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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신 80대 할머니 끝내 사망…1년의 생활고, 아무도 몰랐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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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사각지대에서 생활고에 시달리다 서울 마포구 도화동의 한 오피스텔에서 분신을 시도한 김모(83·여)씨가 지난 2일 끝내 숨졌다. 김씨는 지난달 28일 도화동의 오피스텔에서 분신을 한 뒤 전신 69%에 3도 화상을 입었다. 김씨 장례는 무빈소로 치러져 5일 발인을 마쳤다.

지난달 28일 새벽 80대 할머니 김씨가 분신을 시도한 서울 마포구 도화동 오피스텔 화재 현장. 이 사고로 김씨가 지난 2일 사망했고, 추가 인명 피해는 없었다. 사진 소방재난본부

지난달 28일 새벽 80대 할머니 김씨가 분신을 시도한 서울 마포구 도화동 오피스텔 화재 현장. 이 사고로 김씨가 지난 2일 사망했고, 추가 인명 피해는 없었다. 사진 소방재난본부

별다른 소득이 없었던 김씨는 이 오피스텔에서 약 15년간 함께 산 90대 할아버지 안모씨가 지난해 4월 사망하면서부터 줄곧 생활고와 주거 불안에 시달렸다. 김씨가 거주하던 오피스텔도 먼저 숨진 안씨의 가족 소유였다. 김씨는 지난해 7월부터 8개월간 이 오피스텔의 관리비를 체납했다. 김씨 주변 사람들에 따르면, 김씨가 숨지기 직전엔 난방도 제대로 되지 않았다고 한다.

‘어려운 독거노인’이 된 김씨의 사정을 정부와 지자체의 복지망은 포착하지 못했다. 김씨의 거주지가 ‘오피스텔’이었기 때문이다.

정부는 복지 사각지대를 방지하기 위해 단전·단수, 건강보험료 체납, 기초생활수급 탈락·중지, 공동주택 관리비 체납 등 39종의 위기 정보를 수집한다. 하지만 오피스텔이 아파트·빌라와 같은 공동주택에 포함되지 않는 탓에 김씨는 어떤 상황도 보고되지 않는 이른바 ‘복지 사각지대’에 놓였다. 마포구청 관계자는 “오피스텔은 주거용이 아닌 사무용으로 분류돼 시스템에 수집이 안 된다”며 “오피스텔에 취약계층이 많이 거주하는 만큼 제도 개선이 필요한 부분”이라고 설명했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위기 가구 발굴은 39종의 위기 정보를 종합한 시뮬레이션을 통해 1년에 6회씩 이뤄지고 있다”며 “지난해 이후 기록에서 김씨가 위기 가구로 분류된 사실은 없다”고 말했다.

생활고와 주거 불안을 비관해 서울 마포구 도화동 오피스텔에서 분신한 80대 할머니 김씨의 화장이 5일 서울 서초구 원지동 서울추모공원에서 치러지고 있다. 김정민 기자

생활고와 주거 불안을 비관해 서울 마포구 도화동 오피스텔에서 분신한 80대 할머니 김씨의 화장이 5일 서울 서초구 원지동 서울추모공원에서 치러지고 있다. 김정민 기자

김씨는 지난해 9월 28일 주민센터를 통해 기초생활수급자 신청 상담도 받았다. 마포구청 관계자는 “기초생활수급자 상담 때 집주인에게 사용대차확인서를 받아야 한다고 말씀드린 뒤로 추가 연락이 오지 않았다”고 말했다. 사용대차확인서는 전·월세 계약 형태가 아닌 거주자가 정부 지원금을 받을 때 요구되는 서류다. 임대인이 ‘주거를 지원 중’이라고 확인해주는 절차다.

김씨의 이웃들도 속사정까진 알지 못했다고 입을 모았다. 지난달 28일 만난 이웃들은 “평소 너무 밝은 분이라 극단적 선택을 하시리라곤 생각치 못했다”, “어제만 해도 우리 강아지를 예뻐해주셨다”고 안타까워했다. 이날 새벽 화재로 인한 추가 인명 피해는 없었다.

이봉주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시스템은 수집 정보의 한계가 있는 만큼 복지 사각지대가 존재할 수 밖에 없다”며 “민간 복지사들과의 긴밀한 협력, 지역 사회와의 촘촘한 연계 등을 통해 시스템과 인력·예산의 한계를 극복해야 이런 안타까운 죽음을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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