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 3중고에 멈춘 한국 수출엔진] 새로운 수출 파트너 찾아라…한·중·일 베트남 시장 삼국지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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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9호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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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한국의 대베트남 무역수지 흑자는 역대 최대치인 342억 달러를 기록했다. 이로써 베트남은 한국의 최대 무역 흑자국에 등극했다. 사진은 베트남 북부의 대표적인 항구이자 세계에서 28번째로 큰 항구인 하이퐁항. [연합뉴스]

지난해 한국의 대베트남 무역수지 흑자는 역대 최대치인 342억 달러를 기록했다. 이로써 베트남은 한국의 최대 무역 흑자국에 등극했다. 사진은 베트남 북부의 대표적인 항구이자 세계에서 28번째로 큰 항구인 하이퐁항. [연합뉴스]

‘애플, 삼성, 인텔, 나이키, 아디다스…’ 베트남에 생산 공장을 둔 글로벌 기업들이다. 이런 기업들의 투자 속에 베트남은 세계 2위 섬유·의류 수출국이자 세계 9위 전자제품 수출국에 등극했다. 데이비드 루이스 ECV홀딩스 대표는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을 통해 “베트남은 세계를 지배하고자 하는 야망만 제외하면, 생산기지로서 중국이 가진 환경을 모두 갖춘 나라”라고 평가했다. 지난 수년 간 미·중 갈등 속에 이어진 공급망 다변화 흐름에서, 대안이 필요한 기업들에게 베트남은 매력적인 선택지란 얘기다.

생산 기지로서 베트남의 부상은 무역 성과에서도 드러난다. 베트남 정부가 집계한 지난해 대외 수출액은 전년 대비 10% 증가한 3718억5000만 달러인데, 이 가운데 74.4%(2767억6000만 달러)는 외국인 투자(FDI) 부문에서 비롯됐다. 이 투자를 바탕으로 지난해 미국과 유럽연합(EU)으로부터 거둬들인 무역수지 흑자 규모는 각각 949억 달러, 318억 달러에 이른다. 해외 투자를 통해 생산한 제품을 선진 시장에 수출해 이익을 내는 전형적인 ‘생산 기지’ 구조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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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베트남의 성장에 한국은 일찌감치 올라탄 국가로 꼽힌다. 수교 이후 지난해 11월까지 누적 투자액(808억 달러)을 기준으로 한국은 베트남의 최대 투자국이다. 베트남이 생산기지로 성장한 만큼 한국의 이익도 커졌다. 지난해 한국의 대(對)베트남 무역수지 흑자는 역대 최대치인 342억 달러로, 베트남은 한국의 최대 무역 흑자국에 등극했다. 안병선 한국무역협회 신산업연구실 수석연구원은 “베트남은 현지공장 운영에 필요한 중간재를 한국으로부터 조달하는 구조”라며 “베트남이 중국의 대체생산지로 부상하면서 무역수지 흑자도 지난 30년간 80배 이상 확대됐다”고 분석했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생산 기지로서 베트남의 입지는 당분간 강화될 전망이다. ‘차이나플러스 원(중국 이외 지역을 공급망에 추가하는 전략)’으로 대표되는 공급망 다변화 전략의 중국 대체 국가를 넘어, 베트남이 가진 강점이 부각된 덕분이다. 예컨대 지난해 인구가 전년 대비 85만명가량 줄어들며 ‘피크 차이나(Peak China, 중국 경제 성장 정점 도달)’ 우려가 커진 중국과 달리 베트남은 오는 4월경 1억명 돌파가 확실시 되는 ‘성장 진행형’ 국가다. 알레인 카니 주베트남 유럽상공회의소 회장은 베트남 현지 언론을 통해 “베트남의 경제적 기회는 인근 지역을 능가하고 있다”며 “많은 회사들이 베트남을 글로벌 투자 전략의 중심으로 생각한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라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중국 기업들도 베트남 투자에 열을 올리는 상황이다. 중국 1위 디스플레이 기업인 BOE는 베트남 북부 지역에 4억 달러를 투자해 OLED 공장 두 곳을 건설할 계획이다. 중국 1위 전기차 업체 비야디(BYD)도 베트남에 전기차 부품 공장을 건설할 것이란 얘기가 지난 1월 흘러나왔다. 로이터는 사안에 정통한 소식통을 인용해 “베트남 북부에 2억5000만달러(약 3100억원)가 넘는 자금을 들여 공장을 건설할 계획으로 올해 중반쯤이면 공사가 시작될 것”이라고 전했다.

배후에 자리 잡은 동남아시아 시장도 글로벌 기업들이 베트남에 주목하는 이유다. 베트남과 인도네시아와 필리핀 등 아세안 지역 인구는 2022년 기준 6억7353만명으로 추산된다. 이에 지난해 11월 베트남에 10억 달러 규모 공장 건설에 들어간 레고 그룹의 프레벤 엘네프 부사장은 “향후 10년 안에 태어나는 아이들의 대다수가 동남아시아 출신일 것”이라며 “이 지역의 중산층 소득은 점점 더 나아질 것이고 시장 수요 증가로 이어질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렇게 각광받는 베트남이 향후 한국의 무역수지 흑자를 견인할 수 있을까. 전문가들은 이대론 쉽지 않을 것이라 입을 모은다. 각국 정부와 기업들이 한팀이 돼 베트남에 입지를 넓히려 혈안이 된 가운데, 한국은 여전히 민간 투자에 기대고 있다는 것이다. 송영관 한국개발연구원(KDI) 선임연구위원은 “한국과 중국, 일본으로 연결된 글로벌 공급망에서 중국이 빠져 나가면서 과거 한·중·일 교역 모델이 깨진 가운데 이들은 과거 중국의 역할을 베트남에 기대하는 상황”이라며 “과거 중국처럼 베트남 특수가 올라오려면 상당한 시간이 필요한데 지금 상태로는 한국이 주변국에 비해 열위에 놓일 것”이라 지적했다.

실제로 과거 기술과 중간재, 완제품을 주고 받으며 공급망을 형성했던 한·중·일 3국은 모두 베트남에 러브콜을 보내는 상황이다. 중국만 하더라도 기업 투자와 함께 정부가 나서 동남아시아 지역을 일대일로(一带一路) 정책의 핵심 지역으로 설정하며 공을 들인 바 있다. 그 결과 지난해 베트남에 1178억7000만 달러어치의 전자 부품, 기계 등을 수출하며 중간재 수출 1위국에 올랐고 609억 달러의 무역 흑자를 가져갔다. 한국과 중국의 무역 흑자 공식이 겹치는 가운데 중국은 한국보다 두 배 가까운 흑자를 거둬들였다는 얘기다.

일본도 위협적이다. 일본은 지난해 11월까지 688억 달러를 누적 투자한 베트남의 3위 투자국인 데다, 2018년말 발효된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을 통해 유리한 위치에 있다. 송영관 선임연구위원은 “한국은 베트남과 자유무역협정(FTA)도 맺었고,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을 통해 연결돼 있지만, CPTPP에 비해 낮은 개방 수준의 협정”이라며 “CPTPP로 묶인 일본과 베트남은 중간재 수출입에 무관세가 적용돼, 관세가 있는 한국보다 유리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지난해 말 인도태평양 전략을 내놨지만, 여전히 구체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구체적으로 한국이 개별 국가들과 어떤 역할을 주고받을지 분명하지 않다는 것이다. 최인아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동남아·대양주 팀장은 “지금까지 발표된 내용만 보면 정부의 전략은 인도네시아를 비롯한 몇몇 국가를 제외하면 구체적인 내용을 확인하기 어렵다”며 “다른 국가들에도 경제 협력차원에서 구체적인 로드맵이 조속히 나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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