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소년중앙] 이중섭은 왜 아이·소 많이 그렸을까…1940~50년대 삶 통해 살펴봐요

중앙일보

입력

금방이라도 그림 속에서 튀어나올 듯한 역동적인 소 그림 하면 생각나는 작가, 이중섭. 1916년 출생 후 만 40년의 인생 동안 일제강점기부터 해방·분단·동족 상잔의 전쟁까지 겪은 그는 궁핍한 생활 속에서도 예술의 혼을 불태웠죠. 국립현대미술관(MMCA) 서울은 지난해 8월부터 'MMCA 이건희컬렉션 특별전: 이중섭'을 열었어요. 2021년 4월 고(故) 이건희 회장이 국립현대미술관에 기증한 이중섭의 작품 80여 점과 국립현대미술관이 소장한 10점 등 총 90여 점의 이중섭 작품을 만날 수 있는 전시죠. 그의 작품세계를 1940년대와 1950년대로 나누어 감상하면서 남편이자 아버지, 그리고 예술가였던 이중섭의 다양한 면모를 살펴볼 수 있어요.

이중섭이 1950년대 전반 종이에 연필로 그린 소 스케치. 그의 소 그림에는 독립을 기다리던 우리 민족의 염원이 담겨있다.

이중섭이 1950년대 전반 종이에 연필로 그린 소 스케치. 그의 소 그림에는 독립을 기다리던 우리 민족의 염원이 담겨있다.

김도경·최아민 학생기자가 이중섭의 생애와 작품에 대해 알아보기 위해 'MMCA 이건희컬렉션 특별전: 이중섭'을 찾았어요. 약 90여 점의 작품은 엽서화·은지화·회화 등 다양한 형식으로 제작됐죠. 아이·소·끈 등 여러 작품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도상이 눈에 띕니다. 또 일본어로 쓴 편지화도 전시돼 있었어요. 여기에는 어떤 이야기들이 담겨 있는 걸까요. 소중 학생기자단은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 국립현대미술관 우현정 학예연구사(이하 우 학예사)를 만났습니다.

'MMCA 이건희컬렉션 특별전: 이중섭'에서는 엽서화·편지화·은지화·드로잉 등 이중섭의 다양한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MMCA 이건희컬렉션 특별전: 이중섭'에서는 엽서화·편지화·은지화·드로잉 등 이중섭의 다양한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도경 학생기자가 "관람객이 어떤 인상을 받기를 바라며 'MMCA 이건희컬렉션 특별전: 이중섭'을 기획하셨나요?"라고 질문했어요. "제가 생각하는 이번 전시의 주제는 이중섭의 가족을 향한 사랑이에요. 앞서 국립현대미술관에서는 2016년 '이중섭, 백년의 신화'라는 전시를 개최했었어요. 60여 개의 소장처에서 빌린 200여 점의 작품과 100여 점의 자료를 망라해 이중섭의 삶의 궤적에 따라 구성한 전시였죠. 이번에는 그때와는 다른 주제로 전시의 흐름을 구성하고 싶었어요."

'MMCA 이건희컬렉션 특별전: 이중섭'를 제대로 감상하려면 이중섭의 생애를 먼저 알아야 해요. 1916년 함경남도 원산에서 출생한 이중섭은 1936년 일본 도쿄 제국미술학교에서 유학 생활을 시작했고, 이듬해 도쿄 문화학원으로 옮겨 1941년까지 수학했어요. 당시 일본에는 추상주의·후기 인상주의 등 프랑스에서 유행하던 서양미술 화풍이 들어와 있었는데요. 이중섭은 친구들과 함께 자유미술가협회 소속으로 활동하며 서양미술을 접했죠.

최아민(왼쪽)·김도경 학생기자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1전시실 'MMCA 이건희컬렉션 특별전: 이중섭'을 찾아 이중섭의 생애와 작품에 대해 살펴봤다.

최아민(왼쪽)·김도경 학생기자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1전시실 'MMCA 이건희컬렉션 특별전: 이중섭'을 찾아 이중섭의 생애와 작품에 대해 살펴봤다.

아민 학생기자가 "그러고 보니 전시에서 본 이중섭 작품 중 피카소가 연상되는 그림도 있었어요"라고 말했어요. "아마 이런 작품을 보고 그런 생각을 했을 거예요." 우 학예사가 엽서화 '상상의 동물과 사람들'(1940)을 가리켰어요. 1937년 일본 문화학원에 입학한 이중섭이 1940년부터 1943년까지 후일 아내가 되는 야마모토 마사코에게 보낸 그림엽서 중 하나죠. 자유로운 공간 구성, 단순화한 형태, 원색의 사용, 정제된 선묘 등이 돋보이는 이 작품은 추상주의 및 초현실주의가 당시 이중섭의 화풍에 미친 영향을 엿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죠.

'상상의 동물과 사람들'(1940). 이중섭이 일본 유학 시절 추상 및 초현실주의로부터 받은 영향을 엿볼 수 있는 엽서화. 국립현대미술관

'상상의 동물과 사람들'(1940). 이중섭이 일본 유학 시절 추상 및 초현실주의로부터 받은 영향을 엿볼 수 있는 엽서화. 국립현대미술관

일본 유학 생활을 마친 이중섭은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일본의 징집을 피하고자 원산으로 돌아가 1944년부터 고아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쳤어요. 아민 학생기자가 "학교에서 한국사를 배울 때 이중섭은 일제강점기 독립의 의지를 작품에 표현한 작가라고 배웠어요. 이런 의지를 잘 보여주는 작품이 있나요?"라고 궁금해했어요.

"대표적으로 소를 소재로 그린 작품들을 꼽을 수 있어요. 농경사회에서 소는 죽을 때까지 자기가 맡은 일을 묵묵히 수행하는 동물이잖아요. 그런 소의 이미지가 일제 치하 한국인에게는 '무슨 일이 있어도 독립을 이뤄내겠다'는 의지의 상징으로 받아들여졌죠. 예를 들어 이중섭이 그린 '흰소'(1954)는 흰옷을 많이 입어 백의민족이라 불리던 한국인의 관습과 결부된, 일제강점기 치하의 우리 민족의 표상이었어요. 사실 이중섭이 소를 그린 작품으로 유명하지만, 당시에는 이중섭 외에도 일본에서 유학 중이던 여러 한국인이 소를 꾸준히 그리곤 했어요. 이들이 모인 '백우회(百牛會)'라는 모임이 있을 정도였죠. 또 이중섭 개인적으로도 소를 굉장히 좋아했어요. 원산에서 지내던 당시에도 남의 집 소를 온종일 구경했다고 해요."

이중섭의 작품을 감상한 소중 학생기자단. 90여 점의 작품에는 아이·가족·새 등 그가 즐겨 그린 도상은 물론, 가족의 사랑과 이상향 등의 주제 의식이 담겼다.

이중섭의 작품을 감상한 소중 학생기자단. 90여 점의 작품에는 아이·가족·새 등 그가 즐겨 그린 도상은 물론, 가족의 사랑과 이상향 등의 주제 의식이 담겼다.

'MMCA 이건희컬렉션 특별전: 이중섭'에서는 1950년대 전반에 제작된 소 스케치를 볼 수 있는데요. 종이에 연필로 그린 스케치임에도 바닥을 향해 머리를 흔들고 있는 소의 역동적인 움직임이 한눈에 들어오죠. 우 학예사의 설명처럼 이중섭이 소를 면밀히 관찰해 해부학적 특징에 밝았기 때문에 탄생한 작품이랍니다.

1950년 6월 25일 한국 전쟁이 발발하면서 이중섭의 작품 세계는 또 한 번의 격변기를 맞이합니다. 이중섭은 같은 해 12월 6일 노모와 자신의 작품 대부분을 원산에 남겨둔 채 아내 야마모토 마사코와 두 아들, 조카와 함께 원산항에서 월남한 뒤 부산과 제주도에서 피란 생활을 합니다. 1952년엔 피란 생활의 어려움과 장인의 부고로 아내와 아이들을 일본으로 보낸 뒤 부산·통영·서울·대구 등지를 떠돌며 작품 활동을 이어갔죠.

'두 아이와 물고기와 게'(1950년대 전반). 이중섭이 한국전쟁이 발발한 뒤 월남해 가족과 함께 지낸 제주도 서귀포 시절을 회상하며 그린 작품. 국립현대미술관

'두 아이와 물고기와 게'(1950년대 전반). 이중섭이 한국전쟁이 발발한 뒤 월남해 가족과 함께 지낸 제주도 서귀포 시절을 회상하며 그린 작품. 국립현대미술관

전시 중인 작품에선 앞서 언급한 소 외에도 아이들·가족·끈과 같은 도상이 반복적으로 보였는데요. 긴 줄로 연결된 아이들과 물고기·꽃게가 등장하는 '두 아이의 물고기와 게'(1950년대 전반), 남녀노소가 초현실적으로 표현된 커다란 새와 물고기 사이에서 첫눈을 맞으며 뒹굴고 있는 '가족과 첫눈'(1950년대) 등이 여기에 해당하죠. 아이들·가족·끈 등은 가족을 향한 그리움과 그가 그리던 이상향이 담긴 도상이에요.

"이중섭은 피란 이후 1951년 1월부터 서귀포에서 약 11개월 동안 가족과 함께 지냈어요. 조그마한 초가집의 단칸방에 4명이 살면서 물고기와 꽃게를 잡아먹을 만큼 경제적 상황은 어려웠지만 그의 일생에서는 행복한 시기였죠. 이후 그린 작품에도 당시 생활이 반영돼 있어요."

예를 들어 '두 아이의 물고기와 게'는 이중섭이 제주도 서귀포에서 가족과 함께 살던 시절을 회상하며 그린 작품이에요. 그림 속 아이들은 긴 끈으로 연결되어 있고 끈의 양 끝에 물고기가 매달렸으며 화면 가운데에는 커다란 꽃게가 앞발로 끈을 당기고 있죠.

'가족과 첫눈'(1950년대). 눈이 펑펑 쏟아지는 겨울날 서귀포까지 눈을 맞으며 가족이 함께 걸어갔던 기억을 담아낸 작품. 국립현대미술관

'가족과 첫눈'(1950년대). 눈이 펑펑 쏟아지는 겨울날 서귀포까지 눈을 맞으며 가족이 함께 걸어갔던 기억을 담아낸 작품. 국립현대미술관

이중섭이 제주도에 정착한 이후 그린 작품으로 추정되는 '가족과 첫눈'은 제주도에 도착한 이중섭과 가족이 눈이 펑펑 쏟아지는 겨울날 서귀포까지 걸어갔던 기억을 담아낸 것인데요. 남녀노소가 초현실적으로 표현된 커다란 새와 물고기 사이에서 첫눈을 맞으며 뒹굴고 있는 모습으로 표현됐죠.

아이와 가족은 이중섭이 전쟁통에 피란 시절을 겪으면서 그의 이상향을 표현하는 도상으로 발전합니다. 그의 그림 속 아이들은 벌거벗은 채 원형으로 모여서 천진하게 놀고 있거나 끈으로 연결된 모습인 경우가 많죠. 그의 작품 세계에서 끈은 서로가 인연으로 얽힌 존재임을 의미함과 동시에, 공동체 의식을 드러내는 중요한 소도구예요. "아이들이 가진 순수한 마음이 미래를 더 밝게 만들 것이란 기대감을 담아 하나의 이상향처럼 표현한 거죠."

'부인에게 보낸 편지'(1954). 이중섭은 아내와 두 아이를 일본으로 보낸 후 꾸준히 아내에게 그림을 곁들인 편지를 보냈다. 국립현대미술관

'부인에게 보낸 편지'(1954). 이중섭은 아내와 두 아이를 일본으로 보낸 후 꾸준히 아내에게 그림을 곁들인 편지를 보냈다. 국립현대미술관

하지만 행복한 시절은 아내와 아이들이 일본으로 떠나면서 끝납니다. 이후 이중섭의 작품에는 가족을 향한 절절한 그리움이 담기죠. 1954년 11월경 일본에 있는 아내에게 보낸 '부인에게 보낸 편지'(1954)를 보면 가장자리에 아내와 아이들을 그리는 이중섭의 모습, 네 가족이 얼굴을 맞대고 부둥켜안고 있는 모습 등을 발견할 수 있어요. 가족과의 재회를 희망하는 작가의 간절함과 기대감이 담긴 거죠.

'가족을 그리는 화가'(1950년대 전반). 이중섭은 1952년 6월 가족을 일본으로 떠나보낸 후 가족과 아이들이 담긴 은지화를 그리기 시작했다. 국립현대미술관

'가족을 그리는 화가'(1950년대 전반). 이중섭은 1952년 6월 가족을 일본으로 떠나보낸 후 가족과 아이들이 담긴 은지화를 그리기 시작했다. 국립현대미술관

이중섭의 파란만장한 생애는 다른 화가들과 구별되는 그만의 개성을 꽃피우는 계기가 되기도 했어요. 'MMCA 이건희컬렉션 특별전: 이중섭'에서는 그가 그린 여러 점의 은지화를 만날 수 있어요. 은지화란 담배나 초콜릿을 싸는 은박지(알루미늄을 입힌 얇은 종이)를 화폭 삼아 못·철필·손톱 등으로 긁어 드로잉 한 뒤 갈색 안료·담뱃재 등을 바르고 종이·천으로 문질러 발색 효과를 낸 것이죠. 2022년까지 확인된 이중섭의 은지화 개수는 142개에 달하며, 이중섭의 친구인 시인 구상은 300점 정도로 추산하기도 하죠.

"1952년 가족과 헤어진 뒤 궁핍한 생활을 하던 이중섭은 사람들이 버린 은지에 독특한 기법으로 그림을 많이 그렸어요. 이 은지화의 가치를 처음 알아보고 수집한 이는 당시 한국에 와있던 미국인인데, 3점을 구입해서 뉴욕현대미술관(MOMA)에 기증하기도 했죠. 그 작품들이 2016년 '이중섭, 백년의 신화'에서 공개된 적도 있어요."

'닭과 병아리'(1950년대). 이중섭은 1940~1950년대까지 의인화시킨 새 또는 닭을 자신의 작품에 도상으로 자주 등장시켰다. 국립현대미술관

'닭과 병아리'(1950년대). 이중섭은 1940~1950년대까지 의인화시킨 새 또는 닭을 자신의 작품에 도상으로 자주 등장시켰다. 국립현대미술관

이중섭의 작품에는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독립을 향한 염원부터 헤어진 가족을 향한 그리움과 자신이 그리던 이상향까지 담겨있습니다. 그는 향년 41세의 나이로 안타깝게 세상을 떠났지만, 고단한 삶 속에서도 왕성한 창작욕으로 작품 제작에 매진한 그의 예술혼은 지금도 많은 사람이 이중섭을 일제강점기와 해방 전후 한국 화단을 대표하는 작가로서 아끼고 사랑하는 이유입니다.

'MMCA 이건희컬렉션 특별전: 이중섭'

기간 2022. 8. 12.(금) ~ 2023. 4. 23.(일)

장소 서울시 종로구 소격동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1전시실

관람 시간 월·화·목·금·일 오전 10시~오후 6시, 수·토 오전 10시~오후 9시

관람료 무료

'MMCA 이건희컬렉션 특별전: 이중섭'에는 그의 드로잉 작품을 시작으로 엽서화, 회화, 은지화, 편지화 등 90여 점이 전시돼 있어요. 이중섭의 작품에는 아이들과 가족, 그리고 소가 자주 등장하는데, 가족과 이별한 후 애절한 그리움을 담아 가족과 관련된 그림을 많이 그렸다고 해요. 이중섭 작품에서 표현되는 소는 (일제강점기를 살았던) 복잡미묘한 그의 내면세계를 반영한 듯해요. 가족을 일본으로 떠나보내고 아내에게 그림과 편지를 쓰면서 탄생한 엽서화와 편지화는 가족에 대한 그리움과 아내에 대한 애정이 가득했어요. 그리고 담뱃갑에 들어있던 은박지에 날카로운 도구(칼·못)로 윤곽선을 새기고 잉크를 칠한 후 닦아내 그린 은지화는 어려운 환경이지만 포기할 수 없는 그림에 대한 열정으로 만들어진 것 같아요. 작품마다 그가 살던 시대상을 반영했고 궁핍한 생활과 가족에 대한 애절함과 그리움이 남겨져 있었죠. 무엇보다도 전시를 감상하면서 그림에 대한 이중섭의 열정에 공감할 수 있었어요. 열정이 샘솟아야 하는 새 학기, 소중 독자들에게 그의 작품을 감상해 보라 권하고 싶어요.

김도경(인천 경연중 1) 학생기자

미술에 큰 관심은 없어도 화가 이중섭의 작품은 인터넷 등에서 많이 접해봤어요. 'MMCA 이건희컬렉션 특별전: 이중섭'에서는 '두 아이와 물고기와 게' '아이들과 끈' 등 제가 아는 작품들이 눈에 띄었죠. 그의 작품 중 담배를 포장하는 알루미늄 속지에 철필이나 못 등으로 윤곽선을 눌러 그린 은지화가 가장 흥미로웠어요. 돈이 없어 담배 속의 은지에 그림을 그렸다는 것이 안타깝기도 했지만, 이 은지화가 뉴욕현대미술관(MOMA)에 소장이 되었다는 사실을 듣고 자부심이 생겼어요. 유명한 화가를 떠올리면 피카소, 반 고흐, 레오나르도 다빈치 등 서양 화가들이 생각났었는데 이번 취재로 우리나라의 대표 화가라고 할 수 있는 이중섭 화가에 대해 더 자세히 알 수 있었고, 이중섭 화가가 자랑스러웠습니다.

최아민(경기도 미사강변초 6) 학생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