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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에게 물든 두 여자…14년 우정과 사랑 사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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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민용근 감독이 각본, 연출한 영화 ‘소울메이트’(15일 개봉)는 13살 제주에서 첫 만남부터 서로를 알아본 두 친구 ‘미소(김다미)’와 ‘하은(전소니)’ 그리고 ‘진우(변우석)’가 스물일곱까지 14년간 나눈 우정과 사랑을 좇았다. 중국 영화 '안녕, 나의 소울메이트'(2017)을 1990년대 말부터 2000년대까지 한국 무대로 옮겨왔다. [사진 NEW]

민용근 감독이 각본, 연출한 영화 ‘소울메이트’(15일 개봉)는 13살 제주에서 첫 만남부터 서로를 알아본 두 친구 ‘미소(김다미)’와 ‘하은(전소니)’ 그리고 ‘진우(변우석)’가 스물일곱까지 14년간 나눈 우정과 사랑을 좇았다. 중국 영화 '안녕, 나의 소울메이트'(2017)을 1990년대 말부터 2000년대까지 한국 무대로 옮겨왔다. [사진 NEW]

“두 사람의 관계를 표현하기에 ‘우정’이란 말은 너무 작은 것 같아요. 우정도 사랑이라 생각하며 연기했죠.”

배우 김다미(27)가 15일 개봉하는 영화 ‘소울메이트’(감독 민용근)로 첫 여여(女女) 로맨스에 도전했다. 그가 배우 전소니(31)와 호흡을 맞춘 이 영화는 1998년 열세 살에 처음 만나 스물일곱까지, 14년간 두 여성의 사랑과 우정을 그린 작품이다.

배우 저우동위(周冬雨)를 ‘국민 여동생’으로 등극시킨 중국 영화 ‘안녕, 나의 소울메이트’(2017, 청궈샹 감독)를 SLL 산하 레이블 클라이맥스 스튜디오가 리메이크 했다. 한국 배경에 맞게 바뀐 부분도 있지만, 가정 환경도, 성격도 다른 두 소녀가 서로 닮아가는 삶의 여정은 고스란히 옮겨왔다.

영화 ‘소울메이트’는 단짝 친구 하은(전소니·왼쪽)과 미소(김다미)가 제주·서울을 오가며 14년간 겪는 사랑과 우정을 그린다. [사진 NEW]

영화 ‘소울메이트’는 단짝 친구 하은(전소니·왼쪽)과 미소(김다미)가 제주·서울을 오가며 14년간 겪는 사랑과 우정을 그린다. [사진 NEW]

주인공은 평범한 제주 농사꾼 집안의 외동딸 하은(전소니)과 혼외자로 태어나 엄마 따라 전국을 떠돌며 자란 미소(김다미). 따뜻한 색감의 정물화 같은 하은은 제멋대로의 추상화 같은 까칠한 전학생 미소와 첫눈에 서로에게 끌려 ‘영혼의 단짝(소울메이트)’이 된다.

엄마가 제주를 떠날 때도 미소는 하은의 곁에 남기 위해 10대 때부터 닥치는대로 아르바이트를 하며 독립한다. 사랑받으며 고생 없이 자란 하은과 미소의 삶의 격차는 벌어진다. 거기에 하은에게 진우(변우석)라는 남자친구가 생기면서 세 사람 사이엔 말할 수 없는 비밀이 늘어간다.

‘소울메이트’가 여자들의 우정을 다룬 여느 영화들과 다른 건, 이성애 혹은 동성애로 규정짓기 어려운 감정을 다루고 있다는 점만이 아니다. 정반대였던 두 친구의 삶이 언젠가부터 마치 맞바꾼 듯 서로가 걸어온 여정을 되밟아가는 대목부터 영화의 진짜 주제가 드러난다.

두 사람은 오랫동안 자신에게 결핍된 무언가를 서로에게서 찾았고, 동경했던 서로의 삶을 자신은 가질 수 없다는 좌절감에 한때 상대방을 지독히 미워했다는 것을 깨닫는다. 이해와 화해의 순간, 또 다른 이별이 찾아온다.

각본을 겸한 민용근 감독은 “오랜 시간을 돌고 돌아서 ‘아, 그 사람이구나’라고 깨닫게 되는 순간이 있다. 영화 속에 흐른 감정들이 관객의 마음에 스며들길 바랐다”고 연출 의도를 밝혔다.

‘소울메이트’는 남성 주인공이 많은 한국영화에서 모처럼 여배우 두 명의 주연 대결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데뷔작 ‘마녀’(2018) 직후 합류한 김다미, 신인 전소니의 호흡이 빛난다.

드라마 ‘이태원 클라쓰’(2020, JTBC), ‘그해 우리는’(2021~2022, SBS)보다 먼저 이 영화를 만났다는 김다미는 14년에 걸친 극과 극의 삶의 순간을 안정감 있게 소화했다.

영화 ‘죄 많은 소녀’(2018), ‘악질경찰’(2019) 등에 이어 현재 방영 중인 사극 ‘청춘월담’(tvN)으로 대중에게 눈도장을 찍은 전소니는 자칫 답답하게 느껴질 법한 하은의 감정을 섬세하게 표현해냈다.

민 감독이 지금과 반대의 캐스팅도 고려했을 만큼 두 배우가 다른 듯 결이 닮은 장면들도 눈에 띈다. 특히 서로와 닮은 삶에 스며들어가는 대목에서다.

영화는 어느 순간 하은과 미소가 서로에게서 자신이 진정 원했던 자화상을 발견하는 과정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IMF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에서 시작하는 시대 배경도 눈여겨볼 만하다. 어릴 적부터 엄마가 내연남의 돈 문제 때문에 도망다니는 모습을 지켜보며 자란 미소는 각고의 노력 끝에 안정된 삶을 꾸려가기 시작한다. 여기에 하은의 역할이 컸음은 물론이다.

미소가 평생 부러워해온 하은처럼 살 수 있게 되었을 때 영화는 두 사람이 한 폭의 그림을 통해 한 사람처럼 합치되는 듯한 장면을 보여준다. 이때 하은은 미소가 마음 속에 꿈꿔온 또 다른 자아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소울메이트’를 두 여성의 이야기, 그 이상으로 바라보게 되는 이유다.

영화에는 ‘늑대소년’ ‘건축학개론’ 등 한국 로맨스영화의 흥행 코드인 복고풍도 드러난다. 끈을 꼬아 인형을 주렁주렁 매단 휴대전화 고리, 폴더폰, MP3 플레이어, 벤치형 그네에 앉아 눈꽃빙수를 먹는 빙수카페 등 그 시절 청춘을 보낸 30~40대의 추억을 자극하는 장면이 가득하다.

다만 요즘 연애 풍토 치곤 지나치게 지고지순하고 자기희생적인 인물들의 관계가 극 중 주인공 또래인 10~20대 관객에게도 가 닿을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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