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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냥 같은 돈 안 받겠다" 외교부 앞 시위…강제동원 배상안 반발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외교부를 향해 시끄럽게 할 수 있는 모든 것 시작!"

외교부가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 문제와 관련한 정부 입장을 발표한 6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앞에 모인 ‘한일역사정의평화행동’(평화행동) 회원 20여명이 일제히 소음을 쏟아냈다. 부부젤라(아프리카 전통악기)나 호루라기 등 온갖 도구들이 동원됐다. 정부 해법에 반발하기 위해서다.

정부는 이날 오전 강제징용 피해와 관련해 일본 기업 대신 한국 정부가 재단을 만들고 민간 기금을 모아 피해자에게 배상하는 해법을 제시했다. 그러자 611개 시민단체로 구성된 평화행동은 “일본에 면죄부를 주는 굴욕 협상”이라며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윤석열 정부가 국민들의 확정된 법적 권리를 짓밟고 일제 전범기업의 법적 책임을 면제해주는 협상을 강행하고 있다”며 이날 발표를 ‘경술국치’에 빗댔다. 신미연 서울겨레하나 운영위원장은 “강제 징용 피해자인 양금덕 할머니가 10년 전에 미쓰비시와 공식 협상을 할 때도 나왔던 안이다. 피해자가 사죄 배상 없이는 절대 안 된다고 거부했던 안을 어떻게 지금 우리 정부가 해법이라고 들고 올 수 있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거친 표현도 쏟아져 나왔다. 임지영 정의기억연대 국내연대팀장은 “국민들은 개빡쳤다. 윤석열 정부는 지옥행”이라는 구호를 선창했다. 같은 장소에서 기자회견을 연 진보당 관계자들은 “일본전범기업 배상 없는 굴욕외교 해법 중단하라”고 외치며 외교부 현판에 ‘굴욕적인 친일해법 강행’ 등의 문구가 적힌 스티커를 붙였다.

피해자 “동냥처럼 주는 돈 받지 않겠다”

강제동원 피해자 대리인단 및 지원단체 관계자가 6일 오후 서울 용산구 민족문제연구소에서 한국 정부의 강제동원 해법에 대한 입장을 발표하고 있다. 뉴스1

강제동원 피해자 대리인단 및 지원단체 관계자가 6일 오후 서울 용산구 민족문제연구소에서 한국 정부의 강제동원 해법에 대한 입장을 발표하고 있다. 뉴스1

피해자도 직접 나서 정부를 비판했다. 대법원에서 미쓰비시를 상대로 승소 판결을 받아낸 강제징용 피해자 양금덕 할머니는 이날 오전 광주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 사무실에서 정부 발표를 생중계로 본 뒤 “동냥처럼 주는 돈은 받지 않겠다”며 “잘못한 사람은 따로 있고 사죄할 사람도 따로 있는데 (3자 변제 방식으로) 해결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밝혔다.

현재 일제 강제동원과 관련해 피해를 주장하며 소송에 나선 사람은 15명이며, 이 중 일본 기업과 다툼에서도 최종 승소해 우선 배상을 받을 수 있는 피해자는 총 14명이다. 이중 11명은 이미 세상을 떠났다.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법률 대리인단과 지원단체는 피해자 과반이 이번 정부의 해법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법률 대리인인 김세은 변호사는 이날 오후 기자회견에서 “피해자 및 유족들의 의사를 확인한 결과 전체 피해자 15명 가운데 긍정 의사가 확인 된 건 4명”이라고 말했다.

"정부의 제3자 변제 방식, 피해자 동의 없이 불가능" 

이처럼 피해자들이 반대하고 있기 때문에 정부가 제시한 배상 방식은 법적으로 실현 불가능하다는 주장도 덧붙였다. 정부가 재단을 통해 피해자에게 일본 기업 대신 변제를 하려면 제3자 변제가 성사돼야 하지만, 피해 당사자가 제3자인 정부 재단으로부터 배상 받지 않겠다고 하면 법적으로 변제 자체가 이뤄질 수 없게 된다는 것이다. 앞서 2018년 대법원은 소를 제기한 피해자들 대상으로 피고 일본 기업으로부터 판결금을 받으라고 확정 판결을 내린 바 있다.

피해자 측 법률대리인단 관계자는 “당사자가 정부 해법을 거부하는데도 정부가 일방적으로 돈을 공탁해 피해자가 일본 기업으로부터 변제받아야 할 채권을 없앨 경우, 이 공탁 자체가 무효임을 확인하기 위한 절차를 진행해 정부에 맞설 것”이라며 법적 대응을 예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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