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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봉렬의 공간과 공감

‘네모난 달항아리’ 속 공공 광장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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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김봉렬 건축가·한국예술종합학교 명예교수

김봉렬 건축가·한국예술종합학교 명예교수

강남에 이어 새로운 고층 숲이 돼 가는 용산 지역에 단아한 모습의 아모레퍼시픽 빌딩이 자리 잡고 있다. 화장품 회사의 사옥답게 서울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물이라는 평을 받는다. 22층이니 결코 낮지는 않지만 40층에 달하는 주변 건물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키가 작다. 이 하얀 정육면체의 건물은 좁고 높은 침엽수 숲속에 감추어진 보물상자와 같다.

건축가는 영국 출신의 데이비드 치퍼필드다. 세계 건축계는 그를 고전적 품격과 현대적 감성을 동시에 지닌 대가로 평가한다. 이 건물에도 그리스 신전과 같은 고전적 어휘들, 즉 엄격한 비례와 절제된 형태를 구현했다.

아모레퍼시픽 사옥

아모레퍼시픽 사옥

그는 조선시대 달항아리에 매료돼 이 건물을 네모난 달항아리로 만들려 했다고 밝혔다. 유리면 위를 알루미늄 루버로 감싼 이중 표면은 백자 달항아리의 투명한 유약과 흰 백토를 연상케 한다. 서양 고전의 뼈대 위에 한국 고전의 피부를 입혔다고 할까.

1층부터 3층까지는 거대한 하나의 공간(사진)이다. 강당과 식당·카페 등 약간의 편의시설들이 모서리에 있지만 대부분은 말 그대로 비어 있는 공간이다. 아모레 스퀘어로 이름 지은 이 실내 광장은 사방에 문을 두어 자유롭게 출입할 수 있다. 5층 옥상에 조성한 인공 연못이 광장의 천장이 돼 물결 아른거리는 은은한 햇빛이 내부를 밝힌다. 임대료로 치자면 가장 비싼 저층부를 외부의 도시에 완전 개방해 공공 공간으로 바꾸었다.

아모레퍼시픽 빌딩은 시민들이 자유롭게 방문하고 만나고 머무르는 새로운 명소가 되고 있다. 유별난 시설이 있거나 특별한 이벤트를 하는 곳도 아니다. 오로지 완성도 높은 건축과 차분한 품격의 공간이 있기 때문이다. 또한 건축가의 참신한 설계 개념과 사적인 공간을 개방한 기업의 배려에 공감하기 때문이다.

김봉렬 건축가·한국예술종합학교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