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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세컷칼럼

비뚤어진 자식 사랑…정순신·조국, 영화 ‘마더’처럼 충격이었다

중앙일보

입력

이지영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정순신 변호사가 제2대 국가수사본부장에서 낙마한 지난 주말, 봉준호 감독의 영화 ‘마더’(2009)를 다시 찾아봤다. 고위직 검사인 학폭 가해자 부모가 대법원까지 가는 ‘끝장 소송’을 벌였다는 사실에 ‘마더’를 처음 봤을 때의 충격이 되살아났기 때문이다.

‘마더’는 모성이란 숭고한 이름 뒤의 추악한 이면을 까발린 범죄 스릴러다. 부모의 사랑이 광기가 될 때, 그 광기가 사회 질서를 어떻게 교란하는지 보여준다. 사회학을 전공한 봉준호의 영화엔 현대사회 병폐에 대한 성찰과 비판적 메시지가 빠지지 않는다. 경제적 불평등과 계급간 갈등을 드러낸 ‘설국열차’(2013)와 ‘기생충’(2019)이 대표적 사례다.

폭주하는 자식 사랑 광기
사회 근간 흔들 위험요소
‘끝장 소송’ ‘스펙 조작’ 등
기득권층 행태에 열패감

국민어머니 김혜자를 앞세운 ‘마더’에선 우리 사회의 근간을 흔들 위험 요소로 ‘비뚤어진 자식 사랑’을 짚어냈다. 자식 위해 물불 안 가리는 부모의 이기심마저 희생적 사랑으로 미화해 온 기존 패러다임을 뒤엎는 문제의식이다.

정 변호사 아들의 고교 재학 시절 학폭 사건을 두고 넷플릭스 드라마 ‘더 글로리’를 얘기하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더 글로리’의 핵심인 복수엔 근처도 가지 못했고 피해자는 여전히 고통 중이라 하니, 이 사건을 ‘더 글로리’의 ‘영광’에 빗대긴 어려워 보였다.

‘마더’에서 김혜자는 지적 장애를 가진 아들이 살인범으로 몰리자 직접 범인을 찾아 나선다. 잠복과 탐문, 협박과 속임수 등을 펼친 끝에 맞닥뜨린 진실은 “우리 아들이 안 그랬다”는 엄마의 믿음과 달랐다. 결국 김혜자는 아들의 살인 사건 목격자를 죽이고 증거를 인멸한다. 파국으로 치닫는 폭주다.

정 변호사는 아들이 동급생을 괴롭혀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에서 강제전학 처분을 받자 재심 청구, 집행정지 신청, 행정소송 등을 이어갔다. 1심에서 패소한 후엔 항소했고, 2심에서도 졌지만 대법원에 상고하며 시간을 끌었다. 아들의 명문고 졸업과 명문대 입학을 위해 자신의 특기인 법 기술을 발휘, 폭주한 것이다. 그 사이 가해자와 분리되지 못한 피해자의 정신적 고통은 가중됐고 끝내 학업을 중단하고 만다. 반면 대법원의 최종 결정이 나올 무렵에서야 전학을 간 정 변호사의 아들은 무사히 서울대에 진학, 아버지의 후배가 됐다.

‘마더’의 엔딩은 김혜자가 관광버스에서 춤을 추는 장면이다. 침통에서 침을 꺼내 자신의 허벅지를 찌른 직후다. ‘야매’ 침술을 익힌 그가 “나쁜 일 끔찍한 일 깨끗하게 싹 풀어주는 침자리”로 믿고 있는 위치였다. 그리고 과거를 다 잊은 듯 자리에서 일어나 정신없이 춤을 춘다.

미성년 아들의 법정대리인이 돼 정 변호사가 벌인 소송 파문은 2018년 언론 보도에서 자세히 다뤄졌다. 피해자뿐 아니라 목격한 학생들과 교사, 소송 과정에서의 수많은 관계자들, 취재 보도한 기자 등 허다한 증인이 있는데도 정 변호사는 세상이 끝까지 모를 거라 확신한 모양이다. ‘마더’의 김혜자처럼 기억을 지우는 혈자리에 침이라도 맞고 한바탕 춤을 춰보려 했던 것일까. 국가수사본부장에 지원한 패기가 놀랍다.

정 변호사의 행태는 조국 전 법무부 장관 부부의 엇나간 자식 사랑과도 닮은꼴이다. 자녀의 진학을 위해 조 전 장관과 정경심 전 동양대 교수는 서울대 공익인권법센터 인턴 증명서를 허위 발급하고, 동양대 총장 명의의 표창장을 위조했다. 미국 대학에 다니는 아들의 온라인 시험을 대신 풀어주기도 했다. 모두 법정에서 유죄로 인정받은 범죄사실이다. 하지만 조 전 장관은 청문회 등을 통해 자신의 치부가 드러나는 걸 두려워하지 않고 장관직에 선뜻 나섰다. 그 역시 김혜자의 망각침을 맞고 기억을 날려버린 듯했다.

영화와 현실이 다른 점도 있다. 영화 속의 뒤틀린 모성애는 못 배우고 가난한 엄마가 지적장애 아들을 지키기 위한 절박한 자구책이었다. 하지만 현실에선 기득권의 단맛에 취한 사회지도층이 자신의 돈과 권력, 지식과 인맥을 총동원해 자식에게 기득권을 대물림하기 위한 광기를 휘두른다.

‘마더’에서 김혜자는 자기 아들 대신 살인 누명을 쓴 장애인을 찾아가 이렇게 묻는다. “너 부모님은 계시니? 엄마 없어?”

힘센 광기를 부려줄 부모가 없어 인생의 고비마다 열패감에 시달렸던 젊은이들은 자신들 역시 그 광기의 주체가 될 자신이 없다. 부모 되기를 스스로 포기한 건 열패감의 대물림이라도 막기 위해서다. 세계 최저 출산율 0.78. 이 섬뜩한 수치가 바로 그 결과가 아닐까.

글=이지영 논설위원   그림=김아영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