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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식장 아예 없는 중랑∙도봉구…애들장사 줄고 어른장사 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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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서울 중랑구에서 2008년 문을 연 한 웨딩홀 자리엔 지금은 주상복합건물이 들어서고 있다. 주차장까지 11개층 규모의 웨딩홀이 지난해 폐업하면서 중랑구엔 예식장이 한 곳도 남지 않았다. 한국예식업중앙회에 따르면 은평·도봉구 등 서울 내 6개 자치구에 예식장이 없다. 충북 제천에선 5층짜리 예식장이 있던 자리에 노인종합복지관이 들어서기도 했다. 15년간 예식산업에 종사한 정모(59)씨는 서울에서 3곳의 예식장을 운영하다 현재는 한 곳만 남았다. 정씨는 “결혼식 자체가 줄었고, 결혼한다 해도 친척이 많지 않아 식대 수입이 과거의 절반 정도”라며 “체감상 주변 10곳 중 8곳은 문을 닫았다. 예식장의 폐업 행진이 계속 이어질 것”이라고 토로했다.

저출산·고령화가 한국의 자영업 지형을 바꾸고 있다. 특히 지난해 사회적 거리두기 해제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영향권에서 벗어나자 자영업계의 구조 변화가 본격화하는 모양새다. 자영업은 일상과 밀접하게 연계되다 보니 자영업종별 증감은 사회구조 변화를 빠르게 반영한다.

3년 새 예식장 16% 사라져

2일 국세청 100대 생활업종 통계를 보면 이 같은 흐름이 뚜렷하다. 지난해 말 전국의 예식장은 750곳이다. 전년보다 33곳(4.2%) 줄었다. 3년 전과 비교하면 140곳(15.7%)이 사라졌다. 인구수가 급감하는 데다 결혼 기피 현상이 더해진 여파다. 지난해 혼인 건수는 19만1697건으로, 10년 전의 58.6%에 불과하다.

지난해 말 산부인과 의원은 1년 전보다 29곳 늘어난 1742곳이었다. 100대 생활업종 전체로 보면 이 기간 6.7% 증가했는데 산부인과 증가율은 1.7%로 평균에 한참 못 미쳤다. 고령의 산모가 늘어나고, 산부인과가 여성의원 역할을 하면서 그나마 감소는 피했다.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출생 최저, 사망 최다…장례식장 붐벼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24만9031명이 태어났는데 사망자는 37만2826명에 달했다. 출생아 수는 역대 최저지만, 사망자는 역대 최대다. 이에 따라 12만3800명이 자연감소했다. 1년 만에 전년도 자연감소 폭(5만7118명)의 2배 이상으로 늘었다. 인구구조가 그만큼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는 의미다.

이 때문에 장례식장은 예식장과 달리 호황이다. 한국장례협회에 따르면 2021년 1094곳이었던 장례식장은 지난해 6월 1107곳으로 늘었다. 2002년(569곳)과 비교하면 2배다.

최민호 장례협회 사무총장은 “장례식장이 일종의 혐오시설로 분류되다 보니 주민 동의 등 거쳐야 할 절차가 많아 늘어나기 어려운 구조인데도, 느는 추세”며 “장례식장·화장장이 상대적으로 부족하다 보니 서울·경기·부산 등 인구가 많은 지역은 이용자가 최근 급격히 증가했다”고 말했다.

사라지는 PC방, 폭증하는 골프연습장

지난해 3월 서울 종로구의 식당과 노래 등이 모인 골목. 연합뉴스

지난해 3월 서울 종로구의 식당과 노래 등이 모인 골목. 연합뉴스

저출산 장기화로 학생들이 방과 후에 찾던 시설은 사라지는 추세다. 이른바 ‘학생 타깃 3대 업종’(PC방·노래방·독서실)의 감소세가 특히 가파르다. 지난해 12월 기준 PC방은 8485곳으로, 전년(9265곳)보다 780곳(8.4%) 줄었다. 지난해 11월 PC방이 8645곳이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1달 만에 200곳이 사라졌다. 서울 관악구에서 PC방을 운영하는 김모(42)씨는 “주변 PC방 중 절반 이상은 문을 닫았다”며 “코로나19 영향에서 벗어났음에도 초·중·고 학생 손님이 줄어드는 속도가 하루하루 느껴질 정도”라고 말했다.

지난해 말 노래방은 2만7200곳으로, 1년 전(2만7713곳)보다 513곳(1.9%) 줄었고, 독서실은 이 기간 1171개가 사라졌다. 독서실의 감소율은 12.6%로 100대 업종 전체에서 가장 높다.

반대로 헬스클럽과 실내 스크린골프장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헬스클럽은 1년 새 1707곳(17%) 늘어 1만1759곳에 달했고, 스크린골프장은 1343곳(21.1%)이 더 생겨 7720곳으로 증가했다. 이른바 '100세 시대'에 맞춰 개인 건강을 챙기는 분위기가 퍼지고, 고령화로 골프와 같은 정적인 운동을 즐기는 수요가 늘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분유 대신 건강식품…“산업 틀 바뀐다”

저출산·고령화 영향은 자영업뿐 아니라 산업 전반에 미치고 있다. 경희대 고령친화융합연구센터에 따르면 매일유업은 분유 생산라인 일부를 성인용 건강기능식품을 만드는 설비로 전환했다. KB손해보험 등 금융업계에선 노인요양시설을 마련하는 등 요양업에 진출했고, 화장품 업계에선 피부 노화 방지를 위한 ‘시니어 뷰티’가 화두다. 연구센터는 고령층을 대상으로 하는 '실버 이코노미' 시장 규모가 2012년 27조3808억원에서 2020년 72조8304억원, 2030년엔 168조원으로 급팽창할 것으로 예측했다.

김영선 경희대 동서의학대학원 노인학과 교수는 “최근 어린이집을 노인요양시설로 바꾸겠다며 자문을 구하는 곳이 늘고 있다”며 “신체ㆍ사고 능력이 떨어지는 고령 노인을 돌보는 데 필요한 기구ㆍ노하우 등이 어린아이를 돌보는 것과 유사한 측면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이어 “인구구조가 바뀌면서 전반적인 자영업 구조와 소비재 등 산업의 틀이 바뀌고 있다”며 “전통적인 소비업종은 위축되고, 건강·교육·금융·레저 등 고령화 밀접 산업이 성장세를 보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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