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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덕노의 식탁 위 중국] 탕후루, 황제의 비약에서 사랑의 묘약으로

중앙일보

입력

탕후루. 사진 셔터스톡

탕후루. 사진 셔터스톡

중국 젊은이들이 좋아하는 거리 간식 탕후루, 요즘 우리나라에서도 인기가 높다. 우리 역시 10~20대들이 많이 찾는 곳에는 아예 탕후루 전문매장이 생겼을 정도다.

과일 사탕이라고 할 수 있는 탕후루는 꽤나 독특한 음식이다. 꼬치에 꿴 과일에 설탕 녹인 엿물을 입혀 굳혀 먹는 발상도 신선하거니와 달고나와 함께 우리한테 친숙한 설탕 뽑기의 달콤한 맛과 그 뒤에 이어지는 새콤한 과일 맛이 상큼하다. 그래서인지 중국뿐만 아니라 한국에서도 많은 사람이 좋아하는 것 같다.

탕후루는 중국에서 근현대에 들어와 유행한 거리 간식 같지만 사실은 역사가 꽤나 깊은, 뼈대 있는 식품이다. 게다가 단순한 심심풀이 군것질을 넘어 나름 상당한 의미도 있다.

탕후루가 얼마나 대단한 간식이었는지 그 비밀이 이름 속에 감춰져 있다. 탕후루(糖葫蘆)는 도대체 무슨 뜻일까?

중국어로 읽으니 우리한테는 별다른 느낌이 와 닿지 않지만 글자 뜻 그대로 풀이하면 엿물 입힌 표주박이라는 뜻이다. 한자로 당(糖)은 딱딱하게 굳은 설탕, 호로(葫蘆), 즉 중국어 발음으로 후루는 표주박, 조롱박이니 이런 엉뚱한 이름이 된다.

그런데 물 담는 바가지인 표주박에 왜 설탕 옷을 입혔다는 것일까? 의미도 이해하기 힘들지만 과일 사탕 꼬치에 왜 이런 얼토당토않은 작명을 했는지 그 내력이 궁금해지는데 탕후루의 원래 정체와 관련이 있다.

탕후루의 어원에 대해 분명히 밝혀진 것은 없다. 그래서 여러 어원설이 난무하는데 그중 하나는 과일을 꼬치에 꿴 모습이 마치 가운데가 움푹 파인 표주박을 닮아 생긴 이름이라는 설이다. 별다른 의미가 없는 해석이다.

또 다른 어원설도 있다. 표주박 모양의 도자기 그릇에 꿀물(蜜汁)이나 설탕물(糖汁)을 담아 끓인 후 과일을 찍어 먹은 것에서 비롯됐다는 것이다.

관련해 전해지는 이야기가 있다. 12세기 말, 남송 황제 광종의 애첩 황귀비가 이름 모를 병에 걸렸다. 음식을 소화하지 못해 고생하자 백방으로 약을 찾아 썼지만 소용이 없었다. 이때 어느 의원이 설탕 졸인 즙과 산사(山楂)열매를 함께 먹으라고 처방했고 그대로 따랐더니 과연 병이 씻은 듯이 나았다. 이후 처방전이 황실에서 비법으로 전해지다 훗날 민간에 알려지면서 지금의 탕후루로 발전했다고 한다.

얼핏 꾸며낸 이야기 같고 관련 내용을 기록한 문헌도 없지만 그래도 주목할 부분이 있다. 스토리의 사실 여부를 떠나 탕후루의 기원을 800년 전 송나라 무렵으로 볼 만큼 역사가 깊다는 것과 황실의 비약으로 처방했던 식품이라고 할 만큼 옛날에는 탕후루를 특별하게 여겼다는 점이다.

그래서 팩트 체크를 해 보면 탕후루가 중국 남송 무렵에 생겼다는 것은 사실이다. 탕후루라는 이름이 문헌에 처음 보이는 것이 13세기 중반이다.

광종 사후 약 반세기 이상이 지난 후로 당시 남송의 수도 항주의 풍경을 묘사한 『몽양록』이라는 문헌에 시장에 진열된 갖가지 식품과 물품 목록이 적혀 있는데 여기에 여러 다른 고급 간식과 함께 탕후루가 보인다.

짐작건대 황제의 비약이었던 탕후루 만드는 법이 민간으로 새어 나온 것 같은데 어쨌든 이 무렵 탕후루가 이미 시중에서 상류층 부자들이 즐겨 찾는 간식이었음을 알 수 있다.

반면 탕후루가 진짜 애첩을 치료한 황제의 비약이었고 상류층 부자들의 간식이었는지는 확인할 수 없다. 그러나 단정 지을 수는 없지만 탕후루 재료인 설탕의 역사와 산사 열매의 용도를 보면 매우 귀하게 쓰였을 가능성은 높다.

당송 시대는 중국에서 사탕수수를 이용해 설탕을 얻는 제당기술의 태동기였다. 기록을 보면 11~12세기 송나라에서는 지금의 스리랑카인 삼불제(三佛齊), 아랍인 대식국(大食國)에서 사탕수수를 들여오는 한편 여기서 초기 형태의 정제되지 않은 설탕인 흑당을 얻었다. 옛날식으로 표현하면 사탕수수의 한자표기인 감자(甘蔗)즙을 끓여 졸인 감자탕을 만들어냈다.

산사 열매를 찍어 먹는 설탕 졸인 물인 셈인데 천연 꿀보다도 더 달콤한 남방의 귀중품이었으니 어렵게 구한 만큼 필요할 때만 약으로 사용했다. 그래서 『본초강목』에도 설탕 졸인 물, 감자탕은 간을 따뜻하게 하고 조혈작용을 돕는 등 건강에 이롭다고 나온다. 설탕이 귀했던 시절이니 건강을 해치는 주범으로 생각하는 지금과는 해석이 완전히 다르다.

산사 열매 또한 그냥 과일은 아니다. 한방에서는 장의 기능을 바르게 해 소화를 돕고 복통에 효과가 있다고 했으니 옛날 중국에서는 소화제로 많이 먹었다. 송 황제 광종의 애첩 황귀비의 치료제로 설탕 졸인 물에 산사 열매를 처방했다는 이야기가 만들어진 것도 이런 배경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황제의 비약이면서 상류층의 고급 간식이었던 탕후루가 중국에서 민간에 널리 퍼진 것은 19세기 후반의 청나라 말이다. 설탕이 대중적으로 보급되면서부터다.

이랬던 탕후루가 현대에는 설탕의 약성 대신 달콤함이 강조되고 약용 산사나무 열매 또한 비슷하게 생긴 꼬마 사과를 비롯해 딸기와 포도, 키위 등의 과일로 대체되면서 이제는 연인들 사랑의 묘약으로 변한 것 같다.

윤덕노 음식문화저술가

더차이나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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