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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중앙] 판타지 속 판타지를 찾아서 62화. 알바 뛰는 마왕님

중앙일보

입력

세계를 뒤흔드는 마왕에게도 고민은 있다

마법과 신비가 존재하는 세계 엔테 이슬라. 중세 유럽을 닮았지만, 여러모로 다른 엔테 이슬라는 세상의 운명을 건 순간에 놓여있었습니다. 빛과 어둠을 상징하는 마왕과 용사의 결전이 벌어지고 있었던 것이죠. 마족의 왕, 마왕의 힘은 강력하고 무시무시했지만 세계를 구원하기 위해 선택된 존재, 용사의 힘은 이를 능가했어요. 마지막 순간, 용사만 사용할 수 있다는 전설의 칼이 바람을 가르며 마왕의 머리를 가격했습니다. 뿔 하나가 부러지고, 상처 입은 마왕은 무릎 꿇었죠.

하지만 마족을 위해 세상을 정복하겠다는 맹세를 포기할 수 없었던 마왕은 간신히 다른 세계로의 문을 열고 부하와 함께 달아났어요. “언젠가 다시 돌아오겠다.” 흔한 악당 대사를 남기며 떠난 마왕은 상자 모양의 거대한 건물이 즐비하게 늘어선 이상한 거리에서 눈을 떴습니다. 그들의 모습은 어느새 평범한 인간, 기묘한 망토를 걸친 사람으로 변해 있었죠. 얼마 남지 않은 마법의 힘으로 마왕은 자신들이 어떤 처지에 있는지 알게 됩니다. 그들이 도착한 곳은 엔테 이슬라가 아닌 다른 세계라는 사실을, 이곳엔 마법의 힘이 없다는 것을…. 하지만 그는 굴복하지 않았어요. 왜냐하면 ‘포기하지 않는 도전 정신’이야말로 판타지의 마왕에게 필요한 가장 중요한 조건이기 때문이죠. 그렇게 인간의 모습으로, 어느 현대 도시에 선 마왕은 살아남기 위한 도전을 시작합니다. 언젠가 힘을 되찾아, 엔테 이슬라만이 아니라 이 기묘한 세계도 손에 넣겠다는 야망을 품죠. 과연 마왕의 꿈은 이루어질 수 있을까요?

일본의 국민 RPG 게임 ‘드래곤 퀘스트’에서도 마왕은 용사가 물리쳐야 할 적으로 연출된다. 하지만 대부분 판타지 작품과 달리 『알바 뛰는 마왕님!』을 보면 마왕도 여러 고민이 있는 존재로 그려진다.

일본의 국민 RPG 게임 ‘드래곤 퀘스트’에서도 마왕은 용사가 물리쳐야 할 적으로 연출된다. 하지만 대부분 판타지 작품과 달리 『알바 뛰는 마왕님!』을 보면 마왕도 여러 고민이 있는 존재로 그려진다.

와가하라 사토시의 소설 『알바 뛰는 마왕님!』은 현대 일본과 판타지 세계를 오가며 펼쳐지는 마왕의 모험담입니다. 판타지의 주역인 용사가 아니라 마왕, 그것도 용사에게 패배한 마왕이 주인공인 독특한 이야기죠. 주인공인 마왕이 우리 세계에서 판타지 세계로 간 게 아니라 판타지 세계에서 우리 세계로 왔으며, 게다가 지극히 평범하게 살아간다는 점이 또 다른 재미예요. ‘지구도 정복하겠다’는 마왕이 사는 곳은 허름한 단칸방. 세계 정복의 첫걸음이라며 하는 일은 햄버거 가게 아르바이트죠. 그 수입으로 마왕을 포함해 둘, 나중에는 셋 이상이 먹고사니 당연히 잘 풀리지 않습니다.

알바 후 남은 햄버거로 저녁을 때우거나, 먹을 게 없어서 오이와 곤약만으로 세 끼 반찬을 삼는 일이 적지 않죠. 본래는 인간보다 훨씬 덩치가 크고 엄청난 힘을 지닌 존재지만, 마력이 없는 지구에선 평범한 인간. 이따금 본 모습으로 돌아가지만, 성격상 혼란을 수습하는 과정에서 힘을 다 써버려 인간으로 돌아갑니다.

마족의 왕인 마왕이자 판타지 세계에선 인간 세상을 침략해 수많은 사람을 해친 원흉이지만, 한편으론 파괴보다는 건설과 안정을 중시하는 통치자라는 점에서 독특한 인물이죠. 우수 직원으로 표창받을 만큼 친절한 데다 후배들에게도 좋은 선배니, 마왕을 쫓아 지구로 온 용사가 “대체 왜 마왕이 햄버거 가게 아르바이트나 하는 거야?”라며 이상하게 여기는 것도 당연해요.

사실 『알바 뛰는 마왕님!』의 마왕은 마족이라 불리는, 마력으로 살아가는 종족을 통치하는 왕을 부르는 이름입니다. 게임 등으로 친숙한 ‘세계를 파괴하는 존재’와는 거리가 멀죠. 인간 세계를 침공한 것도 어디까지나 마족에게 도움을 주고 싶다는, 마족에게 필요한 마력을 얻겠다는 것이 목표예요. 인간 세계에 혼란과 파괴가 이어진 것도, 그러려고 한 게 아니라 마왕과 마족들이 인간들을 전혀 몰랐기 때문입니다. 인간 세계인 지구에 와서 그 사실을 깨달은 마왕은, 자신의 행동을 반성하고 주어진 상황에 최선을 다하기로 하죠. 그래서, ‘햄버거 가게 알바를 하며 세계 정복을 노리는 마왕’이라는 재미있는 이야기가 진행됩니다.

판타지의 마왕은 흔히 ‘세계를 파괴하는 존재’로 그려지는데요. ‘반지의 제왕’에서 불타는 눈동자로 그려진 사우론 같은 존재가 대표적이죠. 그들의 목적은 파괴와 혼돈, 그리고 정복입니다. 이를 위해 온갖 음모를 꾸미고 힘을 휘두르며 세상을 파괴하고 사람들을 해치죠. 때문에 세계를 지키는 용사가 탄생하여, 그를 물리치고 이야기는 행복하게 막을 내립니다.

그런데 정말로 마왕은 그런 존재일까요. 무언가 이유가 있어서, 적어도 그에게 있어서는 올바르다고 생각한 무언가를 위해서 행동한 것은 아닐까요? 『알바 뛰는 마왕님!』은 바로 마왕과 마족에게도 뭔가 고민이 있다는 점을 생각하게 해 줍니다. 마족을 구하겠다는 목적이 있다 해도, 인간 세계를 침공하고 파괴와 혼란을 가져온 것은 분명 잘못된 일이에요.

하지만, 세계 파괴나 세계 정복 같은 개인적인 야망이 아니라, 마족의 지도자로서 행동하려던 주인공의 모습은, 나아가 자기 잘못을 후회하며 마족만이 아니라 인간을 포함한 세상 모든 사람의 행복을 위한 길을 찾아가는 마왕의 모습은, 마왕이라는 것이 단순히 사악한 괴물이나 파괴자가 아니라, ‘왕’이라는 이름에 어울리는 통치자임을 잘 보여줍니다. 용사와 마찬가지로, 마왕도 게임 속 시스템이나 캐릭터가 아니라, 여러 가지 고민을 지닌 존재라는 말이 아닐까요.

전홍식 SF&판타지도서관장

전홍식 SF&판타지도서관장

※ 외부 필진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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