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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키스탄 트랜스젠더 비극...살해 협박당하던 앵커 결국 피습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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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키스탄 첫 트랜스젠더 앵커인 마르비아 말리크. 코헤누르 방송 캡처

파키스탄 첫 트랜스젠더 앵커인 마르비아 말리크. 코헤누르 방송 캡처

남녀 구분이 매우 엄격한 보수적인 국가 파키스탄에서 최초의 트랜스젠더(성전환자) 앵커로 활동해온 마르비아 말리크가 살해 협박을 받다가 괴한으로부터 총격을 당했다.

파키스탄 민영 방송 코헤누르와 인도 매체 NDTV 등에 따르면 말리크는 최근 라호르 지역의 약국에 들렀다 귀가하던 중 두 명의 무장 괴한으로부터 총격을 당했다. 다행히도 말리크는 간신히 피했고, 크게 다치지 않았다.

말리크는 경찰에 트랜스젠더 커뮤니티를 위해 목소리를 냈다는 이유로 모르는 이들에게 전화와 메시지 협박을 받아왔다고 진술했다. 성소수자를 위한 자신의 행동 때문에 괴한들이 암살 시도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말리크는 지난 2018년부터 현지 방송 코헤누르에서 프로그램 앵커를 맡아왔다. 말리크 채용 당시 코헤누르의 소유주인 주나이드 안사리는 VOA와의 인터뷰에서 "말리크는 젠더 이슈가 아니라 그가 가진 가치로 뽑혔다"고 말했다.

인구의 97%가 이슬람교인 이 국가에서 그동안 말리크의 행보는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적 인식을 변화시켰다는 평가를 받기도 하지만, 여전히 지탄의 대상이다.

파키스탄에서 성소수자의 삶은 매우 열악하다. 성소수자 간 연애나 결혼은 불법으로 취급된다. 심할 경우 징역형 처분을 받거나 치료라는 명분으로 각종 향정신 의약품이 처방되는 일도 잦은 것으로 알려졌다. 파키스탄 정부는 2018년 과거 제국주의 시대에 제정됐던 형법 377조에 기반해 동성 간 결혼을 시도한 이들에게 최고 징역 10년형을 선고할 수 있는 법안도 통과시켰다.

트랜스젠더들은 대부분 직업을 구하지 못해 구걸과 매춘을 일삼는다. 이들은 성적 정체성이 불분명하기 때문에 투표권도 행사할 수 없다. 사회적으로 보호받지 못해 폭력, 강간, 살인 등 범죄에 쉽게 노출된다. 조기에 정규 교육을 포기하거나 고등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박탈당하는 사례도 잦다.

말리크도 고등학교 때 자신의 성 정체성을 찾기 위해 성전환 수술을 하면서 현재까지 가족과 의절한 상태다. 그는 많은 어려움 속에서도 펀자브대학에서 저널리즘을 전공했다. 한때 메이크업 아티스트와 모델로 활동한 이력이 있으며, 이후 앵커로 채용됐다.

말리크의 인생 목표는 파키스탄 트랜스젠더의 처우를 개선하는 것이다. 그는 평소 "트랜스젠더는 '제3의 성'이 아니라 보통의 시민으로, 성적 차별 없이 동등한 대우를 받을 권리가 있다"고 강조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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