 등 심각한 만성질환과 정신적·영적으로 건강하지 못한 삶 때문에 고통을 받으며 가까스로 버텨온 많은 국민의 건강 현실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그나마 유지해왔던 운동, 체중 유지, 대인 관계, 긍정적 생각, 주도적 삶, 봉사 활동같이 건강과 수명에 중요한 건강 습관마저 무너졌다. 인류가 경험해 보지 못한 장수 시대와 함께 맞이하는 신종 감염병과 함께 만성질환, 정신질환의 삼중 고통과 위기는 건강과 삶에 대한 근원적 질문을 던진다.

인간은 수백만 년 동안 지구 환경에 적응해 살아왔지만, 인간 스스로 만든 산업화에 따른 급속한 생활 변화에는 유전적으로 진화하지 못했다. 기술·과학·문명 발달로 위생이 개선됨에 따라 생활은 편리하고 안전해졌고 수명도 증가했다. 하지만 주거와 근무 환경은 인간의 정신적·사회적 건강을 악화시킨 부분이 있다. 산업혁명·과학혁명·인지혁명의 변화 속도를 감당할 수 있도록 현대인의 건강 유전이 진화하지는 못했기 때문이다. 기대수명은 늘고 있지만, 건강수명은 뒤따르지 못한 이유다. 환경과 유전의 부조화가 낳은 불행과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한 건강 위기에서 일어설 때 주변을 둘러보고 건강 불공정의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웃의 건강도 함께 챙기는 건강혁명을 시작할 때다.

윤영호 서울대 기획부총장·서울대 의대 가정의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