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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인에게 직접 받아 숨겼다"…21년 전 '백 경사 권총' 발견 전말[사건추적]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21년간 미제 사건으로 남아있던 대전 국민은행 권총 강도살인 사건 피의자 이승만(왼쪽)과 이정학이 지난해 9월 2일 검찰로 송치되고 있다. 뉴스1

21년간 미제 사건으로 남아있던 대전 국민은행 권총 강도살인 사건 피의자 이승만(왼쪽)과 이정학이 지난해 9월 2일 검찰로 송치되고 있다. 뉴스1

'백 경사 피살 사건' 스모킹건 나왔다 

21년 전 전북 전주 한 파출소에서 발생한 일명 '백 경사 피살 사건' 때 사라진 권총이 발견됐다. 경찰은 이 권총을 이 사건 진범을 밝힐 '스모킹 건(결정적 증거)'으로 보고 있다.

전북경찰청은 6일 "최근 고 백선기(사망 당시 54세) 경사 피살 당시 허리춤에 차고 있던 38구경 권총을 찾았다"며 "사라진 권총 총기 번호와 정확히 일치한다"고 밝혔다. 경찰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권총 정밀 감식을 의뢰했다. 권총에 묻은 지문 등을 통해 범인을 특정하기 위해서다.

경찰은 약 일주일 전쯤 "건설 현장 노동자로 일할 때 (백 경사 피살 사건) 범인에게 총을 직접 건네받아 숨겼다"는 제보를 바탕으로 울산에서 녹슨 권총 한 정을 발견했다. 권총은 철거를 앞둔 한 숙박업소 천장에 있었다고 한다.

38구경 권총. 본 기사와는 관련 없음. 중앙포토

38구경 권총. 본 기사와는 관련 없음. 중앙포토

파출소서 홀로 근무하다 흉기에 찔려 

경찰에 따르면 백 경사는 2002년 추석 연휴 첫날인 9월 20일 자정쯤 전주시 금암2파출소에서 혼자 근무하다 숨진 채 발견됐다. 온몸이 흉기에 찔린 상태였다. 순찰을 마치고 동료들이 파출소에 도착했을 때 백 경사는 피를 흘린 채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범인은 백 경사를 흉기로 살해하고 실탄 4발과 공포탄 1발이 장전된 38구경 권총을 빼앗아 달아났다. 사건 당시 파출소 내부에 폐쇄회로TV(CCTV)가 있었지만, 작동하지 않았다.

경찰 안팎에서는 "치안 시스템에 구멍이 뚫렸다"는 지적이 나왔다. 29년간 공직에 헌신한 백 경사는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됐다.

경찰은 사건 발생 넉 달 만인 2003년 1월 14일 박모(21)씨 등 20대 초반 남성 3명을 용의자로 체포했다. 중학교 동창인 이들은 전주시 인후동 한 음식점에서 음식 등을 훔치다 경찰에 붙잡혔다. 이들 중 1명은 2002년 12월 경기도 모 부대에 입대한 상태였다.

2001년 '대전 국민은행 권총 강도살인 사건' 피의자. 왼쪽부터 이승만, 이정학. 사진 대전경찰청

2001년 '대전 국민은행 권총 강도살인 사건' 피의자. 왼쪽부터 이승만, 이정학. 사진 대전경찰청

20대 용의자 3명 검거…"가혹 행위 있었다" 진술 번복

조사 결과 이들은 2002년 5월 22일 무면허 상태로 오토바이(88cc)를 몰다 백 경사 단속에 걸려 오토바이를 빼앗겼다. 같은 해 9월 20일 압류된 오토바이를 빼내려고 파출소에 침입했다가 백 경사와 시비가 붙자 살해한 것으로 경찰은 판단했다.

경찰은 당시 "여죄 추궁 과정에서 이들로부터 범행 일체를 자백받았다"고 발표했다. 그러면서 "박씨 등이 사건 현장에서 1㎞ 떨어진 문 닫은 업소에 숨어 지내면서 전주 시내를 돌며 10여 차례 절도 행각을 했다"고 했다.

하지만 이들이 "강압 수사에 못 이겨 허위 자백을 했다"고 진술을 번복하면서 수사는 미궁에 빠졌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조사 과정에서 가혹 행위가 있었다"는 용의자 가족 진정을 토대로 조사에 나섰다. 결국 박씨 등은 절도 혐의로만 기소됐다. 경찰은 연인원 100만 명을 동원했으나, 이 사건 결정적 단서인 권총을 찾지 못했다.

2001년 대전 경찰관 총기 탈취 및 국민은행 권총 강도살인 사건 피의자 몽타주. 왼쪽부터 이승만과 이정학. 사진 대전경찰청

2001년 대전 경찰관 총기 탈취 및 국민은행 권총 강도살인 사건 피의자 몽타주. 왼쪽부터 이승만과 이정학. 사진 대전경찰청

"대전 국민은행 권총 강도살인 사건과 범행 시기·수법 비슷" 

경찰은 백 경사 사건을 장기 미제 사건으로 분류했다. 2015년 일명 '태완이법(형사소송법 개정안)' 통과로 살인죄 공소 시효(25년)가 폐지되면서 전북경찰청 미제 사건 전담 수사팀이 수사해 왔다.

경찰은 백 경사 권총이 발견된 장소가 2001년 말 대전에서 발생한 '국민은행 권총 강도살인 사건'과 연관성도 살펴보고 있다. '백 경사 피살 사건'과 범행 시기와 수법 등이 비슷해서다.

대전 사건은 지난해 8월 진범인 이승만(53)과 이정학(52)이 경찰에 붙잡히면서 일단락됐다. 경찰에 따르면 고교 동창인 이들은 범행 두 달 전인 2001년 10월 15일 대전시 대덕구 비래동에서 순찰 중이던 경찰을 차량으로 들이받아 권총을 빼앗은 뒤 범행을 모의했다. 당시 차에 치인 경찰관은 "정신을 잃어 권총을 어떻게 분실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2001년 12월 21일 대전시 서구 둔산동 한 건물 지하주차장에서 경찰이 국민은행 권총 강도살인 사건에 이용된 차량을 확인하고 있다. 연합뉴스

2001년 12월 21일 대전시 서구 둔산동 한 건물 지하주차장에서 경찰이 국민은행 권총 강도살인 사건에 이용된 차량을 확인하고 있다. 연합뉴스

경찰 "모든 가능성 열어두고 수사" 

이들은 같은 해 12월 21일 오전 10시 대전시 둔산동 국민은행 둔산지점 지하주차장에서 승합차에 현금을 싣고 오던 은행 직원 3명을 권총으로 위협, 현금 3억원이 들어 있던 자루를 탈취해 달아났다. 이 과정에서 이씨 등에게 저항하던 국민은행 김모(사망 당시 45세) 과장이 총에 맞아 숨졌다.

경찰은 이씨 등이 대전 범행 이후 추가 범행을 준비하기 위해 백 경사 홀로 근무하던 금암2파출소를 노렸을 가능성도 염두에 두고 있다. 현재 교도소에 있는 대전 사건 피고인을 비롯해 제보자, 과거 용의자도 조사 대상이다. 경찰 관계자는 "공범 여부 등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수사할 방침"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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