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이영렬의 이코노믹스

한류팬 10년 새 17배…‘한류 경제’에 날개 달자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4면

왜 지금 K콘텐트인가

이영렬 서울예대 영상학부 교수

이영렬 서울예대 영상학부 교수

‘K콘텐트, 수출 전선의 구원투수’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23일 주재한 ‘제4차 수출전략회의’에서 문화체육관광부가 보고한 제목이다. 문체부는 K콘텐트 수출지역을 늘리는 방안 등을 통해 2027년 세계 콘텐트 4강에 오르겠다고 발표했다. 전 세계를 휩쓰는 한류의 동력인 K콘텐트 수출은 2021년 124억5000만 달러(약 14조3000억원)로 코로나 팬데믹 속에서도 글로벌 저성장을 뚫고 그 전년보다 4.4% 증가했다.

2027년 세계 콘텐트 4강 청사진

K팝·K방송·K영화·K게임·K웹툰 같은 콘텐트 수출액은 전통적 수출 품목이었던 TV·냉장고·세탁기 등 가전산업 수출 규모를 넘어설 정도로 성장했다. 콘텐트 수출의 연관 효과도 상당하다. 콘텐트 수출이 1억 달러 늘어날 때 화장품·패션·식품 등 소비재 수출이 1억8000만 달러어치나 증가하는 것으로 분석된다. 윤 대통령이 “K콘텐트와 패션·관광·식품·IT를 연계해 달라”고 말한 배경이다.

문화콘텐트 수출, 가전보다 커져
화장품·패션·식품 등 수출 견인

‘고용 없는 성장’ 시대 효자 역할
관광객 유치 기회 적극 못 살려

‘한류 플랫폼’ 만들어 정보 축적
문화와 경제 시너지 극대화해야

이영렬의 이코노믹스

이영렬의 이코노믹스

문화콘텐트 산업은 고용 창출 역량이 뛰어난 분야기도 하다. 2019년 고용계수(최종 수요가 10억 원일 경우 직·간접 발생하는 취업자 수)는 12.4명으로 자동차(6.8명)나 반도체(3.0명)보다 높다. 제조업 투자가 늘어도 자동화 등으로 인해 고용은 늘지 않는 ‘고용 없는 성장’ 시대의 효자인 셈이다.

현재 한류는 K팝·드라마·영화·게임·웹툰 같은 장르를 넘어 뷰티·패션·식품의 인기로 이어지더니 한식과 한국어 배우기 열풍을 일으키며 전 세계로 뻗어가고 있다.

한류는 코로나 기간에 유튜브를 타고, 온라인 공연을 업고, 넷플릭스에 실려 비상했다. 2022년 K팝은 전 세계에서 8000만장 이상의 앨범을 팔았고, 2021년 12월 기준 전 세계 한류 팬은 10년 전보다 17배 늘어난 1억5660만 명(116개국)으로 조사됐다. 넷플릭스에서 드라마 ‘오징어 게임’ ‘킹덤’ 등이 성공한 이후 K드라마·예능은 꾸준히 넷플릭스 시청 상위에 자리하고 있다. 또 지난해 미국 뉴욕의 한식당 3곳이 미셸린 가이드 스타를 받는 등 한식도 선풍을 일으키고 있다. 한류의 힘이 한국의 국가 이미지를 긍정적으로 바꿔놓은 영향도 있을 것이다.

BTS 공연 1회당 1조원 효과

외신에서는 세계가 부러워하고 있는데 한국만 모르고 있는 게 한류라고 보도할 만큼 한류 열기는 국내보다 외국에서 더 뜨겁다. 최근 연예기획사 SM 엔터테인먼트의 경영권 분쟁이 일자 미국의 CNN·월스트리트저널이 주요 뉴스로 보도할 정도가 되었다.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그런데 이러한 유례 없는 한류의 기회가 한국으로의 한류 관광, 연관 상품의 수출, 해외 투자 유치 등에 100%의  잠재력을 발휘하고 있는 것일까. 한류가 수출 부진과 내수침체의 한파에 직면한 한국 경제에 더 강력한 모멘텀이 될 수는 없는 것일까.

이미 몇 가지 힌트가 있다. BTS가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지난해 4월 나흘 동안 연 공연·이벤트에 30만 팬이 몰려 도시 전체를 BTS 보랏빛으로 물들였다(중앙SUNDAY 2022년 4월 14일). BTS는 이 공연으로 총 1315억원을 벌어들였는데, 공연 관람 때 사용하는 응원봉 매출만 153억원이었다. BTS가 좋아한다는 메뉴인 김밥·떡볶이·갈비찜 등으로 구성된 코스 가격은 6만원대였다고 한다. 라스베이거스 시 정부 관계자들은 일자리 창출 효과에 환호하며 트위터 메시지를 올리고 네바다주 의원은 BTS 측에 감사 인사까지 보냈다고 한다.

이런 공연이 라스베이거스가 아닌 한국에서 열렸다면 어땠을까. 한국문화관광연구원에 따르면 BTS가 국내에서 코로나 이전 수준으로 관객을 채워 공연할 경우 보통 3일간 이뤄지는 공연 1회 당 외국인 관람객의 관광 소비 등을 포함하여 최대 1조원의 경제적 파급 효과가 나온다고 한다.

국내에는 BTS 뒤를 따르는 블랙핑크, 트와이스, 스트레이 키즈, NCT, 세븐틴 등 실력파 K팝 그룹이 즐비하다. 그러나 거의 모두 해외 순회공연 계획만을 잇따라 발표하고 있어 아쉬울 따름이다.

한류 열기에 못 미치는 외국 관광객

최근 수년 사이 넷플릭스를 사로잡은 K드라마가 수십 편이건만 그 촬영지로 외국인 관광객을 유치하는 일도 부진하다. 코로나 발생 전이었던 2019년, 드라마 ‘겨울연가’의 촬영지였던 남이섬에 외국인 관광객이 100만 명 몰렸던 것을 떠올려보면 K콘텐트와 관광객 유치 연계는 실현 가능성이 큰 모델이다.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한국관광공사가 코로나 엔데믹을 맞아 2023~2024년을 한국 방문의 해로 선포하고, K컬처와 관광의 융합과 함께 관광객 서비스 획기적 개선 등을 담은 제6차 관광진흥계획을 지난해 12월 발표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일 것이다. 그러나 관광업계의 실제 움직임은 더디기만 하다.

지난 1월 국내로의 외국인 입국자는 43만4429명이었으나 해외로 나간 관광객은 그 4배가 넘는 178만 2313명에 달했다. 코로나가 끝나면서 관광 수요가 폭발하고 있지만 현장에선 한국인 해외 관광이 외국인 관광객 유치를 압도하고 있다.

한류 관광과 한류 관련 제품 수출 등이 획기적으로 늘어나게 하려면 부처별로 기존에 하던 방식을 조금씩 개선하는 방식으로는 어렵다. 그래서 필자는 정부가 나서 ‘한류 경제’라는 큰 깃발을 내걸고 민간에 분산된 힘을 결집하여 국가적 에너지로 문화·경제·외교통상 등 정책을 통합적으로 추진하자고 제안한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이다.

‘한류 경제’는 ‘한류라는 글로벌 문화 현상을 지렛대로 삼아 이를 경제 영역에 결합하여 일자리 창출과 경제성장을 이루자는 성장 정책’이다. 정책의 세 축은 한류의 동력인 문화콘텐트 산업의 강화, 국내로의 한류 관광 유입, 해외 투자 유치 및 수출 확대이다. 이명박 정부에서 ‘녹색 성장’의 기치를 내걸고 에너지와 친환경 사업을 적극적으로 육성했던 것을 생각하면 된다. 이번엔 한류의 인기를 타고 경제의 큰 바다로 나가 성장 동력을 만들자는 것이다.

‘100년 한류’의 길, 마스터플랜 짜야

그 방식은 정부가 구심점이 되어 정책 컨트롤 타워를 만들고 현재 민간과 정부에 흩어져 따로따로 이뤄지고 있는 한류 관련 활동들을 통합하고 조정해 정책 목표를 실현하자는 것이다. 한 예로 문화·경제 한류의 모든 정보가 공유되는 ‘한류 밸리’ 같은 플랫폼을 만들고, K팝·드라마·게임 등 콘텐트 창작업체는 물론 여행사·호텔·종합상사·식품업계·정부 부처·지방자치단체 등 관련 기관들이 이 플랫폼에 모여 정보를 주고받고 협업을 통해 사업의 실효성을 높여가자는 개념이다.

무엇보다도 한국과 K콘텐트를 세계 문화 콘텐트산업의 허브가 되도록 하겠다는 담대한 목표 아래 현재의 한류가 ‘100년 한류’로 이어지게끔 마스터 플랜이 수립되어야 한다. 이 계획은 초등학교 예술교육부터 창작자에 대한 금융·세제 지원과 4차산업 융합까지를 광범위하게 포함해야 한다. ‘정부가 지원하되 간섭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삼아야 함은 물론이다. 문화 콘텐트를 기함(旗艦)으로 삼아 한류 관광과 해외 진출을 양 날개로 펴고 일자리 창출과 경제성장의 대양으로 나가는 ‘한류 경제’ 정책이 마련되기를 기대한다.

패션·관광강국 프랑스, 그 원동력은 문화

한류가 관광·패션·음식 등 산업 전반으로 확대되는 모습과 비슷하게 보이는 경제구조를 가진 나라가 프랑스다. 프랑스는 원전·고속철도·항공·자동차 등 제조업 강국이면서도 ‘문화의 힘’으로 경제를 이끌어가고 있다. 프랑스는 문화유산을 포함한 문화예술의 강점을 관광·패션·명품·음식 등과 연결하여 모두 세계 최고 수준으로 올려놓았다.

2019년 외국인 관광객 9000만명으로 세계 1위고, 패션산업은 국내 총생산(GDP) 기여도가 3% 정도에 달해 자동차·항공산업보다 비중이 크다. 또 문화적 전통과 예술을 접목하여 명품(럭셔리) 산업을 세계 최고로 만들었다. 루이뷔통·샤넬 등 전 세계 주요 럭셔리 브랜드 270여 개 가운데 130여 개가 프랑스 브랜드다.

프랑스는 정책적으로 문화와 경제의 연결을 다져왔다. 프랑스 재정부와 문화부는 2014년 1월 공동으로 ‘프랑스 경제를 위한 문화의 효과’라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2021년 6월 ‘향후 10년의 관광전략 회의’에서 “세계 1위 여행 방문지로서 프랑스의 지위를 굳힌다”고 선언했다. 세계 럭셔리와 관광의 수도인 파리는 하루아침에 이뤄진 게 아닌 것이다.

영국도 2008년 고든 브라운 총리가 ‘창조적 영국’을 내걸고 영국 제조업을 대체할 신성장 동력으로 영상·패션·게임 등 창조산업 육성을 선언한 이후 2011~2019년 13개 창조산업의 성장률이 경제성장률의 2배에 달하는 성과를 냈다. 리시 수낵 총리는 지난 1월 창조산업의 성과를 높이기 위해 이를 관장하는 디지털문화미디어스포츠부(DCMS)의 디지털 업무를 과학혁신기술부로 옮기는 조직개편을 하는 등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영렬 서울예대 영상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