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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물 전락 '미이라' 스타…272㎏ 변신뒤 10년만에 부활한 사연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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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개봉한 영화 '더 웨일'은 272kg의 거구로 세상을 거부한 채 살아가는 대학 강사가 9년 만에 만난 10대 딸과 쓰는 마지막 에세이를 담은 작품으로, ‘블랙 스완’ 대런 애로노프스키 감독이 연출하고, 모험 영화 '미이라'의 90년대 스타 브렌든 프레이저가 주연을 맡았다. 사진 그린나래미디어

1일 개봉한 영화 '더 웨일'은 272kg의 거구로 세상을 거부한 채 살아가는 대학 강사가 9년 만에 만난 10대 딸과 쓰는 마지막 에세이를 담은 작품으로, ‘블랙 스완’ 대런 애로노프스키 감독이 연출하고, 모험 영화 '미이라'의 90년대 스타 브렌든 프레이저가 주연을 맡았다. 사진 그린나래미디어

“내가 연기한 찰리처럼 고통받거나 어두운 바다에 있다고 느끼는 분이라면 당신도 두 발로 서서 빛을 향해 나아갈 수 있는 힘을 가졌다고, 반드시 좋은 일이 생길 거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영화 ‘더 웨일’(1일 개봉, 감독 대런 애로노프스키)로 복귀한 배우 브렌든 프레이저(54)의 지난 1월 미국 크리틱스초이스 시상식 남우주연상 수상 소감이다. 오랜 슬럼프를 겪은 그가 소파에 파묻혀 지내는 체중 272㎏ 대학 강사를 연기한 ‘더 웨일’로 미국 시상식 시즌을 휩쓸고 있다.
 지난해 베니스국제영화제 남우주연상을 신호탄으로 지금껏 25개의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아카데미 연기상 전초전인 지난달 미국 배우조합상(SAG)상도 수상했다. 배우 아담 샌들러는 프레이저의 연기에 “가슴이 무너져내렸다”고, 영국 매체 BBC는 “브르네상스(브렌든+르네상스)가 도래했다”고 호평했다.
 ‘미이라’(1999~2008) 시리즈 등 모험 영화로 한때 할리우드를 풍미했던 캐나다 출신 중견 배우가 이토록 화제가 된 건 연기력 말고도 이유가 있다. 프레이저 자신이 ‘더 웨일’의 주인공처럼 혹독한 암흑기를 지나왔기 때문이다.

1일 개봉 영화 '더 웨일' 프레이저 #美배우조합상 받고 오스카상 성큼

부상 후유증·이혼·자녀 자폐·성희롱 피해…경력 붕괴

전성기 시절 브렌단 프레이저가 영화 '미이라'(1999)에 출연한 모습이다. 사진 유니버설 픽처스

전성기 시절 브렌단 프레이저가 영화 '미이라'(1999)에 출연한 모습이다. 사진 유니버설 픽처스

그는 ‘미이라’ 액션 촬영 중 잦은 부상으로 인한 수차례 수술 후유증을 오래 앓았다. 첫아들의 자폐 성향, 결혼 10년 만의 이혼 소송, 어머니 사별 등 개인적 비극이 겹치며 우울증까지 덮쳤다. 그가 할리우드외신기자협회(골든글로브시상식 주관단체) 회장에게 동성 성희롱을 당했고, 이후 할리우드 A급 영화 캐스팅에서 밀려났다고 주장한 것도 논란이 됐다. 가해 당사자가 부인한 가운데, 결국 프레이저만 할리우드에서 밀려났다. 지난 1일 뉴욕타임스는 그를 재조명한 기사에서 “이 캐나다 배우에게 스타덤은 너무 쉽게 다가왔고, 진지한 배우보다 백치미로 인식됐다”고 지적했다. 그럼에도 프레이저는 연기를 포기하지 않았다.

272㎏ 뚫는 감성 연기…감독이 10년 만에 찾은 주연

지난해 9월 이탈리아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더 웨일'의 대런 아르노프스키 감독(왼쪽)과 배우 브렌든 프레이저가 레드카펫에 나란히 섰다. 감정이 북받친 프레이저를 감독이 다독이고 있다. EPA=연합뉴스\

지난해 9월 이탈리아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더 웨일'의 대런 아르노프스키 감독(왼쪽)과 배우 브렌든 프레이저가 레드카펫에 나란히 섰다. 감정이 북받친 프레이저를 감독이 다독이고 있다. EPA=연합뉴스\

2012년 초연된 동명 연극에 매료된 대런 아르노프스키 감독은 원작 극작가와 영화화를 준비해 왔지만 10년째 ‘더 웨일’의 주연감을 찾지 못하다가 남미의 저예산 영화에 출연한 프레이저를 발견했다. 아르노프스키 감독은 베니스 황금사자상을 받은 ‘더 레슬러’(2008)에서도 재기를 꿈꾸는 퇴물 레슬러 역에 실제 교통사고 등으로 경력 단절됐던 미키 루크를 발탁해 인생 복귀작을 선사한 바 있다. 그는 잊혀져 있던 프레이저의 잠재력을 알아봤다.
 ‘더 웨일’은 영어로 고래라는 뜻의 제목처럼 초고도 비만 찰리가 동성 애인이 죽은 뒤 고래처럼 불어난 거구에 갇혀 자기혐오로 점철해온 삶의 마지막 닷새간을 그린다. 무거운 비만 분장이 필수인 데다, 연약함까지 드러내야 했다.

"준비되지 않은 부모" 후회, 극 중 부녀 연기 밑거름 

지난해 10월 뉴욕 코믹콘 행사에서 HBO 맥스의 신작 '둠 패트롤' 행사에 브렌든 프레이저가 참여해 관객을 만났다. '더 웨일'을 필두로 프레이저의 할리우드 경력도 회복되는 모양새다. AP=연합뉴스

지난해 10월 뉴욕 코믹콘 행사에서 HBO 맥스의 신작 '둠 패트롤' 행사에 브렌든 프레이저가 참여해 관객을 만났다. '더 웨일'을 필두로 프레이저의 할리우드 경력도 회복되는 모양새다. AP=연합뉴스

찰리가 동성 제자와 사랑에 빠져 이별을 자초한 이후 헤어져 살아온 10대 딸 엘리(세이디 싱크)에게 화해를 청하는 과정도 중요했다. 아빠를 원망하는 딸을 대하는 부모의 심리 묘사가 관건. 스스로 “준비되지 않은 부모였다”고 여러 차례 밝혀온 프레이저가 어쩌면 적격이었다. 프레이저는 “겁이 났기 때문에 더 깊이 캐릭터를 파고들었다”며 “아무것도 주저하지 않고 내가 가진 모든 것을 스크린에 쏟아냈다”고 했다.
 거구의 보형물 분장은 이전의 둔중한 '펫(지방) 수트'와 달리 근육의 섬세한 움직임이 가능하도록 첨단 기술을 썼다. 프레이저의 몸을 컴퓨터에 입력해 3D 모델링과 프린팅 기법으로 적절한 형태를 고안하고 모공의 크기, 주름까지 표현했다. 이렇게 제작한 약 45㎏의 보철 모형을 프레이저는 40일간의 촬영 기간 매번 최대 4시간, 스태프 5명의 도움을 받아 입고 벗으며 연기했다. 비만을 겪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고 동작 코치의 도움을 받았다.

12일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엘비스' 버틀러와 경쟁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 남우주연상 후보들. (왼쪽부터) '엘비스'의 오스틴 버틀러, '이니섀린의 벤시'의 콜린 파렐, '더 웨일'의 브렌단 프레이저, '애프터 썬'의 폴 메스칼, '리빙'의 빌 나이. [AP=연합뉴스]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 남우주연상 후보들. (왼쪽부터) '엘비스'의 오스틴 버틀러, '이니섀린의 벤시'의 콜린 파렐, '더 웨일'의 브렌단 프레이저, '애프터 썬'의 폴 메스칼, '리빙'의 빌 나이. [AP=연합뉴스]

이런 과정에서 힘이 돼준 요인으로 프레이저는 찰리와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을 위한 '공명심(公明心)'을 꼽았다. “내가 영화를 준비하며 만난 사람들로부터 알게 된 건 그들도 자신의 이야기가 알려지기를 바라고 공정하고 진솔하게 대우받고 싶어한다는 것입니다.” 배우로서 생명을 구해준 이 작품에 뛰어들기까지, 프레이저 자신이 내내 곱씹었을 마음이다.
‘더 웨일’은 12일 아카데미상 시상식 레이스에서도 선두다. 예측 사이트 ‘골든더비’에 따르면, 5일 기준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부문에서, 프레이저는 올 초 골든글로브 남우주연상을 받은 오스틴 버틀러(‘엘비스’)를 득표수에서 크게 앞질렀다.

지난달 26일 브렌든 프레이저가 '더 웨일'로 미국배우조합상 남우주연상을 받고 단상에서 수상 소감을 말하고 있다. 지난해 베니스영화제 때보다 다소 예전의 체격으로 돌아온 모습이다. [AP=연합뉴스]

지난달 26일 브렌든 프레이저가 '더 웨일'로 미국배우조합상 남우주연상을 받고 단상에서 수상 소감을 말하고 있다. 지난해 베니스영화제 때보다 다소 예전의 체격으로 돌아온 모습이다.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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