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해 3월 당시 당선인 신분이던 윤석열 대통령이 외부 첫 공식일정으로 서울 남대문 시장을 찾아 상인회 회장단과 식사를 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여러 사람과 밥을 먹으며 소통하겠다. 혼밥하지 않겠다.”
2021년 9월 SBS 예능프로그램 ‘집사부일체’에 출연한 윤석열 대통령의 공언이었다. 당시 대선후보였던 윤 대통령은 “대통령이 된다면 하지 않을 두 가지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야당 인사, 언론인, 격려가 필요한 국민 등 여러 사람과 밥을 먹으며 소통하겠다”며 이같이 답했다. 또다른 한 가지는 “잘했든, 잘못했든 국민 앞에 숨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대통령실 참모들에 따르면 곧 당선 1주년을 맞는 윤 대통령에게 “혼밥은 없다”는 자연스러운 원칙이 됐다고 한다. 윤 대통령이 대통령실 청사에서 주재하는 거의 모든 간담회엔 오찬 혹은 만찬 일정이 따라붙는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과거 관례에 맞춰 식사를 빼고 일정을 보고하면, 윤 대통령이 직접 추가하란 지시를 내린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지난달 16일 오찬 간담회를 겸한 국민추천포상 수여식이 대표적 사례다. 대통령과 국민추천포상자가 식사를 함께한 건 2014년 박근혜 전 대통령 이후 8년 만이다. 윤 대통령이 “식사라도 모셔 감사 인사를 전하고 싶다”며 더해진 일정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16일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제12기 국민추천 포상 수여식에서 수상자인 손재한 명예 이사장과 악수하고 있다. 국민포상 수상자와 대통령과의 오찬은 8년 만이었다. 뉴스1
대통령실은 윤 대통령과의 식사가 ‘대화’라는 점을 강조한다. 단순히 밥을 함께 먹는 걸 넘어, 식사 과정에서 정책과 국정 방향에 대한 다양한 대화가 오갈 수 있어서다. 오찬을 겸하면서 행사 이름엔 대화가 들어간다. 과학기술 영 리더와의 대화(1월 24일)·MZ공무원과의 대화(2월 7일)·뉴스페이스 시대 우주경제 개척자와의 대화(2월 21일)·UAE 순방 성과 중소기업인과의 대화(2월 24일) 등이다.
같이 식사를 하는 이들도 광범위하다. 윤 대통령은 당선 뒤 첫 일정으로 남대문 시장을 찾아 상인과 국밥을 먹었다. 지난해엔 청와대 영빈관에서 자립준비청년을 초청해 식사했고, 1월엔 다보스 포럼에서 글로벌 CEO와 오찬을 하며 자신을 “대한민국 1호 영업사원”이라고 했다. 국민의힘 의원을 관저로 초청해 만찬을 하다 보니 ‘식사 정치’라는 용어도 생겼다. 수석 및 비서관과도 실무 오찬을 하는데 그때는 빨리 먹을 수 있는 잔치 국수를 즐겨 찾는다고 한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함께 밥을 먹을 때마다 윤 대통령에겐 식사하며 교감하는 것이 평생 습관으로 밴 느낌을 받는다”고 말했다.

지난해 9월 추석 연휴가 시작된 날 윤석열 대통령이 명동성당 무료급식소에서 급식봉사를 하며 찌개를 끓이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다만 2년 전 “혼밥하지 않겠다”는 윤 대통령의 공언 중 지켜지지 않은 부분도 있다. 야당 정치인과의 식사다. 윤 대통령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등 민주당 지도부와 식사나 간담회를 하지 않았다. 지난 1월 2일 윤 대통령의 신년인사회 초청엔 민주당 지도부가 참석을 거부했다. 윤 대통령은 당선인 시절 출입 기자들에게 “김치찌개를 한번 끓여 먹자”고 했지만, 아직 실행되지 못했다. 여권 관계자는 “이 대표는 구속영장까지 청구돼 식사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민주당 내의 사법리스크 해소가 우선 아니겠느냐”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