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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핵 위협에 거세진 핵무장론…韓과 비슷했던 서독이 택한 길 [Focus 인사이드]

중앙일보

입력

더 믿을만한 확장억제를 위한 한국과 미국의 고심이 크다. 현재의 메커니즘 하에서 양국의 공조가 한층 강화하는 가운데, 핵공유ㆍ전술핵배치ㆍ핵기획그룹(Nuclear Planning GroupㆍNPG)ㆍ자체 핵무장 등 더욱 획기적인 대안도 논의되고 있다.

2022년 10월 12~13일(현지시간) 벨기에 브뤼셀 나토 본부에서 열린 국방장관 회의. 이 기간 중 NPG 공식회의가 개최됐다. 사진은 국방장관 회의 기자회견에서 답변을 하고 있는 옌스 스톨텐베르그 나토 사무총장. 나토

2022년 10월 12~13일(현지시간) 벨기에 브뤼셀 나토 본부에서 열린 국방장관 회의. 이 기간 중 NPG 공식회의가 개최됐다. 사진은 국방장관 회의 기자회견에서 답변을 하고 있는 옌스 스톨텐베르그 나토 사무총장. 나토

2021년부터 미국 싱크탱크들이 NPG 창설을 비교적 현실적인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NPG는 나토(NATOㆍ북대서양조약기구)의 핵보유국과 비핵보유국간의 확장억제 다자협의체이다. 1949년 나토 창설 직후 NPG의 탄생에 이르기까지, 나토에 속한 국가들은 소련의 핵에 대해 다소간의 입장 차를 보였다. 영국과 프랑스는 나토 편입으로 위기 대응을 위한 자체 능력이 줄어들 수 있다고 판단하고, 각각 1952년과 1960년에 자체 핵무장을 달성했다. 그러나 영국은 자국 핵무기의 독자적 사용뿐 아니라 통합적 운용에도 참여하고자 했고, 프랑스는 나토의 통합군에서 탈퇴하는 길을 택했다. 프랑스는 다른 모든 회원국이 참여하는 NPG에서도 빠져있다.

반면 전범국가였던 서독은 핵무장 같이 다시 유럽을 불안하게 하는 선택지를 추구할 수 없었다. 서독의 핵무장은 소련뿐 아니라 다른 서유럽 국가들도 두려워했다. 따라서 서독은 독자적인 길을 걷기보다는 나토의 책임을 분담하고 그 안에서 서독의 위상을 높이는 방안을 택했다. 또한 서독은 지리적으로 소련과 가장 가까운 국가 중 하나였기 때문에, 재래전의 핵확전, 혹은 제한핵전에 가장 취약한 국가인 점을 고려해야 했다. 따라서 영국이나 프랑스와는 달리, 억제뿐 아니라 실제 사용이 가능한 핵무기에 관심을 보였다.

더욱이 당시 소련은 선제공격 교리를 구상하고 있었다. 1960년만 해도 미국은 소련보다 10배 많은 핵무기를 보유했는데, 미국의 로버트 맥나마라(Robert S. McNamara) 국방부 장관은 오히려 미국의 압도적인 핵 우위와 대량보복 전략이 소련의 약한 수준의 공격을 잘 억제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 소련의 제한적인 공격에 미국이 대량보복을 감행할 리 없다는 인식을 줄 수 있기 때문이었다. 때마침 발생한 1961년 베를린 위기를 계기로, 소련이 유럽의 대도시를 공격하더라도 미국이 나서지 않을 수 있다는 의심은 커져갔다.

이에 따라 미국은 억제뿐 아니라 사용 가능성을 높이는 전략을 택하고자 했고, 미국과 서독은 해당 전략의 이행을 위해 확장억제 협의체를 구상하게 되었다. 맥나마라 장관은 동맹국들에게 미국의 핵 능력에 대한 일종의 ‘교육’이 필요하다는 것을 절감했다. 미국의 핵 능력과 사용 의도에 대한 이해 부족이 동맹국과 갈등을 야기하는 것으로 판단했다. 또한 핵 문제에 대한 논의를 의도적으로 자제하는 것이 확장억제에 대한 의구심과 동맹국의 핵확산 동기를 부추긴다고 보았다.

1962년 그리스 아테네에서 열린 나토 국방장관급 회의에서, 맥나마라는 핵기획 체계에 대한 기본 아이디어를 제공했다. ▶핵문제에 대하여 긴밀한 협의, 참여, 그리고 합의를 위한 기반을 제공하는 정보 교환을 하고, ▶핵무기 사용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작성하며, ▶동맹 방위를 위한 외부 핵전력의 역할을 제시하고, ▶동맹을 위해 적절한 비핵전력의 수준 등을 논의하자는 것이었다.

이로써 정보공유를 넘어선 기획에 대한 협의체계의 필요성에 공감이 이루어졌고, 마침내 1966년 NPG가 출범하게 되었다. 출범 이래, 회원국들은 유럽 전구(戰區) 차원에서 핵무기를 사용하는 데에 대한 정치적 지침을 수립해왔다. 가장 최근으로는 2022년 10월 13일에 나토 국방장관 회의의 일환으로 공식 회의가 진행됐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후 첫 회의였으므로, 러시아의 핵전략에 대한 정보공유, 나토의 핵태세에 대한 점검 및 협의가 있었을 것으로 판단된다.

이처럼 나토의 NPG 창설에는 점증하는 소련의 선제핵공격 위협, 서독의 핵무장에 대한 우려, 맥나마라 장관을 중심으로 한 미국의 의지, 그리고 나토의 강한 요구 등이 작용했다. 현재 한반도를 중심으로 한 상황과 매우 유사하다. 관련하여, 미국 국방부도 2022년 핵태세검토보고서(Nuclear Posture Review)를 통하여 확장억제 제고 조치로서 “한ㆍ미ㆍ일, 혹은 한ㆍ미ㆍ일ㆍ호 간 정보공유와 대화의 기회를 찾는 것이 하나의 중요한 목표”라고 밝힌 바 있다. 엄밀한 의미에서 NPG를 뜻한 것은 아니지만, NPG로 다가가는 과정상의 단계로서 이해될 수 있다.

한ㆍ미 8차 확장억제수단운용연습(DSC TTX) 대표단이 지난달 23일(현지 시간) 핵무기를 탑재한 미 해군 전략핵추진잠수함(SSBN) 웨스트버지니아함이 정박 중인 조지아주 킹스베이 해군 기지를 방문했다. 양국 대표단은 웨스트버지니아함 내부까지 둘러봤다. 미국이 이 같은 전략자산을 공개한 배경엔 한국에 대한 확장억제 공약을 강조하려는 의도가 있다. 국방부

한ㆍ미 8차 확장억제수단운용연습(DSC TTX) 대표단이 지난달 23일(현지 시간) 핵무기를 탑재한 미 해군 전략핵추진잠수함(SSBN) 웨스트버지니아함이 정박 중인 조지아주 킹스베이 해군 기지를 방문했다. 양국 대표단은 웨스트버지니아함 내부까지 둘러봤다. 미국이 이 같은 전략자산을 공개한 배경엔 한국에 대한 확장억제 공약을 강조하려는 의도가 있다. 국방부

지속하는 북핵 위협 고도화로, 프랑스와 영국의 길을 따르자는 자체 핵무장 여론이 꽤나 거세다. 그래서 한국의 요구에 미국이 더 주목하는 바로 이 시점에, 한국은 서독의 길도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물론 독일에는 미국의 핵이 배치돼 있지만, 확장억제 강화를 위해 NPG가 발전시킨 소프트웨어적인 접근은 핵배치 여부로부터 크게 영향을 받지 않는다. 당시 프랑스, 영국, 서독의 처지가 현재 한국의 상황과 무엇이 같고 무엇이 다른지를 적극적으로 검토하고, 주체적으로, 그럼에도 맥락에 맞는 정책을 추진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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