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한국정부 ‘정치적 결단’ 징용해법 속도전…피해자 설득, 일본기업 배상 참여가 숙제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4면

일제 강점기 조선인 강제징용 피해를 둘러싼 20여 년간의 법적 갈등이 일단락됐다. 정부가 사법·외교·정치 등의 쟁점과 갈등이 복합적으로 얽힌 강제징용 문제의 해법을 추진할 수 있었던 것은 윤석열 대통령의 강한 의지가 반영된 결과다. 윤 대통령은 참모들이 강제징용 해법에 따른 정치적 리스크를 제기할 때마다 “언젠가 해야 하고, 누군가 해야 한다면 지금 내가 하겠다”고 말했다.

다만 이번 징용 해법은 논의 시작과 협상, 결과 발표 모두 한국 정부가 알아서 주도한 모양새가 됐다. 정부는 국내 의견 수렴 및 대일(對日) 협상 초기부터 ‘최대공약수 해법’을 염두에 뒀다. 해법의 우선 적용 대상이 될 15명의 피해자 모두를 만족하게 할 순 없더라도 최대 다수가 수용할 수 있는 해법을 도출하겠다는 취지였다. 일본 피고 기업의 직접 배상과 사죄를 요구하며 제3자 변제안을 거부하는 피해자의 의견 역시 충실히 들었다는 게 정부의 설명이다. 지난달 28일 박진 외교부 장관과 강제징용 피해자·유족과의 면담 자리에서 상당수 피해자는 출처와 관계없이 빠른 배상을 원한다는 의견을 개진했다.

유명환 전 외교통상부 장관은 “문재인 정부 시절 대법원이 한일청구권협정에 대한 우리의 입장과 정반대 판결을 하는 바람에 우리가 문제를 만들어 놓고, 우리가 해결하는 멋쩍은 상황이 돼버렸다”며 “더는 미루지 않고 어떤 형태로든 봉합해야 한다는 정치적 결단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관련기사

정부의 딜레마는 2018년 대법원 판결을 존중하면서도 이를 우회하는 해법을 추진해야 한다는 데 있다. 이 과정에서 진통이 본격화할 전망이다. 대신 배상금을 지급하겠다는 지원재단과 이를 받지 않겠다는 피해자 간의 입장 차가 평행선을 달리면 해법의 완결성에 의문이 커질 수 있다. 한·일 신경전이 한국 내 다툼 양상으로 새롭게 전개될 수 있다.

일본 피고 기업의 배상 참여 등 일본의 추가적 호응이 뒤따르지 않는다면 “일본과의 협상에서 도대체 뭘 얻었나”란 비판이 거세질 수밖에 없다. ‘신속 결단’이 ‘졸속 오판’으로 둔갑할 수 있는 상황이다. 이날 한국의 해법 발표 이후 일본 정부나 피고 기업들이 취한 조치를 보면 “청구권 협정으로 모든 게 끝났다”는 기존 입장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았다. 일본의 추가적인 호응을 낙관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신각수 전 주일대사는 “과거사 문제를 해결해 한·일 양국이 미래로 나아가기 위해선 가해자와 피해자의 협력이 중요하다”며 “그런 차원에서 일본이 보다 적극적인 호응과 전향적 조치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제3자 변제라는 해법이 강제징용 문제의 해결이라는 ‘완전 연소’로 이어지기 위해선 전제조건이 필요하다. 우선 확정판결을 받은 15명의 피해자 전원이 지원재단에서 지급하는 배상금을 수령해야 한다. 일부 피해자가 끝내 수령하지 않는 경우 최소한 법원 공탁 등의 절차를 통해 법률적으로라도 배상 절차를 마무리해야 한다. 문제는 일부 피해자가 배상금 수령은 물론 법원 공탁에도 반대하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피해자 측 법률대리인단은 정부가 공탁에 나설 경우 공탁 무효소송 등 법적 대응을 검토하고 있다.

구상권도 징용 해법의 완결성을 위협하는 불씨가 될 수 있다. 구상권을 청구할 경우 일본 피고 기업은 다시 배상금을 지급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며 문제가 원점으로 회귀한다. 피해자와 일본 피고 기업 간의 민사 분쟁이 지원재단과 일본 피고 기업 간의 갈등으로 이전될 뿐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