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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폭 대책, 피해자·가해자 치유가 우선돼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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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박옥식 한국청소년폭력연구소 소장

박옥식 한국청소년폭력연구소 소장

학교 폭력 문제는 우리 사회 앞날을 좌우하는 사회적 해결 과제라 할 수 있다. 최근 특권층 아들의 학교 폭력 문제가 우리 사회에 다시 한번 경종을 울리는 가운데 새로운 해법을 찾기 위해 다각적인 주장이 펼쳐지고 있다. 정책 대안 마련을 위한 논의도 들끓고 있다. 학교 폭력은 강자와 약자의 사회적 관계가 스며들기 시작하는 청소년기의 특징이기도 하지만, 오늘날에는 부모들의 개입으로 더욱 문제가 되고 있다.

부모들의 법률적 힘과 사회적 지위를 이용하는 ‘부모 찬스’라는 용어가 생길 정도로 부모가 학교 폭력 문제에 개입하는 일이 빈번하다. 그 부작용으로 힘 있는 부모를 가진 청소년들이 학교 폭력을 자신의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장난으로 치부하는 일이 생기고 있다. 반면 ‘부모 찬스’를 누리지 못하는 피해 청소년들은 마음의 병을 얻고 학교·사회 부적응 등으로 이어진다. 심할 경우 극단적 선택에 이르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교사 중심 피해자 치유 강화하고
피해자 회복 위한 제도 마련해야
가해자 반성과 화해 노력도 중요

일러스트= 김지윤 기자 kim.jeeyoon@joongang.co.kr

일러스트= 김지윤 기자 kim.jeeyoon@joongang.co.kr

학교 폭력 문제는 과거에도 있었지만 이로 인한 자살 사건이 이어지며 1995년 ‘학교 폭력’ 용어가 등장했고, 2004년 ‘학교폭력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이 제정됐다. 2011년 학교 폭력으로 인한 대구 권모 군의 자살 사건을 계기로 학교 폭력에 대한 새로운 전환점이 만들어졌다. 이후 2012년 학교폭력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 개정을 통해 보다 강력한 조치가 마련되면서 학교 폭력이 대폭 감소하는 성과를 거두게 되었다. 2020년 학교 폭력 문제에 대한 심의 의결 기능이 학교에서 교육지원청으로 이관되고,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로 변경되는 등 대폭 개선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학교 폭력 문제는 학교의 문제에서 그치지 않고, 가정과 사회로 확산하는 상황에 이르고 있어 근본적 대책 마련이 요청된다. 학교 폭력 대책 수립에 있어 가장 큰 문제점은 큰 사건이 발생하여 사회적 이슈가 되면 그제야 문제를 진단하고 설왕설래하다가 정부의 강력한 대책과 제도가 만들어진다는 점이다. 우리나라가 선진국 반열에 들어섰음에도 학교 폭력 문제에 대해서는 아직도 앞을 내다보고 대비하는 미래지향적 접근이 미흡한 실정이다. 학교 폭력 관련 기관·단체들이 가해자 중심의 선도 대책을 강조해온 것도 문제다. 사건이 벌어지면 뚜렷한 대응 방안을 마련하지 못하는 가운데 양분된 의견으로 시시비비를 벌이다 시간이 지나면 흐지부지되어 버렸다.

이제는 학교 폭력 피해자·가해자 모두가 우리 자녀라는 입장에서 냉철하고도 합리적인 대책 마련이 필요할 때다. 먼저 학교 폭력 피해자에 대한 치유와 회복을 위한 적극적인 법적·제도적 장치 마련과 함께 효과적인 전문 상담 프로그램이 절실하다. 요즘 가정의 기능 약화로 인해 가정이 담당할 수 없는 사회적 여건이 조성되고 있으므로 학교와 지역 사회에서의 청소년 보호 역할과 기능이 강조되어야 한다. 특히 학교에서 교사들을 중심으로 한 치유와 회복 기능을 강화해 나가야만 청소년들이 학교 폭력 수렁에서 빠져나올 수 있다. 학교 폭력 피해자들은 학교·사회 생활에서 적응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아 인생 전체가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경우가 빈번하므로 학교에서 교사들을 중심으로 한 치유와 회복 기능을 강화해 나가야 한다.

최근 학교 폭력을 당한 경험을 밝히는 ‘학폭 미투’가 연예계·스포츠계·공직에서 빈번하다. 그때마다 학교 폭력을 당한 지 10년 이상이 지난 이후에도 커다란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다. 이는 학교 폭력 후유증이 그만큼 크다는 사실을 방증한다.

가해 청소년의 경우도 실효성 있는 치유와 회복을 위한 대책이 필요하다. 강력한 처벌과 징계를 통한 대책 마련도 필요하나 그것만으로는 온전한 대책이 될 수 없다. 그렇다고 해서 무조건적 용서와 선처 또한 바람직한 해법이 될 수 없다. 학교 폭력 문제의 완전한 해결은 피해자와 가해자의 완전한 화해가 이루어질 때 가능하다. 가해자의 진정성 있는 반성과 함께 피해자와의 화해를 위한 노력이 중요하다.

새롭게 추진되는 학교 폭력 대책은 피해자·가해자 간 양극화되거나 한쪽으로 편향된 대책의 틀에서 벗어나야 한다. 피해자·가해자 모두 화해를 통한 치유와 회복을 거쳐 건강한 사회구성원으로 복귀할 수 있도록 실효성 있는 대책이 마련되길 기대한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박옥식 한국청소년폭력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