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재해법에도 늘어난 산재 사망…“처벌보다 예방 초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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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정부가 중대 산업재해를 줄이기 위해 ‘위험성평가’ 제도를 오는 2025년까지 전 사업장에 의무화하기로 했다. 노사가 사전에 사업장 위험요인을 파악하고 대책을 마련하는 게 골자다. 지난해부터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됐음에도 오히려 산재 사고 사망자가 늘어나는 등 법 실효성에 대한 의구심이 커지면서 ‘처벌’보다 ‘예방’에 초점을 맞추겠다는 의도다.

고용노동부는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사업장 위험성평가에 관한 지침’ 고시 개정안을 7일부터 행정 예고한다고 6일 밝혔다. 지난해 정부가 발표한 ‘중대재해 감축 로드맵’에 따른 후속 대책이다. 위험성평가는 2013년부터 도입됐지만, 규정이 모호하고 법적 강제성이 없는 탓에 현실에서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개정안에 따르면 앞으로 위험성평가는 근로자가 전 단계에 참여할 수 있도록 바뀐다. 실제 현장을 잘 아는 근로자 참여를 확대하려는 취지다. 기존엔 유해·위험요인 파악에만 제한됐다. 또한 기존 위험성평가는 재해 빈도와 강도를 수치적으로 계량화해야 해 현실적으로 운용하기 어려웠지만, 앞으로는 점검표나 위험수준 3단계(저·중·고) 분석법 등 다양하고 간편한 방법으로 대체할 수 있다.

평가 시기도 개선했다. 언제 처음으로 위험성평가를 받아야 하는지에 대한 규정이 명확하지 않고, 1년마다 정기 평가를 받아야 했기 때문에 사업장 부담이 컸다. 하지만 앞으로는 사업장을 만들고 1개월 이내에 최초 평가를 하고, 업종에 따라 월·주·일 단위로 상시평가를 하면, 정기평가를 하지 않아도 되도록 바뀐다.

아울러 실효성 확보를 위해 위험성평가를 의무화하는 법령 개정안도 연내 마련하기로 했다. 오는 2025년까지 50인 미만 중소기업을 포함한 전 사업장에 의무적으로 적용하겠다는 계획이다. 이는 지난해 1월부터 본격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만으로 산재를 줄이기에 한계가 있다는 판단에서다.

실제로 지난해 유족급여 승인 기준 산재 사고 사망자는 874명으로, 2021년(828명)보다 오히려 46명 늘었다. 현행법이 ‘처벌’에 방점이 찍혀있다 보니 기업들이 최고경영자(CEO) 방어에만 급급할 뿐, 정작 본연의 목적인 산재 사전 예방 효과가 흐려졌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이에 정부는 ‘처벌과 규제’에서 ‘자율규제 예방체계’로의 전환을 방향성으로 잡고 제도 개선에 나서고 있다.

노동 문제 전문가들도 중장기적으로 처벌보단 예방에 방점을 찍어야 한다는 점에 공감했다. 조준모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는 “(지금까진 중대재해처벌법이) 산재 사망을 줄이는 효과가 잘 나타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며 “너무 ‘악당 찾기’에만 매몰되다 보니 로펌 선임 비용만 커졌을 뿐, 정작 산재 예방을 위한 예산은 얼마나 늘었을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기존 산업안전보건법을 통해 안전 관리 체계가 잘 구축될 수 있도록 유도하고, 중대재해처벌법은 적용 범위를 제한시킬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박지순 고려대 노동대학원장도 “처벌보단 현장에서 작동할 수 있는 안전 관리 시스템을 마련하도록 유도해야 한다”고 말했다. 산재를 줄이기 위한 시스템 개발이나 장비 도입, 인력 확충 등 예방 노력을 기울이는 사업장에 인센티브를 부여하는 방식 등이 가능하다.

다만 노동계를 중심으로 오히려 CEO 처벌을 강화해야 해야 산재를 줄일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어, 중대재해처벌법 개선에 대한 찬반 논란은 지속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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