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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닫이·열쇠패, 이런 게 내겐 '미스코리아'"…진품명품 그녀의 진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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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인사동 고미술 화랑 '예나르'에서 만난 만난 양의숙 한국고미술 협회장. '예나르'는 '예술을 나르다'라는 뜻이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서울 인사동 고미술 화랑 '예나르'에서 만난 만난 양의숙 한국고미술 협회장. '예나르'는 '예술을 나르다'라는 뜻이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제주에서 나고 자란 그는 어린 시절부터 주변의 예쁜 것들에 관심이 많았다. 대부분은 우리 민속 공예품이었다. 서울에서 사범대학을 졸업한 뒤 홍익대 대학원에서 공예를 전공하고 1970년대 중반 작은 공예점을 차렸다. 50년 역사의 고미술 화랑 예나르 대표이자 현재 고미술협회를 이끄는 양의숙(76) 회장 얘기다.

양의숙 한국고미술협회장 인터뷰 #『진품 고미술 명품 이야기』 출간 #고미술과 함께한 일과 삶 이야기 #

지난달 그가 가나문화재단 지원으로 고미술과 함께해온 삶을 돌아보며 산문집 『진품 고미술 명품 이야기』(까치)를 펴냈다. "책을 쓰는 것이 나와는 동떨어진 일만 같아서 미루고 미뤄왔다"는 그는 "고미술에 관심 있는 분들에게 작은 도움이라도 되고 싶어 용기를 냈다"고 했다.

여기서 '고미술'은 옛 그림이나 백자, 청자만 가리키지 않는다. 목등잔, 뒤주부터 주칠장 등 목가구, 조선의 카펫 '조선철', 화약통과 화살통, 탕건과 노리개까지 오랜 세월과 생활 흔적을 담은 '아름다운 우리 것'을 모두 아우른다. 전통 미술과 공예에서 그는 어떤 아름다움을 본 것일까. 그가 운영하는 서울 인사동 예나르에서 그를 만났다.

[사진 가나문화재단]

[사진 가나문화재단]

 저승효행상(黃泉孝行像), 19세기, 철 (무쇠) 에 채색, 12x26x33(h)cm. [사진 가나문화재단]

저승효행상(黃泉孝行像), 19세기, 철 (무쇠) 에 채색, 12x26x33(h)cm. [사진 가나문화재단]

 다래함(加髢函),19세기,은행나무, 24.5x24.5x16(h)cm. 땋은 머리채(다래) 보관함.[사진 가나문화재단]

다래함(加髢函),19세기,은행나무, 24.5x24.5x16(h)cm. 땋은 머리채(다래) 보관함.[사진 가나문화재단]

 서안(書案), 19세기, 오동나무, 54.5x20x36(h)cm[사진 가나문화재단]

서안(書案), 19세기, 오동나무, 54.5x20x36(h)cm[사진 가나문화재단]

반세기 경험을 책 한 권에 풀었다.
"처음엔 교과서 같은 책을 쓰고 싶었다. 그런데 주변에서 말리며  '정보는 인터넷에 많다. 당신이 직접 경험한 얘기를 쓰라'고 하더라. 그래서 달항아리부터 열쇠패, 약과판까지 제가 아름답다고 느낀 고미술품, 그동안 만난 스승과 수집가들 얘기를 최대한 솔직하게 썼다."
왜 고미술에 끌렸나.
"제겐 이런 게 모두 '미스 코리아'다(웃음). 처음엔 너무 소박해서 눈에 띄지 않는데, 오래 볼수록 진정한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사람 같다. 고미술엔 그 시대 생활상, 치열한 장인 정신이 녹아 있을 뿐만 아니라 한국 특유의 정서와 아름다움까지 담겨 있다. " 
KBS1 'TV쇼 진품명품'에 오래 출연했다.
"첫 회부터 출연했다. 초기엔 '사람 그렇게 안 봤는데 어떻게 우리 문화재에 값을 매기느냐'고 얘기도 많이 들었다. 하지만 그 프로그램이 생기기 전에 보통 사람들이 고미술에 대해 알 기회가 별로 없었다. 역사가 있는 우리 것에 대해 조금이라도 더 알리고 싶었다."
진품과 위작을 가리는 일이 쉽지 않았을텐데. 
"그동안 명품을 직접 보는 눈 호사도 누렸고, 젊은 날엔 저도 가짜 물건을 사들이는 아픈 경험도 했다. 제대로 된 안목을 갖게 되기까진 '수업료'도 많이 지불한 셈이다. 고미술 감정도 오랜 경험과 노력이 필요하다. 출처를 파악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무엇보다 명품을 많이 접하고 보아야 한다." 

양 회장은 "유물의 가치와 가격은 다르다. 시기에 따라 반닫이, 책장, 도자기 등 인기 품목이 변하기도 한다"며 "가격 책정엔 보존성, 희소성, 예술성뿐만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보고 알아내는 감수성도 중요해 항상 긴장을 늦출 수 없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고미술품은 1970~80년대에 큰 인기를 누렸다. "주부들이 계를 타 목돈이 생기면 인사동에 나와 반닫이 등을 한 차 가득 사들여 싣고 갔다". 하지만 이후 그 인기도 가라앉았다. "아파트가 확산하며 주거 공간이 단순해졌고, 붙박이 가구가 크게 늘었다. 소수의 가정에서 옛날 가구는 이제 조각품처럼 여기는 추세다."

책에 고미술에 대한 사랑이 남달랐던 분으로 권옥연(1923~2011), 김종학(85) 화백을 특별히 언급했다. 
"두 분 모두 단골손님이었는데 권 화백은 주로 고가구에, 김 화백은 민예품에 관심이 많았다. 두 분 모두 우리 전통 미감을 깊이 이해하고 이를 작업 세계에 녹여낸 분들이다. 그 밖에도 고미술 사랑이 남다른 여러 수집가와 '아름지기'처럼 우리 전통문화의 아름다움을 연구하고 널리 알리는 곳이 있다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권 화백과 그의 아내 무대설치가 이병복(1927~2017)은 전국에 흩어져 있는 아름다운 고택을 여러 채 매입해 경기도 남양주시 금곡으로 옮겨와 무의자박물관을 세웠다. 또 김 화백은 오랫동안 수집해온 300여 점의 소장품을 1987년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했다.

콩 뒤주, 19세기, 소나무, 39x27x27cm. [사진 가나문화재단]

콩 뒤주, 19세기, 소나무, 39x27x27cm. [사진 가나문화재단]

제주알반닫이, 19세기, 나무에 무쇠장석, 53x29x36cm. [사진 가나문화재단]

제주알반닫이, 19세기, 나무에 무쇠장석, 53x29x36cm. [사진 가나문화재단]

담배합, 19세기, 무쇠와 금, 은, 구리, 9X15X15cm. [사진 가나문화재단]

담배합, 19세기, 무쇠와 금, 은, 구리, 9X15X15cm. [사진 가나문화재단]

양 회장이 처음으로 구입한 전통 목가구는 한상수(1935~2016) 자수 장인이 소장하고 있던 너 말들이 뒤주였다. "신혼 초이자 대학원 시절 이 뒤주를 산 뒤 실생활에서도 유용하게 썼다"고 말했다. 이어 45년 전 친정어머니께서 제주에서 가져다주신 작은 알반닫이를 자신의 귀한 소장품으로 꼽았다. "비싼 것은 아니지만, 첫 아이가 태어나자 머리맡에 두고 쓴 사랑스러운 물건이었다. 육아 시절과 친정어머니에 대한 추억이 묻어 있어 그 무엇보다 소중하다"고 말했다.

고미술 수집 초보자에게 조언한다면.  

"최고 수준의 물건을 원한다면 노력하며 심미안을 키워야 한다. 또 물건을 살 때는 반드시 형편에 맞게 사야 한다. 내 능력으로 살 수 있는 것과 살 수 없는 것을 정하고, 할 수 없는 것은 포기할 줄 알아야 한다."

그는 "고미술은 아름다움으로 가는 길 끝에 있다"며 "최고로 비싼 명품 옷과 보석, 외제 가구를 다 사본 사람이 마지막에 고미술을 접하고 그 매력에 빠져든다"고 말했다.

인터뷰를 마치며 그는 "아름다운 물건이란 그것을 쓰는 사람의 마음가짐에서 완성된다"며 "우리 가까이에 있는 작은 반닫이 하나라도 정말 소중하게 생각하고, 가꾸고, 후손들에게 물려주는 게 바로 문화재 사랑"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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