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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삶의 향기

운동회 날 우린 청군·백군이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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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최명원 성균관대 독문과 교수

최명원 성균관대 독문과 교수

초등학생 작은 몸집으로는 거대하게만 보이는 학교 운동장에서 봄·가을이면 운동회가 열렸다. 지금도 추석 즈음 지방 국도를 따라 달리다 보면, 마을 어귀 곳곳에 걸려있는 ‘○○학교 동창 운동회’가 열린다는 현수막이 눈에 들어온다. 어쩐지 정겨워지는 순간이다.

어린 시절 학교 운동장에서는 청군·백군으로 팀을 갈라 서로 무리를 지어 박 터뜨리기, 줄다리기, 이어달리기 등의 결전을 펼쳤다. 당시는 붉은 색이 금기시되던 때라서 빨간색은 곧 공산당 빨갱이 색이었고, 죽은 사람의 이름에 쓰는 색이라 아예 몸서리치며 물리치는 색이었다. 청군의 대항마는 백군이었지, 홍군은 아니었다.

일상에서 배어나는 붉은색 사랑
곱디고운 색동저고리 단청 문화
무슨색을 좋아한다 말할까요

운동회 날

운동회 날

우리에게 빨간색이 친근했던 것은 첫 월급을 타면 부모님께 빨간 내의를 선물한다는 것이 전부였던 것 같던 그런 붉은색이 우리 곁으로 다가왔다. 계기가 된 것은 아마도 2002년 한·일 월드컵 응원전에 열성을 다하던 ‘붉은 악마’가 아니었을까 생각해 본다. 시청 앞을 가득 메운 우리 응원단 ‘붉은 악마’는 여러 가지 의미에서 놀라움 그 자체였다. 우리가 손사래로 금기시하던 온갖 요소를 모두 갖추었으니 말이다. 색도 붉은데, 게다가 악마들이라니.

예전이라면 상상도 못 할 붉은색 사랑이 우리의 일상 곳곳에서 펼쳐진다. 급기야 빨간색이 한 정당을 대표하는 색으로 등장하면서 지금의 여당으로 이어지는 보수 정당의 상징색이 되었다. 정당이 색을 통해 정체성을 드러내는 것은 독일에서 익히 봐왔던 터다. 오랜 전통의 독일 정당은 독일 국기의 삼색(三色)인 검정·빨강·노랑을 보수·진보·자유의 상징으로 삼아 자신의 정치성향을 표방한다. 새롭게 환경보호를 구호로 내건 한 정당은 녹색을 아예 정당명으로 만들었다. 미국도 파란색과 빨간색으로 진보 민주와 보수 공화의 당성을 대표하는 선거전을 치르면서 온 나라를 물들였다. 우리 정당들도 간판을 바꿔 달 때마다 각 정당의 상징색을 함께 고민하게 된다. 일관성도 없이 너무 자주 바뀌어서 탈이지만.

빨간 치마와 파란 바지 형상의 이미지로 만든 남녀의 구분에서처럼, 어떤 색들은 특정한 것을 상징하도록 연결되어 있다. 과거를 회상할 때는 회색이나 빛바랜 갈색을 덧입히고, 미래는 장밋빛이라는 수식어를 대동시킨다. 자유(파랑), 평화(하양), 박애(빨강)를 상징하는 프랑스의 삼색기를 비롯하여 유럽의 많은 국가는 자국이 표방하는 이미지를 국기 색에 담고 있다. 그렇게 색은 다양한 문화권에서 나름의 특정한 의미를 지닌 상징성으로 그 역할을 수행한다.

집안 살림이나 국가 경제를 언급할 때면 흑자와 적자라는 말을 쓴다. 검은 글씨 흑자(黑字)는 이윤을 내는 의미고, 붉은 글씨 적자(赤字)는 손실로 읽힌다. 하지만 주식시장에서 빨간색 글씨는 불붙어 활활 타오르는 긍정의 의미가 얹혀졌고, 파란색이 오히려 얼어붙은 장의 의미가 되어 낯빛도 파랗게 질리는 색이 되었다. 같은 돈인데도 주식장에서 붉은 글씨는 호황의 상승세를 의미하니, 빨간색도 나름인지라 주식장과 손익계산에서 그 의미가 이토록 달라질 줄 누가 알았겠는가.

‘종이는 하얗고 글씨는 까맣다’라는 지극히 단조롭던 우리의 삶에 1980년 컬러 TV의 출현과 함께 흑백의 시대는 가고 단청무늬 화려한 오색 문화가 우리 곁으로 다가왔다. 우리 전통문화에서 빨간색은 낯선 터부의 색이 아니다. 청실홍실에도 담겨있고 태극 문양에도 담겨있다. 올해 다시 열렸던 정월 대보름 전통 놀이마당 고싸움에서는 청군과 홍군이 맞수로 흥을 돋우었고, 색동저고리 고운 색감이 삶에 배어들어 일상을 물들이고 있다.

다양한 색상의 변화는 자동차에서도 쉽게 확인된다. 승용차가 보급되기 시작하고 얼마 안 되었을 때, 당시 차량의 색은 그리 다양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순간 도로를 가득 메우는 자동차들이 다양한 색감으로 개성을 드러낸다. 장례 운구를 상징하던 검은 줄 흰색 버스는 더 이상 찾아볼 수 없고, 흰색은 오히려 다수의 사람이 선호하는 색이 되어 거리를 질주한다. 검은색은 이제 장례를 비롯하여 권위와 품위를 상징하는 의전 모두를 아우른다.

때로는 사람의 성격도 색깔로 판단하려 한다. 어떤 색을 좋아하면 어떤 기질이 있다는 둥. 그래서 내가 좋아하는 색으로 무슨 심리 테스트를 받는 것 같아 함부로 말하기 꺼려진다. 어느새 파릇파릇 물오르고 꽃내음 가득한 봄기운이 차오른다. ‘노릇노릇’ ‘노리끼리’ ‘노르스름’에서처럼 우리말이 담아내는 색상의 인지는 다른 어떤 언어에서보다 섬세하고 풍부하다. 여기에 굳이 좋고 나쁜 의미까지 엮을 이유는 없지 않을까.

최명원 성균관대 독문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