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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철강산업, 그린수소 확충해야 경쟁력 생긴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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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9호 16면

김경식의 실전 ESG

이창양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지난달 16일 서울 동대문 JW메리어트호텔에서 철강산업 발전 원탁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뉴스1]

이창양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지난달 16일 서울 동대문 JW메리어트호텔에서 철강산업 발전 원탁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뉴스1]

2019년 말 전 세계를 강타한 코로나19로 사람과 물자 이동이 제한되자 세계 각국 경제엔 비상이 걸렸다.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었다. 급기야 정부는 2020년 4월 22일 대통령 주재 제5차 비상경제회의를 열어 기업 지원 대책을 발표했다. 이날 발표한 내용은 은성수 금융위원장이 보고한 ‘일자리를 지키기 위한 기업안정화 지원방안’ 이었다.

이미 정부는 100조원 이상의 ‘민생·금융안정 패키지 프로그램’을 통해 대응하고 있었다. 그러나 계속된 경제 위축으로 기업의 도산 위기까지 대두되자 기업 안정화 목적으로 40조원 이상의 기금을 추가로 마련하겠다고 발표했다. 기금의 지원대상은 항공, 해운, 조선, 자동차, 일반기계, 전력, 통신 등 7대 기간산업이었다.

그런데 이날 발표에서 기간산업의 대명사로 불리던 철강·정유·석유화학 등 3대 산업은 빠져 있었다. 해당 산업들은 몇 가지 공통점이 있는데, 우선 원료를 100% 수입하는 소재산업인데다 생산제품의 절반 이상을 수출해야 한다. 제조과정 상 오염물질을 대량 방출하고, 자본집약 산업으로 저고용·고임금 구조를 취하고 있다. 자동차 같은 전방산업에 비해 저부가가치 산업이라는 점도 꼽힌다. 또 막대한 물동량으로 안전한 해상운송을 신경써야 하는 지정학적 리스크 부담이 너무 크다는 점도 있다. 이렇다보니 그간 정부(기획재정부처)는 이러한 소재산업은 산업안보상 필요한 규모만큼만 유지하고 그 이상은 구조조정의 필요성을 늘 염두에 두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고철 재활용 정책도 수십년째 제자리

발표가 난 후 철강 산업계가 받은 충격은 컸다. 산업계는 오늘날 우리나라가 세계 10대 경제강국이 된 것은 철강과 전력산업의 뒷받침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믿어 왔다. 실제 철강산업의 전방효과는 3.08(석유화학 2.17, 자동차 1.1), 후방효과는 1.4(자동차 1.29, 조선 1.21)로 다른 어떤 산업보다 국민경제 기여도가 높다.

철강산업은 이러한 정부의 인식 변화와 함께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새로운 위기를 맞았다. 바로 탄소중립이라는 패러다임의 전환이다. 2020년 기준 철강산업의 온실가스 배출량은 국가 전체 배출량의 15%, 산업부문 배출량의 40%를 차지한다. 이 중 대부분은 철강 생산의 70%를 차지하는 일관제철소 용광로에서 연료와 원료로 사용하는 석탄(코크스)에서 나온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다행히 철강산업이 탄소중립을 달성할 수 있는 기술적 대안은 있다. 철광석에 함유된 철과 산소를 분리시키는 환원제를 탄소 덩어리인 석탄 대신 수소로 사용하는 수소환원제철 기술이다. 현재 상용화를 앞두고 있다. 환원제로 쓰이는 수소는 재생(무탄소)에너지로, 물을 수전해(수소와 산소로 분리)한 그린수소다. 하지만 우리는 이러한 그린수소 확보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2021년 발표한 산업통상자원부의 ‘제1차 수소경제 이행 기본계획’에 따르면 2050년 국내 수소 필요량 2800만t 중 국내 생산량은 화석연료에서 추출한 블루수소 200만t과 그린수소 300만t이 전부다. 나머지 2300만t은 해외에서 수입할 계획이다. 그런데 국내 제철소에서 코크스 대신 필요한 그린수소만 해도 약 400만t이다. 정부 계획대로라면 제철소에서 필요로 하는 그린수소는 대부분 수입해야 한다.

수입한 수소를 사용하려면 먼저 기체상태의 수소를 영하 253도로 액화시켜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벌써 수소 에너지의 35%가 소모된다. 이 때문에 그린수소를 영하 33도로 낮춰 그린암모니아(NH₃)로 변환시킨 후 운송하는 안이 가장 유력한 방법으로 거론된다. 이렇게 그린암모니아로 혼합한 후 저장→선박운송→하역(저장)→암모니아와 분리→운송→제철소 저장→사용의 단계를 거쳐야 한다. 한마디로 엄청난 물류비용이 들고 이 과정에서 에너지 손실도 많아 수입 그린수소를 사용한 철강은 경쟁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한편에선 철광석과 재생에너지가 풍부한 호주나 브라질에서 그린수소를 환원제로 해서 생산한 HBI(주먹 크기의 무쇠 덩어리)를 수입하자는 방안도 나오고 있다. 보통 철강생산 공정은 철광석(코크스) 용해→무쇠 덩어리(Iron)→제강(Steel)→슬라브(장방형의 두꺼운 철판)→후판·열연·냉연 강판으로 이어진다. 후판은 선박건조·고층건물·교량 등에 사용되고, 열연 강판은 각종 건축물·기계산업에, 냉연 강판은 자동차·건물내장재·가전제품 등에 사용된다.

국내 철강산업 경쟁력의 50%는 다양한 연료와 원료를 조합해 무쇠를 만드는 과정에서, 30%는 필요로 하는 철강 소재의 성분을 만드는 제강에서, 20%는 나머지 공정에서 생긴다. 우리나라 철강산업의 경쟁력이 세계 최고를 유지하는 것은 연료·원료 투입부터 최종 제품까지 한 공장에서 일관되게 생산하면서 각 공정의 최고 기술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에 그린수소가 없어 해외에서 HBI를 수입해야 한다면 철강 경쟁력의 50%는 사라지게 된다. 특히 철광석을 그린수소로 환원해 생산하는 초기에 ‘수소 HBI’ 생산기술을 해외에 의존한다면 경쟁력 대부분을 상실하는 것과 같다. 문제는 자원 보유국은 물론이고 자금을 무기로 한 종합상사들은 이미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는 점이다. 철광석 산지 인근의 광활한 부지에서 태양광 전기를 생산하고, 그린수소를 만들어 수소환원제철로 쇳물에서 슬라브까지 생산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해수 담수화 기술이 발전해 수전해에 필요한 물 확보가 쉽다는 건 그들에겐 더없이 유리한 조건이다. 반대로 우리나라 철강산업 경쟁력의 80%는 날아가게 된다.

연쇄 작용으로 국내 제철소 종사자의 절반 이상은 일자리를 위협받을 것이고, 후방산업의 위축에 이어 자동차·조선·기계산업 등 전방산업의 경쟁력 또한 급격히 상실될 것이 뻔하다. 보통 고객사는 철강사와 자동차 강판의 경우 신차 기획 단계에서부터, 조선은 수주 할 때부터 소요 철강재 개발을 협의하고 시생산과 테스트 과정을 계속 반복한다. 이러한 EVI(Early Vendor Involvement) 과정을 통해 고객은 최고의 제품을 가장 저렴하고 원하는 타이밍에 공급 받고 있다. 이젠 이런 강점이 없어지는 것이다. 국내 기간산업들이 무너지는 건 시간 문제다.

세계는 이미 탄소국경제도(CBAM)와 인플레감축법(IRA)으로 자국 최우선의 보호무역 시대에 진입했다. 자국 기술력 확보에 속도를 내야 하는 이유다. 수소환원제철 기술의 경우 소요되는 자금만 약 68조원으로 추정되는데, 당장 이 막대한 자금을 확보하는 것부터 쉽지 않다. 가령 국내 철강기업 포스코의 경우엔 자금 조달이 아주 어렵게 됐다. 지난해 1월 지주사(포스코홀딩스) 출범 시 주주들은 자회사 포스코의 상장(기업공개)을 강력하게 반대했다. 물적분할에 따른 주주가치 하락 때문이다. 결국 지주사 출범 후 자회사 포스코를 상장하지 않겠다고 정관에 명시했고, 수소환원제철에 필요한 천문학적 금액은 대부분 차입으로 조달해야 하는 형편이 됐다.

예산 지원마저 각박하다. 철강 산업을 경시하는 정부의 인식이 여실히 반영된 탓이다. 미국은 10년간 4000억 달러(460조원) 지원, EU는 2030년까지 그린딜 기금 1조 유로(1300조원) 조성, 일본은 탄소중립 기금 2조엔(21조원) 조성을 발표했다. 현 정부의 지원 규모는 저탄소·친환경 철강을 위해 2030년까지 1414억원, 수소환원제철 R&D에 2023년부터 3년간 269억원에 불과하다.

정부가 편파적으로 산업용 전기요금을 인상시킨 건 경제적 부담을 가중시킨다. 평소에도 산업용 전기요금은 평균 이상을 부담하고 있었는데, 지난해 10월 전기료 인상 시 산업용 고압전기는 일반용(2.5원/㎾h)보다 5배 비싼 11.7원/㎾h을 올렸다. 불경기일 때 부담할 여력이 있다면 더 부담하는 건 감당해야 할 몫이겠지만, 원칙없이 강압적으로 떠 넘기는 식은 곤란하다.

산업용 전기요금 인상시켜 부담 가중

고철 정책이 해방 후 지금까지 수 십년째 제자리 걸음인 점도 짚어야 할 문제다. 수명을 다한 철은 탄소환원 과정이 필요없으므로 재활용할 경우 이산화탄소가 발생하지 않는다. 전 세계는 이런 고철을 중요 자원으로 여기고 있다. 이미 고철 보유국은 수출을 통제하고 있을 정도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도 고철을 폐기물로 분류해 산업자원으로 육성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리스크와 기회가 공존하는 게 위기다. 정부에서 우려했던 철강산업의 걱정거리는 탄소중립시대를 맞아 오히려 새로운 산업 부흥의 씨앗이 될 수 있다. 이를 결정짓는 핵심은 재생에너지와 그린수소 확보에 달려있다. 재생에너지를 육성할 경우 에너지 자립(안보)과 탄소중립도 달성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전력의 수요·공급을 조절하는 스마트그리드, 빅테이터와 AI를 활용하는 4차 산업과의 융합을 통한 새로운 산업이 육성될 수도 있다. 또한 국내에서 그린수소를 활용한 수소환원제철 기술 활용이 가능하게 된다면 철강산업과 연관산업의 경쟁력도 유지될 것이다.

2050년까지 국내 그린수소 생산량을 기존 계획량 300만t에서 최소한 1000만t 이상으로 높여 에너지 자립률을 높이고, 국내 수소환원제철이 경쟁력을 갖도록 해야 한다. 적어도 수입 제비용이 포함되는(CIF) 그린수소보다는 국산(EXW) 그린수소가 경쟁력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것에 정책의 초점을 맞춰야 한다.

김경식 ESG네트워크 대표 고철(高哲)연구소장 pentagram700@naver.com 한국 ESG학회 부회장. 오랜 기업 생활을 통해 ‘좋은 기업이 좋은 사회를 만든다’는 신념으로 ‘ESG경영’을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 『사람 중심 ESG를 말한다(공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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