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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은희의 미래를 묻다

심장·폐·간…사람 장기 닮은 오가노이드 어디까지 진화할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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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이은희 과학커뮤니케이터

이은희 과학커뮤니케이터

2022년 말, 미국에서는 1938년 이래 84년간 지속해 왔던 동물실험 의무 규정을 삭제하는 법령이 통과됐다. 많은 이들이 생명에 대한 인류의 인식 수준과 윤리적 기준의 변화를 나타내는 시대적 흐름이 반영된 결과라며 반가워한다. 하지만 이 의무 조치 해제의 이면에는 생명체를 바라보는 근본적인 시각의 변화 역시 담겨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사실 동물실험에 대한 반대론은 아주 오래전부터 있었지만, 이를 없애기는 쉽지 않았다. 대안이 없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아무리 명분이 중요하다고 하더라도, 실질적 대응책이 없다면 그 명분은 힘을 받지 못하기 마련이다.

동물실험 의무화 2022년 사라져
동물 대신에 오가노이드로 연구
살아서 기능하는 인공조직·장기
미래엔 이식용 장기도 가능할듯


생명 지식에 대한 자신감 반영

미국 UCLA 연구진이 줄기세포를 이용해 만든 신경 줄기세포(빨간색)와 피질뉴런(녹색)이 있는 미니 뇌 오가노이드 조각. [사진 UCLA]

미국 UCLA 연구진이 줄기세포를 이용해 만든 신경 줄기세포(빨간색)와 피질뉴런(녹색)이 있는 미니 뇌 오가노이드 조각. [사진 UCLA]

그렇기에 이번 동물 실험법 의무화의 해제 이면에는 명분을 뒷받침할 수 있을 만큼의 실질적 대응책을 손에 넣었다는 인식이 깔렸을 수밖에 없다. 그간 우리가 생명에 대해 연구하면서 알아낸 지식으로 생명을 어느 정도까지는 비슷하게 모사할 수 있게 됐다는 가능성이 자신감이 돼 명분을 뒷받침해 준 것이다.

사실 동물실험을 대체하기 위한 방식은 그동안도 많이 연구돼 왔다. 그중에서 눈에 띄는 것이 바로 오가노이드다. 오가노이드란 각종 장기를 의미하는 ‘오건(organ)’에 ‘~와 비슷한’이라는 뜻의 접미사인 ‘오이드(oid)’가 결합한 단어다. 생명체에서 직접 추출한 장기는 아니지만, 그 장기와 기능과 구조가 유사하도록 만들어낸 세포들의 조합으로, 일종의 장기 모사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단순히 세포를 모아 쌓은 것이 오가노이드로 기능할 수는 없다. 실제 생물체의 장기는 여러 조직으로 구성되어 있고, 조직들은 다시 다양한 종류의 세포가 모여서 이루어진다.

예를 들어 식도라는 기관은 언뜻 보기엔 그저 구강과 위장을 이어주는 단순한 통로인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점막, 점막하 조직, 근육층, 외막 조직 등으로 이뤄졌다. 각 조직을 구성하는 세포의 종류도, 세포의 역할도 다른 복합적 존재이다. 또한 이 모든 것이 저마다 자리에서 제 기능을 수행하지 않으면, 음식물을 제대로 삼킬 수 없어 개체 전체의 생존에 위협을 받게 된다.

따라서 식도 모사체를 만들기 위해서는 식도를 구성하는 다양한 세포가 모두 제 기능을 해야 할 뿐 아니라, 이들이 유기적으로 결합한 조직들이 적절한 구조를 형성해야 한다. 따라서 오가노이드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해당 장기를 이루는 세포로 이루어져야 할 뿐 아니라, 그 장기가 가진 특유의 구조를 형성해야 하며, 장기가 체내에서 담당하는 기능을 재현할 수 있어야 한다는 3가지 조건을 모두 만족해야만 한다.

생체 외부에서 오가노이드를 인공적으로 만들 수 있다는 가능성이 처음 제시된 것은 10여 년 전의 일이다. 네덜란드의 한스 클레버 박사는 생쥐의 장에서 추출한 줄기세포를 이용해 장의 조직을 모사한 오가노이드를 만들었다. 그 연구 내용을 담은 논문은 2009년 국제학술지 네이처에 발표됐다. 이어 2013년에는 특정 줄기세포 대신 모든 세포로 분화가 가능한 전분화능 줄기세포를 이용해 다양한 오가노이드를 제작하는 방법도 고안됐다.

전분화능 줄기세포를 이용해 오가노이드를 만드는 것을 쉽게 이해하기 위해서 콩나물을 예로 들어보자. 한 알의 콩에는 식물 전체로 자랄 생명력이 들어 있다. 하지만 이를 물이 잘 빠지는 용기에 담고 검은 천으로 가린 채 물을 계속 부어주면 잎이 없는 콩나물로 자라나는 것처럼, 전분화능 줄기세포를 특정 조건을 통해 원하는 장기를 구성하는 세포들로 자라나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이 방식은 생체의 자연발생 방식을 따라 하기 때문에 장기의 복잡한 구조를 재현하는 데 유리하다. 다만 생물체의 장기는 종류가 매우 다양하고, 아직까지는 전분화능 줄기세포를 다양한 장기 중 특정한 하나로만 정확히 자라게 하는 방법은 여전히 숙제로 남아있다. 하지만 현재의 기술로도 대장 및 소장·위장과 같은 소화기관부터 심장·신장·폐·간·췌장 등의 내장기관과 피부·망막·내이·뇌 등 다양한 오가노이드가 만들어지고 있다.

암 등 난치성 질환 치료에 큰 도움

살아서 기능하는 장기와 조직이라니, 언뜻 이들을 조합하면 하나의 생명체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공상과학(SF)적 상상력이 떠오르기도 한다. 물론 이는 아직은 상상일 뿐이다. 현재 실험실에서 만들 수 있는 오가노이드 종류는 하나의 생명체를 만들기에는 턱없이 부족할뿐더러, 각 오가노이드들의 크기 역시 실제에 훨씬 못 미친다. 최초로 만들어진 심장 오가노이드의 크기는 겨우 2㎜에 불과했으며, 다른 오가노이드들의 크기 역시 대동소이하다.

하지만 비록 크기는 작아도 장기의 형태와 구조를 갖추고 기능을 수행하기에, 다양한 약물 실험체로 기능해 동물실험을 대체하고, 암과 같은 난치성 질환의 연구 모델로 그 역할을 확장하고 있다. 또한 동시에 오가노이드들의 크기와 종류·구조에 대한 연구도 진행되고 있어, 머지않은 미래에는 오가노이드 기술을 이용해 이식용 장기의 생산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가능성도 조심스레 제기되고 있다.

한 생명을 위해 다른 생명을 대신 희생시키는 것이 부당하다는 의식의 변화에서 생명체를 희생시키지 않는 방식을 실제로 찾아냈고, 다시 이를 통해 또 다른 생명을 살려내는 기술까지도 이어지는 일련의 과정에서, 인류가 지적 생명체로 진화한 가치가 보이는 듯싶어 앞으로가 더욱 기대된다.

이은희 과학커뮤니케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