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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1테러가 조작됐다던 음모론 신봉자가 달라진 이유[BOOK]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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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생각을 바꾸는 방법

데이비드 맥레이니 지음
이수경 옮김

웅진지식하우스

미국인 찰리 비치는 9‧11테러가 조작됐다고 믿는 음모론 신봉자였다. 그는 9‧11 10주기인 2011년 영국 BBC방송의 ‘음모론 여행’ 제작진과 사건 현장을 돌아보고 관련자를 만나 증언을 들은 뒤 생각을 바꿨다. 객관적이고 정확한 정보를 접하자, 그릇된 믿음을 버렸다. 다른 음모론자들은 그가 미국 연방수사국(FBI)에 세뇌 당했거나, BBC가 섭외한 배우가 찰리인 척 한다고 여전히 생각한다.

정보가 홍수처럼 쏟아지고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평평한 디지털 세상’에서도 진실과 마주하는 대신 착각과 아집 속에 사는 완고한 고집쟁이는 사라지지 않는다. 미국 과학저널리스트인 지은이는 인간의 사고와 행동을 지배해온 편견‧선입견‧망상이라는 주제를 심리학‧뇌과학을 바탕으로 파고들었다. 특히 ‘나는 옳고 너는 틀렸다’며 사회적 분열과 갈등의 원천을 제공해온 사람들을 설득할 방법을 모색했다.

지난해 9/11 테러 21주기를 기념하며 한 소방관이 테러 때 숨진 동료 소방관의 사진 위에 손을 얹은 채 추모하는 모습.[AFP=연합뉴스]

지난해 9/11 테러 21주기를 기념하며 한 소방관이 테러 때 숨진 동료 소방관의 사진 위에 손을 얹은 채 추모하는 모습.[AFP=연합뉴스]

지은이는 설득해봐야 고집쟁이들의 생각을 바꿀 수 없을 것이라는 체념적 사고는 냉소주의의 산물일 뿐이라고 일갈한다. 그러면서 미국에서 동성결혼, 낙태, 베트남전쟁, 인종차별 및 여성차별, 투표권, 흡연, 마리화나 등에 대한 사회적 논쟁을 예로 든다. 오랫동안 격렬한 논쟁과 대립이 계속됐지만, 어느 순간 놀라운 속도로 여론 변화가 일어났다.

한국도 비슷한 사례가 있다. 불과 30년 전만 해도 술집‧식당‧사무실에서의 흡연을 당연하게 여겼다. 하지만 이제는 공공장소 흡연을 금기시하는 것은 물론, 드라마‧영화의 흡연 장면을 모자이크하는 게 당연한 세상이 됐다.

지은이는 이런 현상이 생물학에서 말하는 ‘단속평형설’과 일맥상통한다고 지적한다. 생물은 변화할 능력이 있지만 자극이 없을 때는 오랫동안 거의 변화가 없다가 환경에 변화할 필요성이 커지면 빠르게 진화한다는 이론이다.

그렇다면 어떤 자극으로 설득이 가능할까. 지은이는 자유와 자발성, 그리소 소통에 무게를 둔다. 그는 커뮤니케이션 전문가 대니얼 오키프의 말을 빌려 설득을 ‘상대방이 어느 정도 자유를 지닌 상태에서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그의 정신 상태에 영향을 끼치려는 의도적 활동’으로 정의한다. 설득은 다른 믿음의 강요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자발적인 수용으로 개인의 신념‧태도‧행동을 바꾸게 하는 것이라는 의미다.

심리학자 리처드 펄로프는 ‘듣는 사람이 내가 주는 메시지를 자유롭게 거부할 수 있다고 느끼는’ 윤리적 설득이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남을 설득해 '그가 원하지 않을 수 있지만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행동하도록 이끄는’ 것은 강요이지 설득이 아니라는 의미다. 특히 ‘내 말을 듣지 않을 경우 이런 끔찍한 일을 겪을 수 있다’는 압박은 겁을 줄 순 있지만 설득을 하진 못한다고 경계한다.

지은이는 정치적 음모론을 믿는 아버지와 논쟁하다 “전 아버지를 사랑해요. 그래서 아버지가 잘못된 정보에 속는 게 너무 속상해요”라고 하자 입씨름이 곧바로 끝난 사실을 상기한다. 아버지는 정보 출처를 경계하면서 사실적 정보를 바탕으로 생각을 바꿀 의사가 있다고 말하기에 이르렀다. 제대로 설득을 하려면 이처럼 자신의 의도를 솔직히 밝히는 게 중요하다는 지적이다.

사실 마음을 바꾸고 가정을 수정하며 관점을 바꾸는 것은 인간의 강점이다. 지은이는 진화심리학을 근거로 이러한 장점은 인간의 뇌가 진화를 통해 갖추게 된 능력이자 미덕이라고 강조한다.

설득은 윤리적인 의도, 솔직함, 그리고 효과적인 방법이 필요하다. 지은이는 상대를 존중하면서 진실에 도달한다는 공동의 목표를 함께 추구하는 것이 설득의 핵심이라고 역설한다. 말싸움에서 이기고 상대는 누르기 위한 기술로 착각해선 곤란하다는 이야기다. 착각과 아집의 밤을 보내고 소통과 상호존중의 새벽을 맞이하려면 할 일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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