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론스타 사태 주범' 스티븐 리 전 론스타코리아 대표, 미국서 체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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론스타 사태의 주범인 스티븐 리(54) 전 론스타코리아 대표가 한·미 사법당국의 공조로 지난 2일(현지시간) 미국 뉴저지주에서 체포됐다. 2006년 8월 법무부가 범죄인 인도 청구한 지 17년 만이다.

스티븐 리 전 대표는 미국계 사모펀드인 론스타가 정·관계 로비로 외환은행을 헐값에 사들인 뒤 천문학적인 차액을 남겨 되팔았다는 론스타 사태의 주범으로 꼽혔다. 2006년 대검찰청 중앙수사부는 “관료들이 외환은행의 부실을 부풀려 3400억∼8200억원을 덜 받고 론스타에 헐값 매각했다”고 결론짓고, 당시 실무책임자였던 변양호 전 재정경제부 금융정책국장을 기소했다. 그러나 의혹의 핵심인 스티븐 리는 2005년 가을 이미 미국으로 도피해 의혹 규명에 어려움을 겪었다. 대법원은 결국 변 전 국장에 대해 무죄를 확정했다.

다만 검찰은 헐값 매각 의혹과 별도로 론스타의 ‘외환카드 주가조작 사건’에선 유죄를 끌어냈다. 외환카드 주가조작 사건 수사에는 윤석열 대통령, 한동훈 법무부 장관, 이복현 금융감독원장 등도 참여했다.

스티븐 리의 구체적 신원은 베일에 가려있다. 한국계이지만 한국어를 거의 못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출생지도 미국 LA, 한국 등으로 엇갈린다. 하버드대에서 경영학 석사학위(MBA)를 받았고, 론스타 한국지사가 설립된 1998년부터 한국시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론스타 본사에서 서열 3~4위급에 올랐다고 한다.

스티븐 리는 2017년 8월 이탈리아에서 한 차례 검거됐으나 10여일 만에 석방된 뒤 잠적하는 등 국내 송환에 실패했다. 이 과정에서 법무부가 스티븐 리가 석방된 지 나흘이나 지나서야 이탈리아에 범죄인 인도 청구를 한 사실이 드러나 논란이 있었다. 당시 한국 정부가 스티븐 리 검거 사실을 뒤늦게 인지한 바람에 놓친 것이다.

그러다가 지난해 한동훈 법무부 장관 취임 이후 정부는 론스타 사건에 대한 전면 재검토에 착수했다. 검찰 관계자는 “지난해부터 한동훈 장관 등이 미국 내 고위급 채널을 통하는 식으로 송환 전략을 전면 수정했다”며 “한 장관이 미국 출장에서 ‘겨우 법무부 형사국장을 만났다’는 식으로 야당이 비난할 때마다 답답했다”고 말했다. 다른 검찰 관계자는 “이전 정부가 다소 관성적으로 일한 측면이 있지 않나 생각한다”고 말했다.

지난달 이노공 법무부 차관이 일본에서 열린 ‘아·태 지역 형사사법포럼’ 참석 당시 미국 법무부 고위급 대표단과 양자 회의를 하고 스티븐 리에 대한 범죄인 인도 절차의 신속한 진행을 요청한 것이 계기가 됐다고 법무부는 설명했다.

법무부는 스티븐 리의 최신 미국 소재지 자료를 분석해 미국 당국에 제공했고, 이 정보를 바탕으로 미국 뉴저지주 연방 검찰청이 스티븐 리를 체포할 수 있었다.

스티븐 리가 국내 송환되면 우리 정부와 론스타가 벌이고 있는 투자자·국가 분쟁 해결(ISD) 취소절차에 새로운 동력을 보탤 것으로 보인다. 앞서 론스타는 우리 정부가 외환은행 매각절차를 지연시켰다며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ICSID)는 지난해 8월 우리 정부가 론스타에 202억1650만 달러(약 2855억원)와 일부 지연이자를 물어줘야 한다고 결정했다.

법무부 관계자는 “스티븐 리 송환은 미국 사법당국이 형사공조에 동참해 준 결과”라며 “미국이 자국민을 주가조작 혐의로 체포해달라는 요구를 받아들인 것은 대단히 이례적”이라고 설명했다. 법무부는 미국 측과 협조해 스티븐 리의 범죄인 인도 재판을 진행하고 신속하게 송환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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