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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도연 튀르키예 긴급구호대장 인터뷰] 지구 종말 같은 지진 현장, 한 명이라도 더 못 구해 죄송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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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9호 27면

원도연 튀르키예 긴급구호대장 

대한민국 해외긴급구호대가 지난달 9일 튀르키예 안타키아에서 무너진 고교 건물 잔해를 치우며 생존자 수색 작업을 벌이고 있다.

대한민국 해외긴급구호대가 지난달 9일 튀르키예 안타키아에서 무너진 고교 건물 잔해를 치우며 생존자 수색 작업을 벌이고 있다.

지난달 6일 튀르키예와 시리아에서 유례없는 강진이 발생하자 정부는 ‘대한민국 해외긴급구호대(KDRT)’를 편성해 바로 다음날인 7일 튀르키예 현지로 급파했다. 2007년 해외긴급구호대가 설립된 이후 가장 신속한 출동이었다. 특히 1진 선발대에는 외교부·소방청·한국국제협력단은 물론 특전사·의무사령부 등 군 인력까지 처음 합류하면서 역대 최대 규모인 118명의 구호대원들이 튀르키예로 떠났다. 이들은 10여 일간 수색·구조 작업을 통해 8명의 생존자를 구조하고 19구의 시신을 수습한 뒤 2진 구호대에 바통을 넘기고 지난달 18일 복귀했다.

1진 긴급구호대장을 맡은 원도연 외교부 개발협력국장은 “현지 주민들이 망연자실한 상황에서도 우리 대원들에게 따뜻한 물을 건네는 등 어떻게든 힘을 보태려는 모습에서 남다른 책임감을 느꼈다”며 “그분들을 위해서라도 한 명이라도 더 구조하려고 했는데 이렇게 돌아와 죄송스러운 마음뿐”이라고 말했다. 원 대장은 2014년 에볼라 바이러스 긴급 대응과 2015년 네팔 지진 때도 구호대장을 맡는 등 해외 긴급구호에 잔뼈가 굵은 전문가로 꼽힌다. 원 대장을 중앙SUNDAY가 만나 튀르키예의 참혹한 지진 피해 상황과 열악한 환경 속에서 펼친 구조 활동 등에 대해 들어봤다.

처음 마주한 튀르키예 모습은 어땠나요.
“이번 지진의 진앙인 가지안테프 공항에서 수색·구조 활동을 펼친 안타키아 지역으로 이동하면서 목격한 장면은 너무나도 참혹했습니다. 거리 곳곳에 시신이 가득했고 온전한 건물은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전기가 모두 끊겨 저녁이 되니 도시 전체가 칠흑같이 어두워졌어요. 잔해가 쌓여 있다 보니 차량으로 2~3㎞ 이동하는 데만 3시간 넘게 걸릴 만큼 아수라장이었습니다. ‘아, 이런 게 지구 종말이구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8명 구조, 19구 시신 수습 뒤 2진에 바통

구조 활동에도 어려움이 많았을 텐데요, 어떤 점이 가장 힘들었나요.
“무엇보다 여진에 대한 공포가 매우 컸습니다. 사실 전기와 수도가 끊기고 맹추위와 싸워야 한다는 건 출발할 때부터 어느 정도 각오한 부분이었어요. 하지만 여진은 대원들 안전과도 직결된 문제인 만큼 땅이나 건물이 조금만 흔들려도 심리적으로 엄청난 공포로 다가왔습니다. 실제로 첫날 구조 작업 도중 여진이 발생하면서 바로 앞 건물이 엄청난 굉음과 함께 크게 흔들리기도 했어요.”
생존자를 찾기 위해 붕괴한 건물 내부에 진입하는 것도 쉽지 않았을 텐데요.
“맞습니다. 저희 구조대도 목숨을 걸고 들어간다는 각오였으니까요. 이번 지진이 대부분 도심에서 발생하다 보니 6~8층짜리 건물 붕괴가 많았습니다. 높은 콘크리트 건물이 무너질 경우 샌드위치처럼 주저앉기 때문에 구조가 더 힘들 수밖에 없습니다. 철근을 하나하나 절단하고 콘크리트 외벽도 일일이 뚫어가며 수색해야 하기 때문이죠. 세 번째 구조자였던 10세 아이를 꺼낼 때는 4시간 넘게 걸리기도 했습니다.”
구호대 텐트에 현지 주민들이 한국어로 ‘형제 나라’ ‘고마워’ 등을 써놓은 모습. [사진 긴급구호대]

구호대 텐트에 현지 주민들이 한국어로 ‘형제 나라’ ‘고마워’ 등을 써놓은 모습. [사진 긴급구호대]

열악한 상황에서도 8명을 구했는데, 어느 구조자가 가장 기억에 남나요.
“아직도 마음이 아픈 건 피해 현장에서 생존자들이 망자와 오랜 시간 함께 있었다는 점입니다. 여성 한 분은 뼈가 겉으로 드러난 상태로 구출됐지만 신음 한 번 내지 않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갓 돌 지난 아이 시신이 수습돼 나오자 그 자리에서 오열하며 통곡하더라고요. (한숨을 내쉬며) 그 모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자식 잃은 부모의 심정이 너무나 절실히 와닿아 현장에 있던 모든 사람이 함께 울 수밖에 없었어요.”
아쉬웠던 순간도 적잖았을 텐데요.
“구조 마지막 날 아침 8시쯤이었을까요. 대원 한 명이 현장 본부로 찾아왔습니다. 시신 한 구를 수습해 달라는 현지 주민의 간곡한 부탁이 있었는데 그걸 미처 들어주지 못한 게 마음에 걸린다며 떠나기 직전까지 좀 더 찾아볼 수 있겠냐는 거였어요. 긴급회의가 열렸지만 안전 문제가 너무 심각해 더 이상은 힘들겠다고 결론을 내렸죠. 안타까워하던 그 대원의 모습이 지금도 잊히지 않습니다.”
토백이·해태 등 함께 파견된 구조견들 활약도 대단했다고 하던데요.
“활동 첫날 생존자 세 명을 구조한 현장도 해태가 발견한 것이나 다름없을 정도로 구조견들이 수색 작업에서 핵심 역할을 맡았습니다. 지진 피해 현장 곳곳을 종횡무진 뛰어다니다 보니 상처도 많이 입었지만 붕대를 감은 채 수색 작업을 계속하는 ‘붕대 투혼’에 대원들이 오히려 더 감동할 정도였죠. 이런 모습을 지켜본 현지 주민들도 우리 구조견들이 한 번만 더 수색하게 해달라고 눈물로 호소하기도 했습니다.”
구호 활동에 대한 현지 반응은 어땠나요.
“우리 대원들이 지나갈 때마다 현지 주민들이 ‘코렐리 온 누마라’라고 외치더라고요. 처음엔 무슨 뜻인지 몰랐는데 알고 보니 ‘한국인이 최고’라는 뜻이었습니다. 우리 구조견들 이름도 다 외워서 불러줄 정도였어요. 어느 주민은 집이 완파돼 노숙하는 상황에서도 물을 따뜻하게 끓여 우리 대원들에게 일일이 나눠주기도 했습니다. 그러면서 저희 손을 꼬옥 잡아주셨는데…, 그때 그 느낌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네요.”
언어 소통도 쉽지 않았을 텐데요.
“처음엔 말이 통하지 않으니 손짓 발짓 다 써가며 생존자를 찾아다녔습니다. 그런데 저희 구조 작업이 알려지면서 대사관과 이스탄불총영사관에 통역 자원봉사를 하겠다는 요청이 쇄도했다고 하더라고요. 한국에서 케밥 식당을 운영하다 얼마 전 고향으로 돌아온 분도 현지에서 통역을 자처하고 나섰습니다. 서로 언어는 통하지 않았지만 주민들 눈빛과 박수 소리만으로도 무슨 말을 하려는지 충분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정부, 일회성 도움 아닌 지속적 지원 계획

원도연 긴급구호대장(오른쪽)이 한국전쟁 참전 용사 외손자로 수색 작업에 동참한 일리야스 츠나르 대원(가운데)과 손을 맞잡고 있다. [사진 외교부]

원도연 긴급구호대장(오른쪽)이 한국전쟁 참전 용사 외손자로 수색 작업에 동참한 일리야스 츠나르 대원(가운데)과 손을 맞잡고 있다. [사진 외교부]

원 대장은 그러면서 “지금 주민들에게 가장 절실한 건 최소한의 생존에 필요한 임시 거주지”라고 강조했다. “저희 구조대도 튀르키예를 떠날 때 현지에서 쓰던 텐트 10여 개와 침낭들을 모두 남겨주고 왔어요. 한 대원은 아예 개인 물품도 전부 주민들에게 건네고 배낭을 텅 비워서 오기도 했죠. 우리와 교대한 2진 구호대에도 이런 사실을 알리고 텐트와 침낭을 최대한 챙겨 오도록 했습니다.”

한국 이미지도 많이 달라졌을 듯싶어요.
“출국할 때 튀르키예 공항에서 정말 여실히 느꼈습니다. 게이트에서 대기하고 있는데 ‘대한민국 구호대가 구조 활동을 마치고 떠난다’는 안내 방송이 나오더라고요. 그러자 주위에 있던 수백 명의 대기 승객들이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나 우리 구호대를 향해 손뼉을 치기 시작했어요. 그곳엔 튀르키예 국민 말고 외국인들도 적잖았는데 하나같이 ‘대한민국 참 대단하다’며 칭찬과 격려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현장을 지킨 구조대원으로서,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순간 울컥해지며 눈물을 참을 수가 없더라고요.”
피해 복구도 결코 쉽지 않은 상황입니다.
“세계은행에 따르면 튀르키예는 이번 지진으로 GDP의 4%가 줄어들 것으로 전망되고 있어요. 복구 비용은 그보다 두 배나 더 많이 필요한 상황이고요. 튀르키예가 예전의 모습을 되찾을 수 있도록 우리 정부도 일회성 도움에 그치지 않고 꾸준히 지원을 이어갈 계획입니다. 튀르키예는 우리 형제 국가잖아요.”

2007년 설립 KDRT, 에볼라 유행 땐 아프리카서 95일간 최장 구호

대한민국 해외긴급구호대(KDRT)는 재난이 발생한 국가에서 최대한 신속하게 인명 구조 및 의료 지원 활동을 전개할 목적으로 편성되는 범정부 차원의 구호대로 2007년 해외긴급구호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면서 처음 설립됐다. 이후 구호대는 매년 합동 모의훈련을 통해 공조 체계를 정비하고 긴급구호 대응력을 강화해 왔다. 코로나19로 중단된 뒤 지난해 3년 만에 재개된 대면 모의훈련에선 군 수송기 적재 등 대규모 훈련을 통해 긴급 출동 태세를 재정비하기도 했다.

이 같은 노력 덕분에 2011년 유엔 산하 국제탐색구조자문단의 국제탐색구조대 등급 분류 심사에서 최고 등급인 ‘상급(Heavy)’을 획득했고 2016년 재인증을 받았다. 상급 긴급구호대는 피해국의 도움 없이 자급자족을 통해 열흘간 재난 현장 두 곳에서 동시에 구조 작업을 진행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춘 구호대를 의미한다.

국제적인 구조 활동을 위해 마련된 만큼 긴급구호대는 그동안 지구촌 곳곳에서 재난이 발생할 때마다 피해국 지원에 적극 앞장서 왔다. 2008년 중국 쓰촨성 지진 구호 활동을 시작으로 같은 해 미얀마 사이클론 피해 현장에 이어 인도네시아(2009년)와 아이티(2010년) 지진 현장도 찾아 집중적인 수색 구조 작업과 인도적 지원 활동을 벌였다.

2014년엔 에볼라 바이러스 긴급 대응을 위해 아프리카 시에라리온에서 95일간 활동하며 최장기 파견 기록도 세웠다. 긴급구호대가 전염병 구호 대응에 나선 것도 이때가 처음이었다. 2015년 네팔 대지진 때는 지진 발생 후 48시간 만에 출동해 이번 튀르키예 긴급구호 전까지 가장 신속한 파견으로 기록되기도 했다. 2018년 라오스 댐 붕괴 재난 때는 긴급구호대가 4차례나 현지에 투입돼 한 달간 수해 복구 작업을 벌였고 2500여 명을 대상으로 의료 지원 활동을 펼쳐 국제사회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았다. 원도연 튀르키예 해외긴급구호대장은 “평상시에도 준비 태세를 꾸준히 강화해 왔던 게 이번 튀르키예 구호 활동으로 이어지면서 조금이나마 결실을 본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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