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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미 부녀의 정상 선언 “항저우·파리 꼭대기 정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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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스포츠클라이밍 국가대표 서채현(오른쪽)과 아버지 서종국 감독. 암벽을 타다 보니 지문이 닳아 없어져 출입국 심사 때마다 고충을 겪는다. 서채현이 최근 일본에 갔을 때 "클라이머"라고 설명한 뒤에야 입국 심사를 통과했다. 장진영 기자

스포츠클라이밍 국가대표 서채현(오른쪽)과 아버지 서종국 감독. 암벽을 타다 보니 지문이 닳아 없어져 출입국 심사 때마다 고충을 겪는다. 서채현이 최근 일본에 갔을 때 "클라이머"라고 설명한 뒤에야 입국 심사를 통과했다. 장진영 기자

“아빠를 ‘감독님’이라고 불러야 하는데요. 어색해서 일부러 호칭을 생략해요.”

최근 서울 영등포구 실내암장 ‘서종국 클라이밍’에서 만난 서채현(20)이 서종국(50) 감독을 바라 보며 웃었다.

서채현은 스포츠클라이밍 국가대표다. 2021년 10월 ‘아빠’ 서종국이 대표팀 감독을 맡아, ‘스포츠클라이밍 국가대표 부녀’는 1년5개월째 호흡을 맞추고 있다. 대표팀 그것도 같은 종목에서 ‘부모-자녀’가 ‘감독-선수’로 함께하는 건 흔치 않은데, 2018년 농구대표팀 허재 감독과 두 아들 허웅·훈 정도다.

‘스포츠 2세에 특혜를 준 건 아니냐’는 시선도 있지만 서채현은 “난 별로 신경 안 쓴다”고 쿨하게 말했다. 서 감독은 “색안경을 쓰고 보는 시선을 의식해 처음에는 딸과 사이가 데면데면 했다”면서도 “이도현(20) 등 또래 선수들도 ‘삼촌-조카’라 부르던 사이였다.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없듯, 다른 선수들도 똑같이 대하니 잘 따라온다. 채현이도 발전이 없다면 저한테 배우겠나, 다른 지도자한테 가지”라고 했다.

서종국 감독의 지도를 받는 서채현. 장진영 기자

서종국 감독의 지도를 받는 서채현. 장진영 기자

2021년 세계선수권대회 리드 우승을 차지했던 서채현은 서 감독 지도를 받아 작년 10월 아시아선수권대회 리드와 콤바인 2관왕을 달성했다. 스포츠클라이밍 콤바인은 스피드가 분리되고, 리드와 볼더링 점수만 합산해 순위를 가리게 바뀌었다. 스피드(15m 높이를 빨리 오르기)는 취약하지만, 리드(15m 암벽을 6분 안에 높이 오르기) 세계 1~2위를 다투는 서채현에게 유리한 방식이다. 볼더링(4~5m 높이의 4개 루트를 적은 시도로 많이 완등하기)만 끌어올리면, 올해 9월 항저우 아시안게임과 내년 파리올림픽 정상을 노려볼 만 하다. 아시아에서는 모리 아이(일본), 세계 무대에서는 야냐 가른브레트(슬로베니아)가 경쟁자다.

서 감독은 “동작이 큰 볼더링에서 매가리가 없으면 안돼 하체 근력을 강화했다. 채현이는 원래 1RM(한번에 최대로 들 수 있는 무게)이 24㎏였는데 42㎏까지 늘었다. 벨트에 10㎏짜리 원판 4개를 주렁주렁 달고 턱걸이를 한다”고 했다.

키 1m63㎝, 몸무게 51.5㎏의 작은 체구인 서채현은 음식을 참지 않고 치킨과 떡볶이도 먹는다. 서 감독은 “난 식탐이 많아 감량했다가 대회가 끝나면 4㎏가 불었다. 채현이는 먹고 싶은 걸 못 먹게 하진 않았다. 채현이는 요즘 스스로 오전 10시에 아침 겸 점심을 먹고, 오후 5시경 좋아하는 음식 등 두 끼만 먹는다”고 했다.

서 감독은 2013년~19년 사이에 아이스 스포츠클라이밍 국가대표를 오갔다. 서채현 별명은 영화 스파이더맨에 빗대 ‘스파이더 걸’인데, 둘은 ‘거미 부녀’다. 서채현은 “급하지 않고 차분한 건 아빠를 닮았다”고 했다. 서 감독은 “채현이는 MZ세대라서 긴장을 안 한다. 가끔 둘이 대결하는데, 제가 채현이에 버금갈 수 있다면 감독 대신 선수를 하겠죠”라며 웃었다.

서채현이 생후 7개월 때 아버지 등에 업혀 산에 올라가는 모습. 사진 서종국

서채현이 생후 7개월 때 아버지 등에 업혀 산에 올라가는 모습. 사진 서종국

서 감독은 딸이 생후 7개월 때 등 뒤의 베이비 캐리어에 앉히고 산 정상에 올랐다. 태어나자마자 조기 교육을 받은 ‘클수저(클라이밍+수저)’. 서채현은 작년 11월 스페인 자연암벽 ‘라 람블라’를 아시아 여성 최초로 완등했다. 90도 이상 경사의 암벽이 머리 위를 덮는 ‘오버행’ 형태로, 난이도 5.15a, 높이는 41m다. 서채현은 “어릴 적부터 꿈이었는데 7번 시도 끝에 완등했다”고 했다. 서 감독은 “채현이가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미국, 그리스 등 원정 등반을 함께 다녔다. 클라이밍이 스포츠화 됐지만 본질은 암벽등반이며 자연에서 배울 점이 많기 때문이다. 부모가 못 이룬 꿈을 강요하기 보다는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즐기도록 했다”고 교육법을 들려줬다.

서채현은 작년 11월 스페인 자연암벽 ‘라 람블라’를 아시아 여성 최초로 완등했다. 서채현 SNS

서채현은 작년 11월 스페인 자연암벽 ‘라 람블라’를 아시아 여성 최초로 완등했다. 서채현 SNS

서울 신정고에서 전교 1~2등하며 3년 장학금을 받았던 서채현은 작년에 대학 진학을 포기했다. 서울시청과 노스페이스클라이밍팀 소속인 서채현은 “일년에 3~4개월은 해외에 나가있어야 해서 학업을 병행하기 쉽지 않았다. 과학을 좋아하는데 언젠가 대학에서 스포츠과학을 전공하고 싶다”고 했다.

서 감독은 2000년에 등산교실 강사로 수강생이던 전소영(50)씨를 만나 결혼했다. 전씨도 스포츠클라이밍 국가대표 출신이다. 서 감독은 “아내도 내 제자, 채현이도 제자”라며 “언젠가 채현이 남자친구가 생긴다면 클라이밍을 좋아했으면 한다. 넷이서 자연암벽 여행을 다니는 게 꿈”이라고 하자, 서채현은 “리드는 2인1조로 줄을 잡아줘야 하는데, 차에서 기다리는 것보다 같이 하면 좋겠다”며 웃었다.

스포츠클라이밍 국가대표 부녀 서채현(오른쪽)과 서종국 감독. 장진영 기자

스포츠클라이밍 국가대표 부녀 서채현(오른쪽)과 서종국 감독. 장진영 기자

서채현

출생: 2003년생(20세)
체격: 1m63㎝, 51.5kg
소속팀: 노스페이스클라이밍팀, 서울시청
주요경력: 세계선수권 리드 우승(2021) 아시아선수권 리드-콤바인 우승(2022)

서종국
출생: 1973년생(50세)
체격: 1m78㎝, 69㎏
선수: 아이스 클라이밍 국가대표(2014~19) 전국체전 2위(2019)
지도자: 국가대표 감독(2021~)
아내:  전소영(전 스포츠 클라이밍 국가대표)

▶스포츠클라이밍은...
리드: 15m 벽을 6분 안에 높이 오르기
볼더링: 4~5분 안에 4~5m 높이의 4개 루트를 적은 시도로 많이 완등하기
스피드: 15m 높이를 빠르게 오르기
※콤바인은 리드+볼더링. 스피드는 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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