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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Z 사이 입소문난 그 반지…매듭장인 할매들, 세계 넘보다 [비크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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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좀 더 나은 삶, 이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브랜드의 목소리를 쫓아갑니다. 세상을 바꾸는 브랜드 목소리, 'Voice Matters(보이스매터, 목소리는 중요하다)' 김민정 기자입니다.

고령사회에 답하는 브랜드의 자세 

"어르신들의 장인 정신과 기술이 합쳐진 브랜드가 더 많아지면 좋겠네요. 마음을 다해 응원합니다"

지난해 10월 비크닉 레터를 통해 교복 업사이클링 브랜드 '리버드(RE:BUD)'에 대해 얘기했는데요. 비크닉 인스타그램에 @blingx2_wendy님이 남겨주신 댓글입니다. 리버드가 특별했던 건 교복 해체 작업, 봉제 등 제품 생산 공정에 시니어를 적극적으로 참여시켰기 때문입니다. 어르신의 손길로 재탄생한 제품이 제값에 팔리고, 그 수익은 다시 시니어 일자리 창출의 마중물이 되는 등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졌어요. 비크닉 보이스매터, 오늘은 경상북도 상주로 향합니다.

김영자 할머니(80)가 자전거를 타고 수제 액세서리 브랜드 마르코로호 작업 공방으로 향하고 있다. 남채린 PD

김영자 할머니(80)가 자전거를 타고 수제 액세서리 브랜드 마르코로호 작업 공방으로 향하고 있다. 남채린 PD

무쓸모의 쓸모, 안방 매듭장인 세상 밖으로

소셜 벤처 알브이핀의 신봉국 대표 고향은 상주입니다. 인구 10만이 채 되지 않는 상주시는 지난해 12월 말 기준 만 65세 이상 노인 인구가 33.6%에 달합니다. 정서적 외로움, 빈곤 등 고향의 여성 노인 문제에 주목한 신 대표는 2015년 '마르코로호'라는 수제 액세서리 브랜드를 만들었습니다. 신발 하나를 사면 하나가 자동으로 기부되는 '탐스슈즈'처럼, 사회문제를 해결하고 돈도 버는 소셜 벤처가 집중 조명을 받을 때였죠.

'코리안 할매'의 야무진 손재주는 그야말로 모래 속 진주였습니다. 안방 장인을 세상 밖으로 이끌 사업 아이템으로 신 대표는 팔찌를 선택했어요. 크라우드펀딩 플랫폼 와디즈에서 마르코로호 시작을 알렸죠. 할머니들이 야무지게 폴리에스테르 실을 하나하나 교차시켜 만든 매듭 팔찌를 보상품으로 줘 펀딩으로 1100만원을 모았습니다.

할머니 다섯 분과 시작했던 사업은 어느덧 8년 차에 접어들었고, 지금은 상주 시니어 클럽과 손잡고 세를 키우고 있어요. 신 대표는 단순 복지 차원을 넘어 노인을 위한 시장형 일자리가 더 많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실제로 숙련된 할머니들의 시간당 수입은 최저임금(2022년 기준 9160원)의 2배쯤 된다고 해요. 대량 주문이 들어오면 특별수당까지 받고요. 평균 주 2회 하루 4시간 정도의 소일거리이지만 용돈 벌이로는 쏠쏠한 셈이죠.

지난 2월 1일 경북 상주에 있는 수제 액세서리 브랜드 마르코로호 작업 공방에서 한 할머니가 폴리에스테르 실을 교차시켜 매듭 팔찌를 만들고 있다. 남채린 PD

지난 2월 1일 경북 상주에 있는 수제 액세서리 브랜드 마르코로호 작업 공방에서 한 할머니가 폴리에스테르 실을 교차시켜 매듭 팔찌를 만들고 있다. 남채린 PD

돈도 돈이지만 마르코로호와 4년 이상 오래도록 연을 이어온 할머니들이 입을 모아 강조하는 '일의 가치'가 있는데요. 바로 일상의 행복입니다.

"가기 전에 집에서부터 이제 또 꾸미잖아. 안 그러면 뭐 생전 화장을 하겠어. 거울도 한 번 더 보고. 옷도 안 입던 거 곱게 차려입고. 가면은 또 이제 앉아서 재미나게 서로 웃으며 얘기도 하고 커피도 한 잔씩 먹고. 다들 일하면서 한 번씩 이래 말해. 웃고 일하는 이 순간이 참말로 좋다고. 가치 있다고." (김영자 할머니, 80세)

"내 이거 하는 거 보고 애들이 자꾸 나무래싸. 그러면 이카지. 너도 나이 들어봐라. 한가하면 더 외롭고 안 됐는데, 이런 일거리라도 있으면 너무 재미있고 좋다고. 너도 내 나이 되보믄 다 이해할기다." (강임순 할머니, 76세)  

지난 2월 1일 경상북도 상주에 있는 수제 액세서리 브랜드 마르코로호 작업 공방에서 할머니들이 매듭 반지를 만들고 있다. 남채린 PD

지난 2월 1일 경상북도 상주에 있는 수제 액세서리 브랜드 마르코로호 작업 공방에서 할머니들이 매듭 반지를 만들고 있다. 남채린 PD

따뜻한 혁신, 자발적 소비 이끌다  

마르코로호 제품 매출의 6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건 나뭇잎 반지입니다. 무난한 색상이라 매일 착용해도 부담이 없고, 생활 방수가 되는 폴리에스테르 실로 만들어 인기가 많다는데요. 주 고객층은 대학생, 사회초년생 여성이라고 합니다. 마르코로호 홈페이지, 무신사, 카카오톡 선물하기 등을 통해 우정링, 커플링으로 많이 구매한다고 하는데요. 마르코로호 전 제품에는 매듭 할매들이 손글씨로 남긴 감사의 말이 담겨 있습니다. 그 특별한 손편지는 또 다른 매력 포인트이기도 하죠. 순수익금의 20%는 기부금으로 누적됩니다. 창업 초인 2015년부터 매해 2000만원꼴로 지역 노인을 위한 기부활동을 이어왔다고 해요.

마르코로호의 제품은 일부러 마케팅하지 않아도 저절로 입소문이 났습니다. 의미 있는 선물을 찾던 팬들이 매듭 팔찌나 반지를 선택하고, 연예인들이 그걸 착용하면서 자연스레 알려지는 식으로요. 대기업의 협업 제안도 적잖다고 합니다.

마르코로호 대표 제품 중 하나인 매듭 반지와 이 반지를 만든 할머니가 직접 쓴 손글씨. 사진 마르코로호.

마르코로호 대표 제품 중 하나인 매듭 반지와 이 반지를 만든 할머니가 직접 쓴 손글씨. 사진 마르코로호.

매듭장인 할매들, 해외 시장도 접수할까

창업 8년 차에 접어들었지만 신 대표는 이제껏 해외 판매 개척을 쉽게 꿈꾸지 못했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액세서리 시장 자체가 크지 않기 때문이죠. 그 작은 시장의 절반 이상은 예물이 차지하고 있고요. 신 대표 말에 따르면 매듭 액세서리 시장은 겨우 3% 수준이라고 하네요.

이제 사업이 궤도에 올랐고, 할매들의 '손기술'을 해외에도 알리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고 해요. 신 대표는 수출 지원 사업을 활용해 올해 유의미한 결과를 꼭 이루겠다고 밝혔습니다. 이제 안방 매듭장인 할매들의 해외 진출도 기대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제품군을 매듭 액세서리에서 뜨개 제품으로까지 확장하겠다는 포부도 있습니다. 상주뿐 아니라 전국의 더 많은 어르신에게 일할 기회를 드리기 위해서죠. 균일한 제품을 생산하기 위해 표준 뜨개 도안까지 만들었다고 합니다. 마을 회관 등에 뜨개 키트와 표준 도안에 맞춰 제작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영상 등을 함께 보급할 계획입니다.

할머니가 만든 매듭 팔찌들이 수납함 위에 놓여 있다. 사진 마르코로호

할머니가 만든 매듭 팔찌들이 수납함 위에 놓여 있다. 사진 마르코로호

브랜드 마르코로호의 대표 매듭 팔찌. 사진 마르코로호

브랜드 마르코로호의 대표 매듭 팔찌. 사진 마르코로호

MZ세대 탐구만큼 나이 듦에 대한 탐구도 필요하다

신 대표는 겪어보지 않은 노년에 대해 쉽고 단순하게 생각하는 바람에 시행착오도 많았다고 해요. 일례로 매듭으로 제작할 제품에 관해 설명하기 위해 상세 설명과 이미지가 담긴 PPT를 만들었지만, 이 정성은 그대로 할머니께 전달되지 못했어요. 글자를 보는 게 어려운 할머니도 있었던 거죠.

"이분들이 정서적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등 할머님들에 대한 이해도가 초창기에는 낮았어요. 내 문제라 인식하는 순간, 단순히 어떤 노인에 대한 탐구가 아니라 인간에 대한 이해라 생각하는 순간 모든 게 편하고 쉬워지더라고요. (웃음)"

2년 뒤면 우리나라도 65세 이상 고령 인구가 전체의 20%를 넘는 초고령사회에 진입합니다. 노인을 그저 젊은 세대가 부양해야 하는 짐으로만 여겨서는 답이 나오지 않습니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MZ세대 담론보다 중요한 게 존엄한 나이 듦에 대한 고민일지도 모릅니다. 비크닉 보이스매터(Voice Matters!)는 기회가 닿는 대로 시니어의 활동 영역을 넓혀가며 고령사회 문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해 나가는 브랜드를 만나보겠습니다.

bicn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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