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백자·청자만 고미술인가…반닫이도 내겐 ‘미스 코리아’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8면

양의숙 한국고미술협회장(예나르 대표)은 “우리 선조가 만든 민속 공예품이야말로 ‘오래된 아름다움’의 전형”이라고 말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양의숙 한국고미술협회장(예나르 대표)은 “우리 선조가 만든 민속 공예품이야말로 ‘오래된 아름다움’의 전형”이라고 말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제주에서 나고 자란 그는 어린 시절부터 주변의 예쁜 것들에 관심이 많았다. 대부분 우리 민속 공예품이었다. 서울에서 사범대학을 졸업한 뒤 홍익대 대학원에서 공예를 전공하고 1970년대 중반 작은 공예점을 차렸다. 50년 역사의 고미술 화랑 예나르 대표이자 현재 고미술협회를 이끄는 양의숙(76) 회장 얘기다.

진품 고미술 명품 이야기

진품 고미술 명품 이야기

지난달 그가 가나문화재단 지원으로 고미술과 함께해온 삶을 돌아보며 산문집 『진품 고미술 명품 이야기』(까치·사진)를 펴냈다. “책을 쓰는 것이 나와는 동떨어진 일만 같아서 미루고 미뤄왔다”는 그는 “고미술에 관심 있는 분들에게 작은 도움이라도 되고 싶어 용기를 냈다”고 했다.

여기서 ‘고미술’은 옛 그림이나 백자, 청자만 가리키지 않는다. 목등잔, 뒤주부터 주칠장 등 목가구, 조선의 카펫 ‘조선철’, 화약통과 화살통, 탕건과 노리개까지 오랜 세월과 생활 흔적을 담은 ‘아름다운 우리 것’을 모두 아우른다. 전통 미술과 공예에서 그는 어떤 아름다움을 본 것일까. 서울 인사동예나르에서 그를 만났다.

반세기 경험을 책 한 권에 풀었다.
“처음엔 교과서 같은 책을 쓰고 싶었다. 그런데 주변에서 ‘정보는 인터넷에 많다. 당신이 직접 경험한 얘기를 쓰라’고 말리더라. 그래서 달항아리부터 열쇠패, 약과판까지, 제가 아름답다고 느낀 고미술품, 그동안 만난 스승과 수집가들 얘기를 최대한 솔직하게 썼다.”
염주함, 조선 초기, 은행나무, 19x19.5x5㎝. [사진 가나문화재단]

염주함, 조선 초기, 은행나무, 19x19.5x5㎝. [사진 가나문화재단]

왜 고미술에 끌렸나.
“제겐 이런 게 모두 ‘미스 코리아’다. (웃음) 처음엔 너무 소박해 눈에 띄지 않는데, 볼수록 진정한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사람 같다. 고미술엔 그 시대 생활상, 치열한 장인 정신이 녹아 있을 뿐만 아니라 한국 특유의 정서와 아름다움까지 담겨 있다.”
KBS1 ‘TV쇼 진품명품’에 오래 출연했다.
“첫 회부터 출연했다. 초기엔 ‘사람 그렇게 안 봤는데, 어떻게 우리 문화재에 값을 매기냐’는 얘기도 많이 들었다. 역사가 있는 우리 것을 조금이라도 더 알리고 싶었다.”
진품과 위작을 가리는 일이 쉽지 않았을 텐데.
“그동안 명품을 직접 보는 눈 호사도 누렸고, 젊은 날엔 가짜 물건을 사들이는 아픈 경험도 했다. 제대로 된 안목을 갖기까진 수업료도 많이 지불한 셈이다. 고미술 감정도 오랜 경험과 노력이 필요하다. 출처를 파악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무엇보다 명품을 많이 접하고 보아야 한다.”
다래함(가체 보관함), 19세기, 은행나무, 16x24.5x24.5㎝. [사진 가나문화재단]

다래함(가체 보관함), 19세기, 은행나무, 16x24.5x24.5㎝. [사진 가나문화재단]

그는 “유물의 가치와 가격은 다르다. 시기에 따라 반닫이, 책장, 도자기 등 인기 품목이 변하기도 한다”며 “가격 책정엔 보존성, 희소성, 예술성뿐만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알아내는 감수성도 중요해 항상 긴장을 늦출 수 없다”고 말했다.

책에 고미술에 대한 사랑이 남달랐던 분으로 권옥연(1923~2011), 김종학(85) 화백을 특별히 언급했다.
“두 분 모두 단골손님이었는데, 권 화백은 주로 고가구에, 김 화백은 민예품에 관심이 많았다. 우리 전통 미감을 깊이 이해하고 이를 작업 세계에 녹여낸 분들이다. 그 밖에도 고미술 사랑이 남다른 여러 수집가와, 아름지기재단처럼 우리 전통문화의 아름다움을 연구하고 널리 알리는 곳이 있다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저승효행상(黃泉孝行像), 19세기, 철(무쇠)에 채색, 12x26x33㎝. [사진 가나문화재단]

저승효행상(黃泉孝行像), 19세기, 철(무쇠)에 채색, 12x26x33㎝. [사진 가나문화재단]

권 화백과 부인인 무대설치가 이병복(1927~2017)은 전국의 아름다운 고택을 여러 채 매입해 경기도 남양주시 금곡으로 옮겨와 무의자박물관을 세웠다. 김 화백은 수집한 300여 점의 소장품을 1987년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했다.

양 회장이 처음 구입한 전통 목가구는 한상수(1935~2016) 자수 장인이 소장했던 너 말들이 뒤주였다. “신혼 초 이 뒤주를 산 뒤 실생활에서도 유용하게 썼다”고 말했다. 45년 전 친정어머니가 준 작은 알반닫이를 자신의 귀한 소장품으로 꼽았다. “비싼 것은 아니지만, 첫 아이가 태어나자 머리맡에 두고 쓴 사랑스러운 물건이었다”고 말했다.

고미술 수집 초보자에게 조언한다면.
“최고 수준의 물건을 원한다면 노력하며 심미안을 키워야 한다. 또 물건을 살 때는 형편에 맞게 사야 한다. 능력으로 살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정하고, 살 수 없는 것은 포기할 줄 알아야 한다.”

인터뷰를 마치며 그는 “아름다운 물건이란 그것을 쓰는 사람의 마음가짐에서 완성된다”며 “우리 가까이에 있는 작은 반닫이 하나라도 정말 소중하게 생각하고, 가꾸고, 후손들에게 물려주는 게 바로 문화재 사랑”이라고 말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