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향은 LG전자 CX담당 상무
요즘 공유오피스를 이용하는 스타트업이 늘고 있다. 자유로운 분위기, 과감한 인테리어, 다양한 회의 공간에 놓인 멋진 의자, 역세권에 탁 트인 뷰 등이 이점으로 꼽힌다. 그런데 공유오피스가 국내에 도입될 무렵 실시한 한 고객조사에서 흥미로운 결과가 나왔다.
입주자들이 가장 좋아하는 서비스는 편리한 근무환경보다 무료로 제공되는 시리얼과 우유였다. 직원들의 허기를 챙겨주는 작은 배려이자, 그것도 무제한으로 제공하는 센스는 매우 디테일하고 다분히 감성적이지만 효과는 단단했다. 대표적인 오피스 영화 ‘인턴(The Intern)’에는 직원의 자리를 다니며 마사지로 업무 스트레스를 풀어주는 테라피스트가 등장한다. 이러한 기발한 복지 프로그램은 직원에 대한 진정성 있는 존중 없이는 불가능하다.
임금 못지 않게 중요한 조직문화
대이직의 시대, 직원들 존중해야
성취·행복감 높이는 감수성 필요

일러스트= 김지윤 기자 kim.jeeyoon@joongang.co.kr
전 세계에 AI 민주화를 가지고 온 챗GPT가 올해 안에 다음 버전인 GPT4 출시를 예고했다. AI의 놀라운 발전 속도를 보았을 때 머잖아 가히 AI 만능세상이 열릴 것 같다. 이러한 세상은 일찌감치 예견되었다. 미래학자 레이 커즈와일(Ray Kurzweil)은 2005년 그의 책 『특이점이 온다』(Singularity is near)에서 인공지능이 사람 같은 감정을 느끼게 되는, 그런 소름 돋는 시점을 2029년이라 예측했다. 어디 그뿐인가. 전 세계 모든 인간의 두뇌를 합친 것보다 AI가 우월해지는 지점을 특이점(singularity)이라 했고, 그 시점을 2045년으로 예견했다.
과연 기술이 인간을 초월하게 되면 우리는 어떠한 삶을 살게 될까. 인간이 인공지능이 만들어내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게 될까. 인간이 인공지능을 통제할 수 없는 디스토피아를 막아낸다 하더라도 사무실의 환경 변화는 막을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연봉 인상이나 복지에 대한 어떠한 요구도 하지 않고 휴가도 없이 일하는 AI로봇에 의해 업무의 상당 부분은 자동화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미 금융권에는 AI로봇이 인간 자산관리사보다 높은 수익률을 보이고, 의료계에서는 AI가 CT와 MRI 등의 영상을 분석해서 종양의 크기·위치·형태 등을 평가해 암 진단 및 예후 예측을 수행하고 있다.
오늘날은 ‘대이직의 시대(Great Resignation)’로 불린다. 잦은 이직을 경력관리로 여기는 직업관이 확산하고 있다. 이런 추세 속에서 기업들은 직원들의 생산성을 넘어 감수성을 관리하는 ‘EX(Employee Experience)’ 시대를 맞았다. 경험경제의 가장 큰 축을 담당하는 고객경험과 함께 등장한 직원경험은 직원도 고객임을 전제로 한다. ‘EX’는 조직문화, 업무 환경, 개발 기회, 역할 및 책임, 창의성 및 자율성, 웰빙과 삶의 질 등 직원들이 조직 내에서 느끼는 모든 경험을 의미한다.
기업들이 경쟁력 있는 인재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경쟁력 있는 EX가 필수 요건이 되고 있다. 보상은 주로 현금 또는 그에 준하는 이익을 통해 직원들의 동기 부여를 촉진하는 반면, EX는 직원들이 조직에서 느끼는 총체적인 경험을 끌어올려 직원들의 창의성, 열정, 행복을 돕는다. AI직원들은 원하지 않을, 하지만 현재 당면한 어려운 숙제다.
인재유치보다 어려운 것이 인재유지다. 인재는 단순히 급여나 혜택만으로 유지되지 않는다. 직원들은 그들이 일하는 회사의 문화와 가치, 업무환경 등에 대한 만족도를 고려해 직장을 선택한다. 오늘날은 돈을 벌 수 있는 길과 수단이 수십 갈래나 된다. ‘나인 투 식스’로 일하지 않고도, 자유롭게 시간을 쓰면서도, 불편한 옷을 차려입고 사무실에 나가 있지 않고도 생활비를 벌 수 있는 다양한 일이 생겨났다. 즉 직장이 갖는 절대적 가치가 갈수록 약화하는 상황 속에서 피고용인들의 위상은 날로 높아져 가고 있다. 이런 흐름 속에서 EX는 미래 기업이 가져야 할 주요 덕목이자 경영전략 중 하나로 부상하고 있다.
기업들도 달라져야 한다. 만연한 내부 세력다툼 속에, 고객의 입이 아닌 상사의 입만을 보며 소모되고 소진되어 조용히 떠날 채비를 하는 인재가 없는지 돌아봐야 한다. 직원경험에 대한 고찰은 회사와 직원 모두에 필요하고 구체적일수록 좋다. 정말 일 잘하는 사람들의 보상은 돈이 아니라 성취감과 인정이며 그 성취를 함께 이룩한 동료가 선물이다. 돈으로 살 수 없는 그 무엇을 EX로 채울 수 있어야 한다. 흔히 아이들은 부모의 거울이라 한다. 직원들 역시 그 회사의 거울이다. 대접받아본 직원이 고객을 대접할 수 있다.
이향은 LG전자 CX담당 상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