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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전략적 ‘골든 타임’ 앞에 선 한·일 지도자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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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9호 30면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 [뉴시스, EPA=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 [뉴시스, EPA=연합뉴스]

윤 대통령 3·1절 기념사 국내외 찬반 반향

일본, 한·일 관계 회복 호기 놓치지 말아야

정부, 징용 피해자와 국민의 공감 더 얻길

일본을 ‘협력 파트너’로 의미 부여한 윤석열 대통령의 104주년 3·1절 기념사가 한·일 관계를 급진전시킬 촉매제가 될지는 앞으로 일본의 반응에 달렸다. 이번 연설을 계기로 일본이 긍정 화답하면 이달 중에 한·일 정상회담이 가능할 수도 있고, 5월 일본 히로시마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 일본이 윤 대통령을 초청할 것이란 장밋빛 전망도 나온다. 물론 다른 한쪽에서는 섣부른 낙관론을 경계하는 신중론도 적지 않다.

윤 대통령의 연설문에 대해 국내 반응은 양분되는 모양새다. 여당인 국민의힘은 “오로지 국익 관점에서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을 제시했다”고 평가했다. 반면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어제 “일본의 잘못을 합리화하고 협력을 구걸하는 것은 ‘학폭(학교폭력)’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머리를 조아리는 것과 같다”고 비판했다. 민주당은 윤 대통령을 매국노 이완용에 빗대며 친일로 몰았다. 일각에서는 일본의 과거사 책임 언급이 전혀 없었다거나, 강제 징용 해결을 기대한 나머지 지나치게 저자세를 보였다는 비판도 있었다.

국외의 반응은 대체로 긍정적이다. 미국은 화끈하다 싶을 정도로 반응이 뜨겁다. 한·일 현안 해결을 통한 한·미·일 협력을 촉구해온 미국 국무부는 “윤 대통령의 비전(‘협력 파트너’)을 매우 지지한다(very much support)”고 논평했고, 일본 언론들도 대체로 긍정적 논평과 기대감을 피력했다.

관건은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총리와 집권 자민당 실세들의 향후 태도다. 그동안 양국 외교부 국장·차관·장관급 협의에서 일본은 전향적 해법을 제시하기보다는 “1965년 ‘한·일 기본 협정’ 틀에서 해결한다”는 기존 입장을 고수해온 것으로 전해진다. 예컨대 징용 피해자들의 구상권 포기 선언을 요구하거나, 전범 기업들의 성금 납부 불참을 주장해왔다. 그러나 이런 태도로는 문제 해결이 요원하다. 일본은 자신이 바둑의 선수(先手)를 두고 있다고 착각하지 말아야 한다. 우크라이나 전쟁, 미·중 패권 경쟁, 중·일 영유권 분쟁, 북한 미사일 도발 등 지정학적 격변이 몰아치는 지금, 마냥 여유 부릴 상황이 아님을 스스로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동북아 안정을 위해서는 한·미·일 안보 협력을 강화하는 노력이 불가피한 것이 현실이다. 일본 지도부가 이런 전략적 필요성을 외면하고 한·일 관계 회복의 호기를 놓친다면 정치적·역사적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다.

국가안보실·외교부·국방부 등 윤석열 정부의 외교 안보 진용도 복잡한 숙제를 슬기롭게 풀어야 한다. 먼저 강제 징용 피해자와 국민으로부터 충분한 공감을 얻기 위한 노력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 일본과 진지하게 협의에 응하되, 조급하게 결과만을 좇다 오히려 일을 어렵게 만드는 어리석음을 범해서는 곤란하다. 가까이는 2015년 12월 일본군 위안부 해법 합의 경험을 상기하면서 실질적 성과를 끌어내기 위한 지혜를 발휘해야 한다.

이웃사촌이라지만, 인접 국가들이 순탄하게 지내기가 쉽지 않은 것이 역사적·국제적 현실이다. 국민감정을 앞세워 외교 문제를 국내 정치에 이용하면서 상황을 더 꼬이게 한 경험도 없지 않았다. 해묵은 감정이나 과거에 발목 잡힌 정치인들의 퇴행적 태도 때문에 모처럼의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된다.

국제정치의 큰 흐름을 보면 가까이는 5월 G7 정상회의 때까지, 길게 잡아도 8·15 광복절까지가 한·일 관계 회복의 ‘골든 타임’일 수 있다. 상대가 있는 외교에서 한쪽이 완승하거나, 일방적으로 전리품을 챙길 수는 없다. 객관적 여건도 주의 깊게 살피는 현명함이 요구된다. 윤 대통령과 기시다 총리가 용기와 지혜를 발휘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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