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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데이 칼럼] 공화주의 위협하는 엘리트의 부모 찬스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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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9호 31면

이정민 칼럼니스트

이정민 칼럼니스트

“아빠는 아는 사람이 많다. 판사랑 친하면 재판에서 무조건 승소한다.”

정순신 변호사 아들의 발언이 처음 보도됐을 때, 말실수려니 여겼다. 내 상식으론 적어도 대한민국 검사, 고위 공직자를 아버지로 둔 고교생 아들이라면 이렇게 드러내 놓고 아버지의 신분과 특권을 자랑하도록 교육받진 않았으리라 믿었다. 사회 지도층일수록 특권적 지위나 신분이 노출되지 않도록 조심하고 스스로를 낮추는 게 불문율이요, 공직자의 덕목이 아니었던가. 그런데 그건 순진한 착각이었다. 이들 부자는 특권을 과시하고 행사하는 데 아무 거리낌이 없었다. “돈도 실력이야. 네 부모를 원망해”라고 해 공분을 샀던 최순실씨 딸 정유라의 다른 버전이다.

정순신,아빠 찬스로 학폭 아들 구제
엘리트 일탈은 대중에 박탈감 안겨
공정 무너지며 공동체 해체 가속화
공동선에 부합한 시민적 덕성 필요

선데이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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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심 판결문에 따르면, 아들 학교의 교사는 “정군에게 피해 학생의 아픔을 공감하게 해주려 노력했지만 책임을 인정하는 걸 두려워하는 부모님이 선도를 막고 있다”고 진술했다. 부모가 책임 회피를 코치하고 있다는 교사의 의심은, 정 변호사의 학교폭력대책심의위 발언에서도 읽힌다. 정 변호사는 “때린 것이 있으면 변명의 여지가 없겠지만 언어적 폭력은 맥락이 중요한 것 같다”거나 “경력이 많지 않은 학교폭력 담당 교사가 불과 10일 만에 사건을 조사했다”고 이의제기를 했다. 전문적인 법 지식과 빵빵한 법조 인맥을 둔 아빠는 보통사람들은 알기 어려운 재심청구, 행정소송, 집행정지 같은 소송을 이어갔고 아들은 명문대에 입학했다. 반면 피해자는 후유증에 시달리다 학업을 중단했다고 한다. 지식·정보·인맥으로 이어지는 특권 카르텔의 작용이 아니라면 설명할 길이 없다. 이렇게 검사 아빠는 민감한 학교폭력 문제도 ‘힘’으로 누르며 위력을 입증했다. 아빠찬스의 실증적 위력을 목격하고 압도된 아들이 “아빠는 아는 사람이 많다”고 자랑하고 다닌 건 단순한 말실수가 아닌 것이다. 아빠가 가진 권력에 대한 숭배이자, 아빠 찬스에 대한 찬사일 터다. 그러니 “자신보다 급이 높다고 판단하면 잘하고, 낮다고 생각하면 모멸감을 주는” 행동을 하면서도 죄의식을 느끼지 못한 것 아닐까. 돈과 권력이 지배하는 사회의 계급 질서를 너무 일찌감치 체득한 것이다.

너나 할 것 없이 자식 앞에서 부모는 한없이 약해지게 마련이다. 더구나 자식이 위기에 빠졌을 때 부모의 이기심이 발동하는 걸 탓할 수만은 없다. 그러나 남의 자식을 수렁에 빠뜨리고 얻은 행운이라면 다른 문제다. 옷깃 여미며 성찰부터 하는 게 상식이다. 더구나 5년 전 언론에 보도됐을 때부터 주목을 받았던 사건 아닌가. 그런데도 정 변호사는 세상이 다 잊었다고 생각했는지, 아니면 세평 따위는 상관없이 믿는 구석이 있었든지 권력의 꽃가마에 냉큼 올라타는 만용을 부렸다. 특권 엘리트층의 일탈과 탐욕이 이처럼 무도한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슬픈 현실이다.

엘리트 기득권층의 탈선은 공동체 해체를 가속화한다. 공정과 정의에 대한 기대를 무너뜨려 다수의 사회 구성원에게 열패감과 박탈감을 안긴다. 조국 사태가 여실히 증명하지 않았나. 자녀 입시에 연줄을 동원하고 서류를 위조하고 부모 찬스로 스펙을 뻥튀기한 게 법원 판결로까지 드러났지만 여지껏 사과 한마디 않고 있다.

윤석열 정부도 별로 다르지 않다. 풀브라이트 동문회장을 지내며 본인과 부인·두 자녀 등 온 가족이 풀브라이트 장학금 혜택을 받은 전 대학총장을 교육부장관 후보자에, 경북대병원장등을 지낼 때 두 자녀가 경북대 의대에 편입학하는 등 특혜 의혹이 제기된 의사를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에 지명했다. 둘 다 중도 하차했지만 이들이 남긴 상흔은 지워지지 않는 화석으로 남았다. 국가 소멸까지 우려되는 결혼·출산 포기 현상은, 자식을 위해 인맥과 정보를 총동원하는 부모찬스 사회, 시작점부터 불공정과 불평등 위에 출발해야 하는 미래세대의 억눌린 비명과 분노의 표출일지 모른다.

엘리트가 어떻게 사회적 불평등을 심화하는지를 연구한 미하엘 하르트만은 『엘리트 제국의 몰락』에서 능력과 전문성으로 무장한 정치 엘리트들은 점점 대중과 괴리되면서 대중의 정치 혐오를 불러 우익 대중영합주의라는 결과로 이어진다고 지적했다. 『공정하다는 착각』의 저자 마이클 샌델의 진단도 비슷하다. 트럼프 대통령의 집권을, 금융위기를 맞아 같은 엘리트들이 포진한 월가의 편을 들어준 오바마 대통령의 ‘아이비리그 내각’에 대한 노동자들의 반격의 결과라고 분석했다.

엘리트가 사회적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사회가 위험한 건 공화주의 자체를 위협하기 때문이다. 2400여년 전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도 이걸 걱정했다. 그래서 공화정이 제대로 실현되려면 실천적 지혜와 시민적 덕성이 필요하다고 설파했다. 공동체적 삶의 원리와 가치를 다투는 공적 영역에서 사적 이해를 놓고 다툼이 있어선 안 되므로 시민들이 개인의 이익을 넘어서서 공동선에 복무하는 시민적 덕성을 갖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공동체적 삶에 무엇이 이로운지 심사숙고할 줄 아는 실천적 지혜를 갖출 것을 요구했다. 그렇지 않다면 공화정은 혼란과 분열을 거듭하다 붕괴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한국 사회 엘리트 부모들의 자식 사랑과 부모 찬스 남발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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