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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하게 생겼는데 간판 떼라"…더는 못 참겠다는 '착한 가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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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부산 한 식당에 붙여진 착한가격 모범업소 현판. 중앙포토

부산 한 식당에 붙여진 착한가격 모범업소 현판. 중앙포토

세종시 조치원전통시장 내 한 분식점은 2020년 ‘착한가격업소’로 지정됐다. 이곳은 지난해 말까지 잔치국수 한 그릇을 4000원에 팔았다. 인근 다른 음식점보다 3000원 정도 쌌다. 하지만 현재 국수를 아예 팔지 않고 있다. 분식점 측은 “밀가루·식용유 등 각종 식재료비가 급등하면서 남는 게 없는 거 같아 메뉴에서 제외했다”고 했다. 세종시청 홈페이지에서 ‘착한가격업소’라고 검색하면 이 업소 주메뉴인 잔치국수는 3000원으로 돼 있다.

광주 동구 한 사우나 가격표에 목욕 이용료가 8000원으로 표기돼 있다. 이곳은 5000원 이용료로 착한가격업소에 지정됐다가 가격이 올라 취소됐다. 황희규 기자

광주 동구 한 사우나 가격표에 목욕 이용료가 8000원으로 표기돼 있다. 이곳은 5000원 이용료로 착한가격업소에 지정됐다가 가격이 올라 취소됐다. 황희규 기자

업주 "당장 내가 망하게 생겼는데…." 

광주광역시 동구 한 사우나는 지난해 7월만 해도 5000원 하던 요금이 점차 올라 현재 8000원이 됐다. 이 업소는 요금 인상이 문제가 돼 지난해 말 ‘착한가격업소’ 재지정 심사에서 탈락했다. 사우나 사장 김모씨는 “착한가격업소 간판을 다시 달려면 이용료를 5000원으로 내려야 한다”며 “당장 망하게 생겼는데 착한가격업소 ‘간판’이 무슨 소용이냐”고 반문했다.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물가 상승에 착한가게 위기

각종 서비스 요금 안정을 위해 행안부와 자치단체가 2011년 도입한 ‘착한가격업소’ 제도가 위기를 맞았다. 착한가격업소는 지역 평균가격보다 저렴하거나 가격 인하·동결에 나선 업소 등을 지자체별로 매년 한두 차례 심사해 지정한다. 지정되면 종량제 봉투 제공, 상하수도 요금 감면 등 혜택을 준다. 2일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전국 착한 가격업소는 지난해 말 기준 6146곳이다.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지자체는 올 상반기 재지정 심사가 끝나면 포기·폐업 등 이유로 착한가격업소가 6000곳 이하로 줄 것으로 예상한다. 광주광역시에서는 지난해 9월 기준 전체의 14% 정도인 28개 업소가 지정 취소됐다. 제주도도 지정 취소사례가 해마다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경우 31곳으로 늘었다. 광주시 한 자치구 관계자는 “고물가 시대에 가격을 올린 업소가 늘고 있다”며 “올해 지정 취소되는 업소는 지난해보다 더 많아질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김모(40대)씨가 11년째 '착한가격업소'로 운영 중인 경남 창원의 한 이발소. 커트 비용이 8000원이다. 사진 김모씨

김모(40대)씨가 11년째 '착한가격업소'로 운영 중인 경남 창원의 한 이발소. 커트 비용이 8000원이다. 사진 김모씨

착한가게들, 요금 올리거나 고심 중 

올해 전기료와 도시가스 요금 등 서비스 가격 결정에 직·간접적 영향을 주는 관리물가 품목 40개 가격이 급등했다. 지난 1월 기준 관리물가 상승률은 5.8%로 전체 소비자물가 상승률(5.2%)을 웃돌았다. 아직 간판을 유지하고 있는 착한가격업소는 대부분 가격을 올리고 있다. 전남 구례군 한 고깃집은 최근 비빔밥 가격을 8000원으로 묶는 대신 삼겹살 가격(150g)을 1만3000원에서 1만4000원으로 조정했다.

11년째 착한가격업소인 경남 창원 한 이발소는 8000원인 이발 요금을 9000원으로 올릴지 검토 중이다. 이 이발소 관계자는 “월 250~300만원 매출 중 가게 임대료와 공과금 등 100만원을 빼면 남는 게 별로 없다”며 “그렇지만 이발소를 찾는 어르신 얼굴 보기 미안해 차마 올리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서울 서대문 한 이발소도 사정은 비슷하다. 어려운 사정을 생각하면 가격을 올려야 하는데 그랬다가 단골이 떨어지면 어쩌나 고민이다.

정부와 지자체도 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새로운 업소 발굴에 나서는 한편, 소상공인 경영안정자금금리 혜택(2.8%)을 주고, 노후시설 개선사업도 지원하기로 했다. 행안부는 올해 착한가격업소 활성화를 위해 국비 15억원 등 52억원의 재원을 마련했다. 지원 비용도 업소당 평균 45만원에서 85만원으로 늘렸다. 행안부 관계자는 “고물가 시대에 서민경제가 안정화할 수 있도록 지자체와 협력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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