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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뉴요커에 소설 투고 이창동 "韓젊은세대 보수성향 놀랍다"

중앙일보

입력

미국 주간지 '뉴요커'가 이창동 감독의 단편 '눈 오는 날'을 6일 발행되는 최신호에 실었다. 온라인판은 지난달 말 이 감독의 관련 인터뷰와 함께 공개됐다. 사진 뉴요커 홈페이지

미국 주간지 '뉴요커'가 이창동 감독의 단편 '눈 오는 날'을 6일 발행되는 최신호에 실었다. 온라인판은 지난달 말 이 감독의 관련 인터뷰와 함께 공개됐다. 사진 뉴요커 홈페이지

소설가 겸 영화감독 이창동(68)이 미국 시사 주간지 ‘뉴요커’와의 인터뷰에서 최근 한국 젊은 세대의 정치적 보수성향이 놀랍다는 입장을 밝혔다.
‘뉴요커’는 최신호(6일 발행)에 올해 등단 40주년을 맞은 이 감독의 초기 단편 소설 ‘눈 오는 날’ 영어판 전문과 그의 인터뷰를 실었다. 지난달 27일 온라인에 먼저 공개된 인터뷰에서 이 감독은 “(이 소설 배경인) 1960년대 초반부터 80년대 후반까지 지속된 박정희‧전두환 군사독재 아래 한국이 급속도로 경제 발전을 이룬 수십년간, 민주화 투쟁을 주도한 집단은 대학생들”이라고 소개했다.
또 “가난한 농촌 집안의 딸들은 도시 공장에 돈을 벌러 가고 아들은 대학에 진학해 공부했다. 당시 대학생들은 가난한 부모와 저임금으로 일하는 누이들을 희생시키면서 공부했다는 사실을 자의식적으로 인식했다”면서 “그들이 당시 독재에 저항한 것은 사회적 불의에 민감한 젊은이다운 순수함 때문이지만, 또한 (가족의 희생에 대한) 부채 의식과 가난한 사람들의 목소리를 대변할 필요성을 인식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오늘날 한국 젊은이들이 정치적으로 보수적인 것을 지켜보는 것은 놀라운 일”이라고 했다.

6일 발행 시사주간지 '뉴요커' 최신호 #이창동 초기 단편소설·인터뷰 실려 #"군사독재 때 대학생이 민주화 주도… #요즘 젊은이들 보수성 지켜보며 놀라"

"잔혹한 시절, 존엄성 지키려는 개인 그려"

‘눈 오는 날’은 등단작 ‘전리(戰利)’(1983)부터 4년간 발표한 단편들을 모은 첫 단편집 『소지』(1987)에 수록된 작품이다. 데뷔 초 “분단 상황을 전후 세대의 새로운 감각으로 형상화한 작가”로 평가받은 그가, 첫눈 내리던 날 군부대로 면회 온 한 여공과 전날 총기 사고에 휘말린 대학생 김 일병, 목욕탕 잡역부 출신의 최 상병을 통해 민주화 운동 시기의 매카시즘과 계급 갈등 등 사회 분위기를 압축해서 담아냈다.

1987년 첫 단편집 『소지』 사진 문학과지성사

1987년 첫 단편집 『소지』 사진 문학과지성사

70년대 후반 20대였던 그의 군 복무 경험이 일부 토대가 됐다. 이 감독은 “군 시절 폭설이 내리는 밤에 야간 보초를 섰던 기억이 소설에 영감을 줬다. 시야의 모든 것이 흰 눈으로 덮인 채 철조망만이 남아있었고, 또 다른 군인과 내가 부조리극의 두 배우처럼 그 철조망을 지켰다. 아이러니하게도 우리 둘 사이에도 결코 넘을 수 없는, 보이지 않는 철조망이 있었다”고 돌이켰다.
소설에 등장하는 군대 내 사망 사건은 군부독재 치하의 희생자도 연상시킨다. 우찬제 서강대 국문과 교수는 『소지』에 수록된 해설에서 “이창동의 소설을 읽는다는 것은 반성적 공범 의식을 가지고 발본적 성찰 의례에 동참하는 일”이라고 해석한 바 있다.
이 감독은 “한반도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냉전 체제가 남아있는 곳이며 한국은 여전히 정치인들이 공개적으로 매카시즘적 주장을 하는 나라”라며 “J. M. 쿳시(노벨문학상을 받은 남아공 출신 호주 작가)의 소설 『야만인을 기다리며』에서 국가는 두려움을 이용한 내부 지배를 위해 국경 밖에 가상의 야만인을 만들지만, 한국에서는 핵무기로 무장한 진정한 적이 국경 바로 건너편에 존재한다. ‘눈 오는 날’에서 묘사하려 했던 것은 그러한 잔혹한 체제와 상황에서도 인간의 존엄성을 보호하려고 노력하는 한 개인이다”라고 말했다.

'박하사탕' 그 장면도…"영화는 문학보다 소통 어려워"

'박하사탕' 포스터. 민주화운동 시기부터 현대사를 관통한 개인들의 비극적 삶을 그린 작품으로, 배우 문소리(사진), 설경구가 주연을 맡았다. 사진 이스트필름

'박하사탕' 포스터. 민주화운동 시기부터 현대사를 관통한 개인들의 비극적 삶을 그린 작품으로, 배우 문소리(사진), 설경구가 주연을 맡았다. 사진 이스트필름

현재의 한국에서 35년 전 이 소설과 같은 작품이 나올 수 있느냐는 ‘뉴요커’ 질문에 그는 “분단 사실은 변함없다”면서도 “군대 문화가 많이 바뀌어서 같은 이야기를 쓸 수는 없을 것 같다”고 했다.
이 감독이 한국 현대사와 개인의 비극을 실패한 첫사랑 이야기로 풀어내 칸 국제영화제 감독주간에 초청됐던 영화 ‘박하사탕’(2000)에 소설과 비슷한 면회 장면이 나오기도 했다. 이 감독은 이 단편이 “첫눈 내린 날 실현되지 않은 데이트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면서 “휴대폰이 없던 시절 한국 젊은이들은 좋아하는 사람에게 ‘첫눈 내리는 날 만나자’고 데이트 신청을 하고 상대방이 나타날지 궁금해하며 첫눈을 기다렸다”고 말했다.
이 감독은 한석규 주연 영화 ‘초록물고기’(1997)로 연출 데뷔한 이후 소설보다 영화 작업에 매진해왔다. ‘오아시스’ ‘밀양’ ‘시’ ‘버닝’ 등 사회 문제와 인간의 존재론적 고민을 주로 영화에 담아왔다.
‘뉴요커’ 인터뷰에서 그는 영화감독이 된 이유는 소설가와 동일하다고 밝혔다. “외로움을 극복하고 누군가와 의사소통하려는 욕망 때문에 10대 때 처음 글을 쓰기 시작했고 바로 그 욕망이 나를 영화감독으로 만들었다”면서 “영화는 문학보다 소통하기가 훨씬 어렵다. 관객이 점점 더 오락을 위해 영화를 소비하기 때문이다. 영화를 만들 때 항상 새로운 이야기를 찾으려고 노력한다”고 말했다.
‘뉴요커’는 1925년 창간된 98년 역사의 시사 주간지로 특히 대중문화에 대한 심도 있는 비평, 정치‧사회 이슈 논평, 연재 시리즈로 유명하다. 정치 비평가 한나 아렌트가 나치 전범 아돌프 아이히만의 예루살렘 재판 과정을 기록한 명저 『예루살렘의 아이히만』도 ‘뉴요커’에 연재된 기사였다. 특히 소설 코너를 통해 신진 작가를 꾸준히 소개해왔다. 지난 1월에는 소설가 한강의 장편 소설 『희랍어 시간』(2011)의 일부 발췌문과 한 작가의 인터뷰가 소개되기도 했다.

미국 주간지 '뉴요커' 온라인판에 영어 번역본 전문이 공개된 이창동 감독의 단편 소설 '눈 오는 날'(Snowy Day). 사진 뉴요커 홈페이지

미국 주간지 '뉴요커' 온라인판에 영어 번역본 전문이 공개된 이창동 감독의 단편 소설 '눈 오는 날'(Snowy Day). 사진 뉴요커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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