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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방 살다 야산에 버려졌다…돼지농장 60대 태국인의 비극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김씨는 지난 2일 트렉터를 이용해 A의 시신을 유기했다. 경찰은 주변 CCTV를 통해 트렉터가 지난 2일 이동한 사실을 파악했다고 한다. 심석용 기자

김씨는 지난 2일 트렉터를 이용해 A의 시신을 유기했다. 경찰은 주변 CCTV를 통해 트렉터가 지난 2일 이동한 사실을 파악했다고 한다. 심석용 기자

“평상복 차림으로 쓰러져 있었어요…”
지난 4일 오후 경기도 포천 영북면 한 돼지농장 인근에서 사망한 태국인 남성을 발견한 경찰 관계자 말이다. 이날 오전 경찰엔 태국인 남성 A에 대한 실종신고가 접수됐다. 돼지농장에서 일하는 A(60대)가 한참 동안 연락이 되지 않자 동향의 지인이 나선 것이다. 위치추적 결과 A의 휴대전화가 거주지에 위치했다.

수색에 나선 경찰은 농장 뒤 언덕에서 A의 시신을 발견했다. 10년에 걸친 태국인 A의 한국 생활이 허무한 비극으로 끝난 것이다. 시신 100m 근방엔 농장주 김모(60대)씨 소유의 초록색 트랙터가 있었다. 5일 오전 경찰은 사체유기 혐의로 김씨를 긴급체포했다.

경기 포천 돼지농장 뒤 야산에서 태국인 A가 숨진 채 발견돼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 A가 숨진 채 발견된 장소. 심석용 기자

경기 포천 돼지농장 뒤 야산에서 태국인 A가 숨진 채 발견돼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 A가 숨진 채 발견된 장소. 심석용 기자

2013년쯤 한국에 온 A는 왜소한 체격에 내성적인 성격이었다고 한다. 입국 즈음부터 포천 영북면의 돼지농장에서 김씨와 단둘이 일했다. 돼지 농장에 사는 어미돼지 100여 마리를 돌보는 일이었다. “기계가 있어 2명이 하기엔 벅찬 일은 아니었다”고 주변 농장 관계자는 전했다. 10년간 한국에 머물렀지만, A의 한국어는 서툴렀다고 한다. 농장을 자주 방문했다는 양모(40대)씨는 “A가 한국말을 못해서 대화할 기회는 거의 없었다. 그는 김씨하고도 몸짓으로 대화했다”며 “A가 웃으면서 농장을 오가는 모습을 종종 봤다”고 말했다.

간간이 보인 미소와 달리 A의 정주 여건은 열악했다. 6일 돈사 내 A의 숙소는 각종 쓰레기로 가득했다. 두 사람이 누울 수 있을 만한 공간엔 폐비닐, 페트병, 이불, 옷 등이 엉켜 발 디딜 곳이 없었다. 숙소 옆엔 부엌이 있었지만, 취사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김씨는 경찰 조사에서 “A에게 200만원씩 월급을 줬다”고 주장했지만, A의 숙소는 쓰레기투성이였다. 인간관계도 단절된 것으로 추정된다.

김씨의 부인은 중앙일보와 만나 “김씨와 따로 살아서 A에 대해선 잘 모른다”며 “A가 오래전부터 여기서 살았다고 알고 있다”고 말했다. “A의 태국인 지인이 실종신고를 했지만, 그들도 A가 어떻게 사는지에 대해선 잘 몰랐다”고 경찰 관계자는 전했다.

 6일 중앙일보가 찾은 A가 거주지는 쓰레기더미로 가득했다. A의 숙소 옆엔 돼지가 살고 있다. 심석용 기자

6일 중앙일보가 찾은 A가 거주지는 쓰레기더미로 가득했다. A의 숙소 옆엔 돼지가 살고 있다. 심석용 기자

김씨는 6일 경찰 조사에서 “아침에 돈사 안에 있는 A의 숙소에 들어갔는데 A가 움직이지 않았다. 그래서 시신을 옮겼다. 처벌이 두려워서 그랬다”고 진술했다. 정확한 사망 시점은 기억하지 못했다고 한다. 앞서 김씨는 시신을 유기한 뒤 지인들에겐 “A가 도망쳤다”고 말했다고 한다. 경찰은 6일 A를 부검한 국립과학수사연구원으로부터 “타살 혐의점은 보이지 않는다. 사인은 건강상의 문제로 추정된다”는 1차 구두소견을 전달받았다.

경찰은 김씨 농장의 임금이 제대로 지급됐는지, 근로 환경에 위법한 점은 없었는지 등도 살펴보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김씨와 주변인들을 상대로 정확한 경위를 조사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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