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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강제징용 ‘개문발차 해법’ 이르면 6일 발표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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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9호 01면

강제징용 해법 내주 발표 

정부가 다음주 초 강제징용 해법을 공식 발표할 계획이다. 이르면 오는 6일 발표하는 방안을 유력하게 검토 중이다. 해법엔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소송을 낸 일본 기업(미쓰비시중공업·일본제철)의 참여 없이 포스코 등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 수혜 기업의 출연금을 모아 2018년 대법원 확정판결로 승소한 강제징용 피해자 15명에게 배상금을 지급하는 내용이 담길 예정이다. 일본과의 관계 개선을 위해선 징용 문제를 서둘러 매듭지어야 한다는 윤석열 대통령의 강한 의지가 반영된 결과다.

대통령실은 강제징용 해법 발표 이후 이르면 이달 중순 윤 대통령이 일본을 방문해 한·일 정상회담을 여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양국 최대 현안인 강제징용 문제를 해결하고 셔틀 외교도 복원하며 올 상반기 중 한·일 관계 정상화에 마침표를 찍겠다는 계획이다. 정부 고위 소식통은 “지금까지 양국이 합의에 이른 내용을 우선 발표해 이를 신속히 이행하고 일본 측 피고 기업의 자발적 기부 참여 등 아직 해소되지 않은 쟁점은 계속 협의를 이어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발표할 강제징용 해법은 ‘개문발차(開門發車·문이 열린 상태로 차가 출발함)’로 요약된다. 우선 한국 측이 단독으로 재원을 마련해 제3자 변제를 추진한 뒤 해법 발표 후 언제라도 일본 측 피고 기업이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방식이다. 또 다른 쟁점인 사과 문제의 경우 한국 정부의 발표에 맞춰 일본 측이 1998년 김대중·오부치 선언을 계승하겠다는 입장을 밝히는 방식으로 합의가 이뤄졌다.

협상 과정에 정통한 핵심 관계자는 “일본 피고 기업의 참여가 담보되지 않은 해법을 ‘반쪽 해법’이자 ‘협상 실패’로 보는 시선이 있겠지만 오히려 한국이 먼저 해법을 발표함으로써 피고 기업이 기부에 참여할 수 있는 환경을 주도적으로 조성한다는 의미도 있다”고 말했다.

한·일 관계 개선 노린 ‘반쪽 해법’…일 호응 없이 부담 떠안아

윤석열 정부는 지난해 대통령직 인수위 때부터 한·일 관계 개선 의지를 내비치며 선결 조건으로 강제징용 문제 해결을 강조해 왔다. 지난해 7월 강제징용 문제와 관련해 각계 의견 수렴을 위한 민관협의회를 출범시킨 데 이어 지난 1월엔 공개 토론회를 열었고 지난달 28일엔 확정판결 피해자 유족들과 집단 면담을 하기도 했다. 그 과정에서 한·일 국장급 협의 등 실무선에서도 의견 교환을 지속했다. 지난달엔 급을 올려 양국 외교장관과 차관이 연쇄 대면 회담을 하고 쟁점 해소를 시도했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문제는 정부가 한·일 관계 개선이란 목표에 매몰돼 협상 주도권을 일본 측에 빼앗겼다는 점이다. 정부는 협상 초기부터 2018년 대법원 판결을 우회해 일본 기업이 내야 할 배상금을 제3자가 대신 지급하는 방안을 사실상 공식화했다. 이후엔 한·일 청구권 협정의 수혜를 입은 포스코가 2012년 약속했던 기부금 100억원 중 잔여금 40억원을 재원 마련 카드로 꺼내 들었다. 사죄 문제 또한 박진 외교부 장관이 지난달 15일 국회에 출석해 “(일본 정부가) 김대중·오부치 선언을 포괄적으로 계승할 경우 그 내용을 받아들이는 것으로 생각해볼 수 있다”고 밝히는 등 합의 문턱을 스스로 낮췄다.

외교 소식통은 “정부의 강력한 한·일 관계 개선 의지가 협상 국면에선 문제 해결에 대한 조급함으로 이어지면서 일본의 호응을 얻어내기보다는 한국이 대부분의 부담을 떠안는 형태로 논의가 진전됐다”고 말했다. 이 소식통은 “반면 일본 측은 한국이 피고 기업의 ‘자발적 참여’를 요구하는 것 자체가 자발성이란 대원칙을 허무는 것이자 대법원 판결을 이행하라는 메시지라며 거부감을 나타냈다”고 전했다. 실제로 정부가 ‘개문발차’ 방식의 해법을 실행에 옮길 경우 빠른 배상을 원하는 일부 징용 피해자의 요구 사항은 해결된다. 하지만 양금덕 할머니 등 일본 피고 기업의 배상 참여를 필수 조건으로 삼았던 피해자들 입장에선 ‘반쪽 해법’이 될 수밖에 없다.

협상 과정이 한국 측에 불리하게 전개되면서 최근 1~2개월 사이 정부와 대통령실 내부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커졌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3월 예산 심의와 4월 지방선거 이후 정치적 부담을 덜어낸 상황에서 협상을 재개하자는 제언도 잇따랐다. 특히 최근엔 한·일 관계를 담당하는 정부 고위급 인사가 윤 대통령에게 ‘속도 조절론’을 강조하는 편지를 직접 보내기도 했다. 하지만 윤 대통령이 재차 한·일 관계 개선 의지를 강조하면서 정부 고위급 인사들과 대통령실 참모들의 목소리는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고 한다.

일각에선 윤 대통령의 해법 발표 의지를 3~5월 추진 중인 정상외교 일정과 연관 짓는 분석도 나온다. 윤 대통령이 이달 중 방일과 다음달 방미, 5월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참석 등 외교 성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강제징용 문제를 어떤 형태로든 해결하고자 한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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