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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대야 줄 늘어섰다…조용한 시골 뒤집은 '참기름 집' 비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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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5세.
경북 문경시니어클럽에서 운영하는 '새재참기름' 직원 8명의 평균 나이다. 이곳 직원들은 4개 조로 나뉘어, 하루 2개 조가 교대 근무한다. 덕분에 이곳에선 늘 고소한 참깨 냄새가 풍긴다.

문경시니어클럽에서 운영하는 새재참기름에서 남우진 명인이 착유한 기름을 병에 담고 있다. 사진 홈플러스

문경시니어클럽에서 운영하는 새재참기름에서 남우진 명인이 착유한 기름을 병에 담고 있다. 사진 홈플러스

어르신들이 짠 고소한 참기름

조용한 시골 마을의 참기름 집이 요즘 동네 명소가 됐다. 지난 설 명절 성수기에는 문을 열기도 전에 가게 앞에 정체불명의 긴 대야 줄이 늘어서기도 했다. '기름이 맛있다'는 소문이 나면서 대야로 순번을 맡아 놓고 인근 시장에 장을 보러 가는 이들이 생기면서다. 멀리 사는 가족에게 준다며 직접 농사지은 참깨를 들고 찾아와 착유해가는 손님도 많다.

새재참기름은 주문이 들어오는 즉시 착유한다. 미리 짜 놓은 기름은 팔지 않고, 단 한 번만 착유한다는 두 가지 원칙을 지킨다. 그러다 보니 시장 기름집에서 깨 다섯 되를 짜면 350mL 기준 9~10병이 나오는데, 새재참기름에서는 7병이 나온다. 착유 온도는 60도 안팎이다. 태우지 않고 ‘건강하게’ 낮은 온도로 기름을 내렸다. 덕분에 양은 적지만, 고소한 맛은 배가 됐다. 재료도 지역 곡물 상회를 통해 들여온 100% 국산 참깨와 들깨만을 사용한다.

60도 저온에서 한 번만 착유하는 것이 고소한 맛의 비결이다. 사진 홈플러스

60도 저온에서 한 번만 착유하는 것이 고소한 맛의 비결이다. 사진 홈플러스

2019년 문을 연 새재참기름은 어르신 자립을 위해 문경시니어클럽이 만든 사업단이다. 문경시니어클럽은 문경시에서 노인 일자리 사업을 위탁 받아 추진하는 노인 일자리 전담 기관이다. 어르신들의 안정적 수입원을 만들기 위해 만들었지만, 홍보 부족으로 지역 내, 지인 판매에만 머물렀다.

온라인 뚫으니 전국구 ‘맛집’ 됐네 

품질은 검증됐지만, 그동안 사실상 ‘판로’가 없었던 탓에 명절을 제외한 나머지 기간에는 ‘공치는’ 날이 많았다고 한다. 약 2년간 이곳에서 일했다는 남우진 명인은 “기름 짜고, 고춧가루 제분하는 손님마저 없을 때는 사무실에 앉아있다 퇴근하기 일쑤니 월급 받기 미안했다”라고 회상했다.

소비시장에서 상대적으로 인기가 덜한 노인 생산품인 데다 지역 상권에서만 머물렀던 새재참기름을 전국구 인기 상품으로 재탄생 시켜준 곳은 대형마트인 홈플러스다. 자체 온라인몰이 없었던 새재참기름은 지난해 10월 ‘홈플러스 시니어마켓’에 입점 후 매출이 뛰어 지난해 연 매출 1억원을 돌파했다. 온라인 몰 입점 두 달째부터는 전년 대비 매출 신장률 600%를 기록했다.

"땀 흘려 일해 번 돈으로 손주들 용돈 챙겨주는 재미가 좋다"는 박화숙 명인. 사진 홈플러스

"땀 흘려 일해 번 돈으로 손주들 용돈 챙겨주는 재미가 좋다"는 박화숙 명인. 사진 홈플러스

요즘에는 2인 1조 2개 조가 바쁜 하루를 보내고 있다. 월평균 주문량이 기존 150병에서 450병가량으로 늘어나면서다. 1조는 오전 9시부터 오후 1시까지, 2조는 오후 1시부터 4시간 동안 일한다. 꼼꼼한 위생관리는 기본. 출근 후 스트레칭을 하며 하루를 시작하고, 작업장 위생 상태와 설비, 설정 온도를 확인한다. 기계는 솔, 에어 컴프레서로 매일 청소한다. 이곳을 찾는 손님들은 "참기름 뚜껑을 열면 기름에 전 냄새가 나기도 하는데, 여기 참기름은 뚜껑을 열자마자 고소한 냄새가 풍긴다”고 말한다.

판로가 확보되면서 새재참기름 직원들은 상품 생산에만 집중할 수 있게 됐다. 최근에는 1인 가구, 맞벌이 가구를 위한 250mL, 180mL 소용량 상품도 내놨다. 최근 젊은 세대들 사이서 부는 ‘할매니얼(할머니+밀레니얼)’제품으로 인기를 끌며 행사 답례품, 선물용으로 구매하는 고객들도 늘고 있다. 박화숙 새재참기름 명인은 “기름을 짜느라 정신없이 일하고 퇴근하면 기분이 아주 좋다”며 “땀 흘려 번 돈으로 손주들 용돈도 챙겨줄 수 있으니 더 좋다”고 웃었다.

노인 일자리 창출에 주변 상권 활성화도  

최근에는 새재참기름을 중심으로 주변 상권이 살아나는 효과까지 나고 있다. 시니어 카페와 지역 식당, 새재참기름 등이 군락을 이루면서다. 새재참기름이 문을 닫는 주말이면 동네가 조용하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매출 호조세에 힘입어 내년에는 지자체에서 사업장 리모델링을 계획하고 있다.

문경시니어클럽 일동과 새재참기름 명인들. 사진 홈플러스

문경시니어클럽 일동과 새재참기름 명인들. 사진 홈플러스

새재참기름은 품질은 좋지만 홍보가 부족하거나, 판로 확보에 어려움을 겪는 노인 생산품의 한계를 전국구 온라인 유통 인프라로 극복한 좋은 사례가 됐다. 그 과정에서 어르신 자립을 위한 ‘즐거운 일자리 창출’과 지역 골목 상권 활성화라는 두 가지 효과는 덤이다. 홈플러스도 ESG(환경·사회·지배구조) 활동의 하나로 시작했지만, 높은 품질의 지역 상품을 합리적인 가격에 선보일 수 있다는 점에서 시니어 마켓에 거는 기대가 크다.

옥정수 문경시니어클럽 관장은 “노인 생산품이라는 이미지를 개선하고 다양한 상품을 계속 연구하고 싶다”며 “어르신 자립에 큰 힘이 되고 사회·고객에 모두 좋은 노인 생산품에 더 큰 관심을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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