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9년 서울대학교 학위수여식에 참석한 방시혁 하이브 의장. 사진 뉴스1
하이브는 6일 SM과 카카오에 사업협력계약을 즉시 해지하라는 경고장을 배달했다. SM에는 또 카카오측 지명 이사 후보에 대한 추천을 철회할 것을 요구했다.
20%로 불안한 하이브
하이브는 이날 공개매수를 통해 SM 지분 23만 3817주(0.98%)를 추가 확보했다고 밝혔다. 공개매수에 응한 스포츠 마케팅 전문기업 갤럭시아에스엠은 보유 주식 전량인 23만 3813주를 280억5756만원에 팔았다. SM 주가가 공개매수 금액인 주당 12만원을 돌파하면서 일반 소액주주 참여는 저조했다. 이날 SM 주가는 13만100원으로 장을 마쳤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하이브가 확보한 지분은 이수만 전SM 총괄 프로듀서로부터 사들인 14.8%와 기업결합승인 이후 넘겨받을 그의 지분(3.65%)까지 더해 19.43%다. 안정적인 경영권 행사를 위해선 추가 지분 확보가 절실하다.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하이브는 국내외 엔터테인먼트 회사 및 재무적투자자(FI)로부터 투자금 최대 1조원을 유치한다. 모건스탠리를 주관사로 해, 카카오가 사우디아라비아 국부펀드와 싱가포르 투자청으로부터 확보한 약 1조2000억원에 맞서는 실탄을 확보할 계획이다.
하이브는 ‘SM 위드 하이브’ 캠페인의 일환으로 6~9일 SM 지분이 있는 자산운용사 대상으로 1대1 NDR(투자설명회)도 진행한다. 블록 딜로 자산운용사들이 보유한 SM 지분을 인수하는 방안을 협의할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행법 상 6개월간 10명 이상의 주주로부터 장외거래 통해 5% 미만까지 주식 취득이 가능하다.
SM 관계자는 “하이브가 블록 딜을 시도한다는 제보가 여러 차례 들어오고 있다. 하이브가 공개매수를 통해 10인 이상에게 매수청약 및 매도청약을 권유한 이상 하이브는 공개매수 종료 후 6개월 내에 공개매수 방식이 아닌 장외매수 혹은 블록 딜 방식으로 SM 주식을 취득할 수 없다. 하이브도 자본시장법 의무공개매수 위반사항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을 것”이라 말했다. 이어 “그럼에도 루머가 사실로 드러난다면 SM 주주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법적 조치를 포함해 강력하게 대응할 방침”이라고 강조했다.
하이브는 “SM이 루머에 근거하여 의혹을 제기하는 미숙한 행동을 즉각 중단할 것을 촉구한다. 법과 제도를 위반하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SM 하이브 카카오 로고
하이브, “카카오 9일까지 떠나야”
하이브는 연일 카카오를 견제하면서 SM을 강하게 밀어붙이고 있다. 법원에서 이수만이 제기한 신주 발행 가처분신청이 받아들여지자 탄력이 붙었다. 하이브는 가처분 인용 후속조치로 ▶가처분결정 취지에 반하는 일체의 행위 금지▶신주인수계약, 전환사채인수계약 등 투자계약의 즉시 해지▶카카오와 체결한 사업협력계약의 즉시 해지▶카카오측 지명 이사후보에 대한 이사회 추천 철회 및 주주총회 선임 안건 취소 등을 6일 요구했다.
그러면서 “하이브는 SM에 대한 선관주의 의무가 있는 이사회에게 이번 투자계약상의 해제권을 신속하게 행사할 것을 요구했다. 이를 지연하거나 임의로 변경하는 것은 마찬가지로 위법 행위에 해당됨을 전달했다”며 SM 이사회 및 개별 이사들의 이행 여부 및 계획, 일정 등의 입장을 9일까지 달라고 덧붙였다.

SM이 유튜브를 통해 발표한 카카오와의 협업 내용. 사진 SM타운 유튜브

하이브는 SM과 카카오의 계약에 문제점이 많다고 지적했다. 사진 SM 위드 하이브 홈페이지
카카오 반격은 아직 시작 전이다. 이수만이 제기한 ‘신주 및 전환사채 발행금지가처분’에 대한 법원 인용을 6일 공시한 뒤 추가 입장은 없다. 카카오는 이날 오후 배재현 카카오 투자총괄대표가 참석하는 긴급이사회를 개최하려다 일정이 외부에 알려지자 돌연 취소했다.
시장에선 SM IP가 절실한 카카오가 무리해서라도 참전할 것으로 보고 있다. 현대차증권 김현용 연구원은 “카카오는 30% 이상 지분을 단기간에 공개매수 또는 블록 딜 형태로 가져와야만 인수 가능성이 생긴다. 오는 31일 주주총회 개최 이전에 카카오가 공개매수 등의 방법을 통해 반격에 나설 가능성도 상존한다”고 전망했다. 앞서 김성수 카카오 각자대표 또한 입장문에서 “수많은 억측 속에서도 수평적 파트너십을 기반으로 전방위적 사업 협력을 하겠다는 기본 입장을 견지하며, 각 사의 성장 비전을 구현하고 시너지를 창출하기 위해 심도 깊은 논의를 이어왔다”며 SM과의 협업에 의지를 드러낸 바 있다.
똘똘 뭉친 ‘핑크블러드’
지난달 ‘SM 평직원 협의체’를 발족한 SM 임직원은 주주에 의결권 행사 때 도와달라 요청하고 있다. 소액주주에겐 주당 1200원 배당, 모든 주주를 위한 독립적 이사회 등의 약속을 담은 서한을 보냈다. 서한은 “이번 사태는 한국 엔터테인먼트 역사에서 다시 없을 중요한 일”이라며 “하이브가 SM 지분을 최대 40%까지만 보유하고 나머지 60%는 일반 주주들이 가지게 되면 SM 주주와 하이브 주주 사이에는 이해 상충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하이브는 SM과 1·2위를 다투는 업계 최대 경쟁사”라고 강조했다. 이성수 대표를 비롯한 경영진은 홍콩과 싱가포르에서 NDR 열고 해외 투자자를 설득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이브의 ‘SM 위드 하이브’ 캠페인에 대항하는 ‘세이브 SM 3.0’이란 홈페이지도 개설했다.

SM에서 기획한 핑크블러드 퀴즈쇼에 출연한 레드벨벳. 사진 유튜브 SM타운
충성도 높은 SM 팬 ‘핑크블러드’(SM 상징색인 분홍색 피가 흐른다는 의미)는 하이브 사옥 앞에 트럭을 세워두고 시위를 벌이고 있다. 트럭에 부착된 전광판을 이용해 ‘하이브 독점에 반대하는 SM 팬 일동’이라고 밝힌 이들은 ‘우리는 하이브 없는 SM을 지지한다’ ‘탈세먹튀 이수만과 돈독 오른 하이브는 SM을 포기하라’ ‘독과점은 문화파괴. SM 아티스트 건들지마’ 와 같은 구호를 내보내고 있다.
엔터 업계에선 하이브가 SM을 인수하더라도 핑크블러드의 반발에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보고 있다. H.O.T., 동방신기부터 엑소, NCT에 이르기까지 SM 과 크고 작은 사건들을 함께 해온 핑크블러드에겐 단순하게 좋아하는 아티스트의 소속이 바뀌는 문제가 아니다.
이동연 한국예술종합학교 한국예술학과 교수는 “연예기획사와 팬들은 협력하다가도 대립하는 독특한 관계다. 지난 30년간 K팝에서 1~2위를 지킨 SM과 그 팬들 사이에는 애증의 관계가 형성되어 있다. 단순하게 SM 소속 가수가 하이브로 가면서 서자 취급을 받을 것을 우려할 수도 있겠으나, 더 큰 문제는 SM과 관련한 철학과 세계관 등의 가치가 몰락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다. SM 팬들에겐 이런 두려움이 생각보다 더 큰 것 같다”고 분석했다.
하이브에 인수합병이 되더라도 SM을 어떻게 경영할 것인가는 계속해서 남아있을 문제다. 이 교수는 “SM이 그냥 기획사가 아니다. 나름대로 차별성 있게 30년을 해온 회사인데다가, 업계 2위 규모다. SM 경영권을 누가 가져가더라도 K팝에 엄청난 지각변동이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