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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속은 성균관, 하는 일은 소 잡기...조선 쇠고기 유통 뜻밖의 주역[BOOK]

중앙일보

입력

책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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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비와 쇠고기
강명관 지음

푸른역사

조선시대 성균관 주변에 모여 살았던 반인(泮人)은 여러모로 흥미로운 계층이다. 공식적으로 성균관 소속의 공노비였던 이들은 서울로 과거를 보러 온 유생들에게 숙식을 제공하는 일도 했는데, 급제자 발표 때는 물론 나중에 부임지에 따라가는 경우도 있었다. 글을 익힌 반인들은 한문으로 작품을 남기기도 했고, 반인을 위한 교육기관을 만들기도 했다. 반인이 사는 동네는 '반촌'이라 불렀다. 요즘으로 치면 범인 잡는다고 경찰이 함부로 들어갈 순 없는 곳이었다.

무엇보다도 반인은 다른 지역의 백정처럼 소를 잡고, 쇠고기를 판매하는 일을 했다. 그 판매점은 고기가 걸려 있다는 뜻에서 현방(懸房)이라 불렀다. 명목상 조선은 농경을 위해 소를 잡는 일이 금지된 터. 그래서 반인들은 소 잡는 데 따른 속전, 즉 벌금을 냈는데 이는 사실상 영업허가세로 작용했다.

이 책은 한반도에서 언제부터 소를 먹었는지부터 시작해, 고려시대 안향이 기부한 노비에서 기원한 반인들이 어떤 일을 했는 지 등을 옛 문헌을 근거로 상세하게 풀어나간다. 시대별로 반인들의 숫자, 해마다 조선 전체에서 잡는 소의 숫자 등도 문헌의 기록과 저자의 추정치를 제시하며 그 규모와 활동을 가능한 구체적으로 가늠하게 한다.

저자는 특히 반인들의 현방에서 거두는 속전이 삼법사, 즉 형조·한성부·사헌부 등 세 사법기관의 재정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게 된 구조적 상황을 비판적으로 살핀다. 이는 임진왜란·병자호란 이후 성균관의 재정이 무너진 과정과도 맞물린다. 책에 따르면 반인들은 빚에 시달리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했는데 한편으로 관련된 다른 사업권을 얻어내거나 집단 행동에 나서기도 했다. 도축을 멈춰 쇠고기 공급을 중단시키는 '철도'나 성균관 유생에게 밥을 안 주는 '궐공' 등이 벌어졌다.

본문만 500쪽이 넘는 두툼한 책이지만, 다루는 내용이 흥미로운 데다, 반인에 대한 사전 지식 없이도 따라갈 수 있게 전개된다. 고려말 목은 이색의 편지 등 우리네 쇠고기 사랑의 역사가 꽤 오랜 점을 알려주는 문헌들도 소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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