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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주 52시간제 개편, 근로자 건강권 세밀히 살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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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6일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근로시간 제도 개편 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뉴스1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6일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근로시간 제도 개편 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뉴스1

정부가 현행 ‘주 52시간제’를 대폭 수술하는 개편안을 내놨다. 핵심은 근로시간 유연화다. 근로자가 주당 52시간까지만 일하게 허용하던 것을 최대 69시간까지 일할 수 있게 하되, 더 일한 것에 대해서는 추후 단축 근무와 장기휴가로 쉴 수 있게 하자는 것이다.

이를 위해 정부는 ‘주 52시간제’(기본 40시간+연장 12시간)의 틀을 유지하되 ‘주’ 단위로 관리하는 연장근로 시간을 노사 합의를 거쳐 월·분기·반기·연간 단위로 관리할 수 있도록 했다. 이렇게 되면 바쁠 때는 주당 근로시간이 69시간까지 늘어날 수 있고, 한가할 땐 근로시간이 40시간으로 줄어들 수 있다.

정부 안에 따르면 기업과 근로자의 선택권이 크게 넓어진다. 연장·야간·휴일 근로시간을 모아 휴가처럼 쓸 수 있는 ‘근로시간 저축계좌제’가 도입된다. 또 근로자가 출퇴근 시간과 근로일을 정할 수 있는 ‘선택 근로제’ 적용 기간을 모든 업종은 3개월(기존 1개월)로, 연구개발(R&D) 업무는 6개월(기존 3개월)로 확대한다. ‘제주도 한 달 살기’ ‘주 4일 근무’ 등이 가능해질 것으로 정부는 설명한다.

‘주 52시간제’는 과로를 막고 삶의 질을 높이겠다는 취지로 문재인 정부가 2018년 도입했지만, 근로자 실질임금 하락과 중소기업 경영난 등 많은 부작용을 낳았다. 경직된 규제였다. 전국경제인연합회 조사에서 20~30대 직장인 57%가 ‘현행 근로시간 제도가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적합하지 않다’고 응답한 것에서도 현 제도의 시대 착오성을 읽을 수 있다.

문제는 근로자 건강권과 복지 확보다. 정부는 근로시간 관리 단위가 길어질수록 연장근로 허용 시간을 줄이는 ‘연장근로 총량 감축제’ 등 3중의 건강보호 장치를 마련했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전문가그룹이 제시한 ‘하루 근로 뒤 11시간 휴식 보장’ 방안이 다소 느슨해진 것을 비롯해 아쉬운 대목이 없지 않다. 저임과 고용 불안이 일상화된 많은 영세사업장의 현실을 고려하면 근로자 과로를 막을 안전장치가 제대로 작동할 수 있을지 의문스러운 것도 사실이다. 당장 노동계에선 “아침 9시 출근, 밤 12시 퇴근을 5일 연속 시켜도 합법이 되는 제도개편”(민주노총)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개편안의 향후 국회 입법 과정에서 근로자 복지에 대한 우려가 보다 심도 있게 보완되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