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현행 ‘주 52시간제’를 대폭 수술하는 개편안을 내놨다. 핵심은 근로시간 유연화다. 근로자가 주당 52시간까지만 일하게 허용하던 것을 최대 69시간까지 일할 수 있게 하되, 더 일한 것에 대해서는 추후 단축 근무와 장기휴가로 쉴 수 있게 하자는 것이다.
이를 위해 정부는 ‘주 52시간제’(기본 40시간+연장 12시간)의 틀을 유지하되 ‘주’ 단위로 관리하는 연장근로 시간을 노사 합의를 거쳐 월·분기·반기·연간 단위로 관리할 수 있도록 했다. 이렇게 되면 바쁠 때는 주당 근로시간이 69시간까지 늘어날 수 있고, 한가할 땐 근로시간이 40시간으로 줄어들 수 있다.
정부 안에 따르면 기업과 근로자의 선택권이 크게 넓어진다. 연장·야간·휴일 근로시간을 모아 휴가처럼 쓸 수 있는 ‘근로시간 저축계좌제’가 도입된다. 또 근로자가 출퇴근 시간과 근로일을 정할 수 있는 ‘선택 근로제’ 적용 기간을 모든 업종은 3개월(기존 1개월)로, 연구개발(R&D) 업무는 6개월(기존 3개월)로 확대한다. ‘제주도 한 달 살기’ ‘주 4일 근무’ 등이 가능해질 것으로 정부는 설명한다.
‘주 52시간제’는 과로를 막고 삶의 질을 높이겠다는 취지로 문재인 정부가 2018년 도입했지만, 근로자 실질임금 하락과 중소기업 경영난 등 많은 부작용을 낳았다. 경직된 규제였다. 전국경제인연합회 조사에서 20~30대 직장인 57%가 ‘현행 근로시간 제도가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적합하지 않다’고 응답한 것에서도 현 제도의 시대 착오성을 읽을 수 있다.
문제는 근로자 건강권과 복지 확보다. 정부는 근로시간 관리 단위가 길어질수록 연장근로 허용 시간을 줄이는 ‘연장근로 총량 감축제’ 등 3중의 건강보호 장치를 마련했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전문가그룹이 제시한 ‘하루 근로 뒤 11시간 휴식 보장’ 방안이 다소 느슨해진 것을 비롯해 아쉬운 대목이 없지 않다. 저임과 고용 불안이 일상화된 많은 영세사업장의 현실을 고려하면 근로자 과로를 막을 안전장치가 제대로 작동할 수 있을지 의문스러운 것도 사실이다. 당장 노동계에선 “아침 9시 출근, 밤 12시 퇴근을 5일 연속 시켜도 합법이 되는 제도개편”(민주노총)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개편안의 향후 국회 입법 과정에서 근로자 복지에 대한 우려가 보다 심도 있게 보완되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