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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오병상의 코멘터리

윤석열의 ‘징용 정면돌파’와 김대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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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병상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일본의 한국인 강제징용 현장으로 꼽히는 나가사키의 작은 섬 하시마(일명 군함도). 연합뉴스

일본의 한국인 강제징용 현장으로 꼽히는 나가사키의 작은 섬 하시마(일명 군함도). 연합뉴스

1. 윤석열 정부가 6일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해법을 내놓았습니다.

한국 기업의 기부금으로 배상금을 지급하는 방식입니다. 당장 반발이 나옵니다. ‘가해자인 일본기업이 배상금을 내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민주당은 ‘굴욕외교’라 비난합니다.

2. 징용배상은 난제 중 난제입니다.

1965년 한일국교 정상화 당시 청구권협정 때문입니다. 일본이 한국에 5억 달러(무상 3억, 유상 2억)를 제공하면서 ‘국가와 그 국민의 청구권 문제가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된다는 것을 확인한다’고 명시했습니다. 한일 양국이 ‘징용배상 끝’에 합의한 조약을 맺은 셈입니다.

3. 문제가 꼬인 건 2012년 한국 대법원의 판결입니다.
대법원(주심 김능환)은 ‘(청구권협정에도 불구하고) 개인은 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다’고 해석했습니다. 국가간에 협정을 맺었지만, 피해당사자인 개인은 배상을 요구할 권리가 있답니다. 일본대법원 판결, 한국법원 1심ㆍ2심 판결을 뒤집었습니다.

4. 국내 판결과 국제 협약과의 정면충돌입니다.
그 사이에 한국정부가 끼었습니다. 행정부가 사법부 판결을 무시할 수 없습니다. 한국정부 입장에서 일본정부가 반대하는 배상을 일본기업에 강제할 수 없습니다.

5. 윤석열 정부가 내놓은 궁여지책이 ‘제3자 변제’입니다.
제3자인 한국기업이 일본기업 대신 배상금 내는 겁니다. 굳이 논리를 붙이자면, 1965년 청구권 자금으로 만든 기업(포스코 등)들이 수혜자니까 부담하라는 겁니다.

6. 해법은 궁색하지만 정치적으론 정면돌파입니다.

국민정서상 징용배상은 정치적 부담이 상당합니다. 문재인 정부가 외면한 사이 한일관계가 심각해졌습니다. 윤석열은 ‘미래를 향해 가야한다’며 돌격을 명령했습니다. 한미일 3국공조가 절실해진 국제정치상황에 적극 대응하는 모습입니다.

7. 일본정부는 소극적이지만 환영의 뜻을 내비쳤습니다.
하야시 외무장관은 6일 ‘1998년 공동선언을 포함한 역대내각 입장을 전체적으로 계승하고 있음을 확인한다…양국관계 발전에 긴밀히 협력해 나가겠다’고 말했습니다.

8. ‘1998년 공동선언’은 일본 오부치 총리의 ‘반성과 사죄’로 주목받았습니다.
당시 오부치는 ‘일본이 한국 국민에게 다대한 손해와 고통을 안겨주었다는 역사적 사실을 겸허히 받아들이면서, 이에 대하여 통절한 반성과 마음으로 사죄한다’고 밝혔습니다. 일본정부가 역대급 사죄를 ‘계승한다’고 확인한 셈입니다.

9. 당시 사죄를 이끌어낸 김대중 대통령의 일본국회 연설입니다.
‘한국과 일본의 관계는 참으로 길고 깊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 양국은 1500년 이상 교류해왔습니다…그에 비해 역사적으로 일본과 한국의 관계가 불행했던 것은 약 400년 전 일본이 한국을 침략한 7년간과 금세기 초 식민 지배 35년간입니다. 이렇게 50년도 안되는 불행한 역사 때문에 1500년에 걸친 교류와 협력의 역사 전체를 무의미하게 만든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또한 이는 그 장구한 교류의 역사를 만들어 온 두 나라의 선조들에게, 그리고 장래 후손들에게 부끄럽고 지탄받을 일이지 않겠습니까.’
〈칼럼니스트〉
2023.03.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