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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은주의 아트&디자인

카텔란, 미술관은 ‘그런 곳’이 아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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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이은주 기자 중앙일보 문화선임기자
이은주 문화선임기자

이은주 문화선임기자

미술관 풍경이 등장하는 영화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습니다. 그중에서 늘 먼저 떠오르는 영화는 ‘바스키아’(줄리앙 슈나벨 감독·1996)입니다. 영화는 어린 소년이 엄마 손을 잡고 피카소의 그림 ‘게르니카’를 바라보던 뒷모습에서 시작됩니다.

푸에르토리코 출신인 바스키아의 어머니는 아들 손을 잡고 뉴욕 곳곳의 미술관을 즐겨 찾았다지요. 미술관은 그의 어머니가 고단한 삶에 위로를 받기 위해 달려간 마음의 안식처였습니다. 훗날 예술가가 될 아들은 미술관이 사람들에게 어떤 힘을 줄 수 있는지 그때 알았습니다.

지금 부산시립미술관 전시 ‘무라카미좀비’의 작가 무라카미 다카시(61)의 어머니에게 미술관은 조기 교육 현장이었습니다. 다카시는 여러 인터뷰에서 “1970년대 초부터 어머니 손에 끌려 전시회에 다녔다”고 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내게 미술관은 지루한 장소였다”는 그가 지금은 많은 사람을 미술관으로 끌어들이는 작가가 되었습니다.

마우리치오 카텔란의 대리석 조각 ‘숨’. 이은주 기자

마우리치오 카텔란의 대리석 조각 ‘숨’. 이은주 기자

최근 리움미술관(이하 리움)이 관람객으로 붐비고 있습니다. 1월 31일 이탈리아 작가 마우리치오 카텔란(63) 전시가 개막했고, 지난달 28일 ‘조선의 백자, 군자지향’ 전까지 개막하며 평소와 달리 활기가 넘치고 있습니다. 리움이 팬데믹 이전인 2017년부터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였다는 점을 고려하면 오랜만의 성황입니다. 2021년 10월 재개관 직후에도 이 정도는 아니었으니까요.

이 풍경에 ‘미술계의 악동’ 카텔란 작가도 한몫했습니다. 전시 준비를 위해 리움을 찾았던 작가는 럭셔리한 대리석 기둥과 바닥의 로비를 굉장히 맘에 들어 하지 않았다고 하죠. 〈중앙일보 2월 6일자 18면〉 그는 번들거리는 기둥을 사진 작품 ‘무제 2000’으로 감쌌고 미술관 입구와 로비에 실물 크기의 ‘노숙자’ 작품 두 점을 설치했습니다. 로비와 전시장 곳곳을 점령한 (박제) 비둘기는 또 어떤가요. “이곳을 지하철역 앞 광장처럼 만들고 싶어했다”는 작가를 생각할 때마다 슬며시 웃음이 납니다.

카텔란은 자신의 이런 작품을 통해 “미술관은 그런 곳이 아니다”라고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런 곳’이란 잘난 체하는 소수의 사람을 위한 곳, 작품으로 사람을 기죽이는 곳을 말합니다. 미술관은 광장과 공원처럼 누구나 쉽게 갈 수 있고, 마음 편히 즐길 수 있는 곳이어야 한다는 그의 목소리가 또렷하게 들리는 듯합니다. 우리 마음속 깊이 알게 모르게 자리 잡고 있던 ‘권위주의 미술관’에 그가 한방 크게 먹였습니다.

저만 그럴까요. 미술관에서 작품을 보는 것도 좋지만, 그 안에서 각자 자기 시간을 느긋하게 보내는 다른 사람들 모습을 보는 것도 큰 즐거움입니다. 그 풍경까지 눈으로 흡수하며 미술관을 즐기는 시대입니다. 이렇게 한번 묻고 싶습니다. 당신에게 미술관은 어떤 곳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