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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세대 위해 방폐장 미뤄선 안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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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경북 경주 월성원전 내 사용후핵연료 임시저장시설. [연합뉴스]

경북 경주 월성원전 내 사용후핵연료 임시저장시설. [연합뉴스]

국내 방사성폐기물(방폐물) 시계가 빠르게 돌아가고 있다. 주요 원전의 고준위 방폐물 포화 시점은 7~8년 앞으로 다가왔다. 그런데 영구 처분시설을 위한 입법 논의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주민 반대 속에 원전 내 임시 저장시설 확충에 의존하고 있다. 선도국인 핀란드는 2025년부터 영구 방폐장 가동을 시작하고, 프랑스와 스웨덴도 15~25년 내 운영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지지부진한 상황을 풀 해법은 없을까. 이 분야 전문가인 프랑스 방폐물관리청(ANDRA)의 파스칼 끌로드 르베르 박사는 3일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미래를 위해 안전한 영구 처분시설을 미뤄선 안 된다”면서 “방폐장 설치엔 국민 동의가 제일 중요하다. 이를 풀 열쇠는 투명한 정보 공유와 적극적 소통”이라고 조언했다.

프랑스 방폐물관리청 방폐물 전문가인 파스칼 르베르 박사. [사진 르베르 박사]

프랑스 방폐물관리청 방폐물 전문가인 파스칼 르베르 박사. [사진 르베르 박사]

국제기술전문가(ETI)이기도 한 파스칼 박사는 프랑스 고준위 방폐물시설인 씨제오(Cigeo) 프로젝트 부국장을 역임해 방폐장 안전 관리 등 실무 경험이 풍부하다. 지난해 말부터 국책사업 추진 기관인 ‘사용후핵연료 관리핵심기술개발사업단’에 파견돼 국내에 머물고 있다.

파스칼 박사는 “미래 세대를 보호하려면 사용후핵연료의 안정적 처리가 필수다. 지하 깊은 곳에 수십만 년 안전하게 보관할 시설이 있어야 한다는 게 과학적 연구 결과”라고 말했다. 이어 프랑스 라아그(La Hague) 중간저장시설을 언급하며 “전 세계에서 가장 큰 시설 중 한 곳인데 방사선 누출 사고는 없었다”고 안전 문제도 자신했다.

한국은 1978년 고리 1호기 운영을 시작으로 원전 역사가 40년을 훌쩍 넘었다. 하지만 고준위 방폐물 처리는 여전히 제자리걸음이다. 파스칼 박사는 “시간 압박 속에 결정을 내리는 건 좋지 않다. 더는 의사 결정을 미루지 않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2050년까지 한국이 고준위 방폐물 관리 기술을 빠르게 보여주면 세계 원전시장 경쟁에서도 유리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국내 전문가들은 영구 처분장 설치를 위한 특별법 통과를 강조한다. 윤종일 카이스트(KAIST) 원자력 및 양자공학과 교수는 “국회가 폭탄 돌리기 식으로 법 통과를 미루면 국민 신뢰만 깎아 먹게 된다”고 지적했다. 특별법이 통과되더라도 또 다른 난관이 있다. 국민이 민감해하는 부지 선정이다. 파스칼 박사는 안전·환경 보전·국민 동의를 3대 원칙으로 내세웠다. 방사선 누출 위험 없는 최고의 안전 기준을 지키고, 환경에 대한 부정적 영향도 최소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국민 동의에 거듭 방점을 찍었다.

프랑스는 동북부 뷔르(Bure) 지역에 영구 처분시설 부지를 마련했다. 90년대 시동을 걸 때부터 지역사회와 활발하게 소통한 덕이다. 파스칼 박사는 “한국도 높은 기술 전문성을 갖춘 만큼 민주적 감독 절차가 보장되면 사용후핵연료를 제대로 관리하는 데 성공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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