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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고육책’ 징용 해법…한·일 관계 정상화 계기로 살려가길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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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박진 외교부 장관이 지난해 5월 9일 방한한 하야시 요시마사 일본 외무상을 만나 팔꿈치 인사를 하는 모습. 박 장관이 6일 징용 해법을 발표하자, 일본 측은 과거사 인식 계승 입장을 재확인했다. [연합뉴스]

박진 외교부 장관이 지난해 5월 9일 방한한 하야시 요시마사 일본 외무상을 만나 팔꿈치 인사를 하는 모습. 박 장관이 6일 징용 해법을 발표하자, 일본 측은 과거사 인식 계승 입장을 재확인했다. [연합뉴스]

한국 측 재단이 피해자 지원하는 ‘3자변제’ 발표

일본 정부 사죄 의지 확인, 기업 참여 빠져 ‘반쪽’

피해자 설득 중요, 일본도 성의 있는 응답 내놔야

정부가 어제 강제징용 해법을 발표하자 그동안 소극적이던 일본 측이 하나씩 호응하는 모양새를 보인 것은 일단 긍정적이다. 하지만 2018년 대법원의 징용 배상 첫 판결이 있었는데도 일본 징용 기업이 피해자 지원을 위한 재단 출연에 직접 참여하지 않아 ‘반쪽 해법’이란 비판도 나온다. 징용 판결로 파국을 경험한 한·일 관계를 고려하면 흡족하지 않고 아쉬움을 남긴 해법일 수밖에 없다. 윤석열 대통령은 “미래 지향적 한·일 관계로 나아가기 위한 결단”이라 자평했지만 미래의 한·일 관계 정상화란 큰 방향이 무엇보다 중요한 만큼 이번 해법을 계기로 살려 나가야 할 시간이다.

이번 대책은 대법원의 징용 배상 판결 이후 5년 만에 정부가 내놓은 후속 조치다. 당시 판결에 대해 일본 정부는 “한국이 국제법(청구권 문제가 ‘완전히 최종적으로’ 해결된 것을 확인한 1965년 청구권협정)을 어겼다”고 반발했고, 일본 피고 기업들이 배상 판결에 불응하면서 징용 해법은 2018년 이후 계속 겉돌기만 했다. 지난해 5월 출범한 윤석열 정부가 수차례 한·일 외교 당국 협의를 통해 마련한 이번 대책은 한국이 주도적·대승적으로 문제를 풀고, 일본이 자발적 기여와 포괄적 사죄로 호응한다는 구도다. 먼저 ‘강제동원 특별법’에 따라 행정안전부 산하에 설립된 ‘재단’이 징용 피해자와 유족 지원 및 피해 구제의 일환으로 2018년 대법원 판결에서 승소한 원고 15명에게 판결금과 지연 이자를 지급하기로 했다. 계류 중인 다른 소송도 승소하면 적용된다.

재원 확보에 대해 박진 외교부 장관은 “민간의 자발적 기여 등을 통해 마련하고 앞으로 확충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해방 20주년이던 1965년 당시 박정희 정부는 한·일 관계를 정상화하기 위한 청구권협정에 서명하면서 일본 측의 3억 달러 무상 자금과 2억 달러 차관을 받았다. 이를 종잣돈 삼아 설립된 포스코 등 ‘청구권자금 수혜 기업’ 약 16곳이 앞으로 자발적 기부를 통해 먼저 재원을 마련하게 된다. 제삼자(수혜 기업)가 징용 피해자에게 채무를 대신 갚는 민법상 대위변제(代位辨濟) 방식이다.

이 때문에 일본 기업의 배상 책임을 명시한 대법원 판결 취지를 온전히 살리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번 해법을 두고 국내법(대법원 판결)과 국제법(청구권협정)을 동시에 존중하면서도 안보와 경제를 위해 시급히 한·일 관계를 풀어야 하는 정부의 고충이 반영된 ‘고육책’이란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대신 정부는 양국 경제단체(전경련·게이단렌)가 공동 참여해 ‘미래청년기금’을 조성하고 일본의 징용 기업들이 우회적으로 참여하는 절충안을 모색 중이다.

일본 정부도 반응하기 시작했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하야시 외무상은 어제 한국 외교부 발표를 전후해 “역사 인식에 관한 역대 내각의 입장을 전체적으로 계승한다”고 말했다. 식민 지배에 대한 통절한 반성과 마음으로부터의 사죄를 담은 1998년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 등을 계승하겠다는 의지를 재확인했다. 일본은 수출규제 해제도 협의하기로 했다.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가장 가까운 동맹들의 협력과 파트너십에 신기원적인 새 장”이라며 반겼다. 반면에 더불어민주당은 “제2의 경술국치” “삼전도 치욕”이라고 비판했다. 2015년 위안부 합의의 재탕이 되지 않도록 정부는 국내의 비판을 겸허히 경청하고, 이해를 구하며, 미흡한 부분을 계속 보완해 나가길 바란다. 우리 정부의 대승적인 선택에 무엇보다 일본 자민당과 정부가 양심적이며 성의 있는 응답을 할 것을 함께 촉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