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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개탄 대책, 비웃기만 할 일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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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송인한 연세대 사회복지학 교수, 리셋 코리아 보건복지분과장

송인한 연세대 사회복지학 교수, 리셋 코리아 보건복지분과장

자살률이 급증하기 시작한 1997년의 김영삼 정부, OECD 국가 중 가장 높은 자살률을 기록하기 시작한 2003년의 노무현 정부, 연령표준화 자살률 인구 10만명당 35.3명으로 최고치에 이르렀던 2009년의 이명박 정부, 그리고 OECD 최고 자살률이 유지된 박근혜·문재인 정부와 현재 윤석열 정부까지, 대한민국 모든 정부는 높은 자살률에 대한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다. 물론 자살은 국내외 경제 상황, 사회복지안전망, 사회문화와 구조 등의 거시적 요인과 정신건강·인간관계 등 미시적 요인을 포함해 다양한 영향을 받으므로 정부만의 책임으로 단순화하는 것은 적절치 않을 수 있다.

그러나 국민을 보호하는 것은 국가의 존재 이유이자 근본적인 책임이다. 이 점에서 국가는 자살의 원인을 분석해 효과적인 개입 전략을 수립하고, 과학적 근거로 목표를 명확히 제시하고, 이에 대한 체계적 평가·관리를 지속하는 등 국가적 역량을 체계적으로 주도해야 한다. 이런 정책을 통해 정부가 국민 생명을 최우선으로 한다는 의지를 확고하게 선언해야 한다.

이에 따라 대한민국 정부는 2004년 제1차 자살예방 기본계획을 시작으로 자살 관련 종합 대책을 수립해 왔다. 2011년 국회를 통과한 자살예방법(자살예방 및 생명존중문화조성을 위한 법률)은 5년마다 정부가 기본계획을 수립할 것을 명시하고 있다. 전 정부에서 2018~22년 시행한 자살예방 국가 행동계획이 종료됨에 따라 올해 제5차 자살예방 기본계획이 수립된다.

자살 예방 위한 번개탄 관리 방안
일방적 비난만 할 일인지는 의문
접근 쉬운 ‘위해 수단’ 제한은 당연
생명 살리는 일은 국가 기본 책무

이와 관련한 제5차 기본계획안 공청회가 2월에 열렸다. 과거엔 관련 전문가 외엔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자살예방정책 공청회였건만 이번엔 의외의 일이 생겼다. 발표된 보건복지부의 계획안에 대해 “정부의 자살예방 정책이 고작 번개탄 금지냐”는 비판과 조롱이 정치권에서 나왔고, 일부 언론은 맥락을 뺀 채 기계적인 팩트체크를 통해 번개탄 생산금지가 대체로 사실이라고 확인하기도 했다.

공청회 현장에 직접 있었으며 오랫동안 자살예방정책을 살펴본 입장에서 살펴보니, 온라인 매체에서 기본계획의 앞뒤를 자르고 번개탄 금지만 강조하여 정부 정책을 비판한 데서 논란이 비롯된 듯하다. 잘못된 정책을 비판하는 것은 언론과 국민의 당연한 역할이다. 필자 역시 2004년부터 시행된 자살예방 기본계획이 목표 달성에 실패했으며, 정부의 정책 의지도 부족하다고 비판해 왔다. 그러나 비판은 사실에 근거해 이뤄져야 한다.

첫째, ‘번개탄 생산 금지’라고 알려졌지만, 정확하게는 전체 번개탄의 20% 정도인 인체 유해 산화형 착화제 사용 번개탄을 생산 금지하면서 친환경 번개탄 대체재를 개발한다는 게 실제다. 모든 번개탄을 없앤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며 가능하지도 않다.

둘째, 산화형 착화제 번개탄 생산 금지는 이미 2019년 결정되었으나 기술 부족으로 연기되고 있었다. 최근 통계를 볼 때 번개탄으로 인한 사망자 수가 증가하는 추세여서 필요한 조치라고 판단된다. 자살 위해 수단에 대한 접근 제한은 국내외 많은 연구에서 그 효과가 과학적으로 입증이 됐다. 이는 세계보건기구가 권장하는 중요한 정책이며 1차 기본계획부터 계속 다뤄진 대책이다. 자살예방법은 자살수단 통제를 국가 기본계획에 반드시 포함해야 하는 14가지 사항 중 하나로 명시한다.

셋째, 마치 번개탄 생산 금지만 정부 대책인 듯 일부 언론에서 과장했지만, 이는 위기 대응체계 구축과 정신건강 검진 주기 단축 등 109가지 대책 중 하나에 불과하다.

넷째, 번개탄 금지만으로 자살을 막겠느냐고? 이를 금지하면 다른 수단을 쓰지 않겠느냐고? 부분적으로 타당한 의문이다. 한 가지 수단에 대한 통제만으로 자살을 막을 수는 없으며, 풍선효과처럼 다른 수단으로 옮겨갈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접근이 쉬운 수단을 제한함으로써 충동적 순간을 넘기고, 제삼자가 개입할 시간을 벌어 자살을 줄일 수 있음은 여러 연구를 통해 증명된다.

다섯째, 응급 개입을 통해 자살 행동을 막음과 동시에 근본적인 삶의 환경을 바꾸려는 노력이 수반돼야 한다. 위해 수단 통제만으로 근본 문제를 해결할 수 없지만, 사회경제 문제 개선이라는 긴 시간이 걸리는 방법으로는 눈앞의 자살 행동을 막을 수 없다. 다차원적 정책을 동시에 추진하는 방법밖엔 없다. 인간 생명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으며 한번 생명을 잃고 나면 되돌릴 수 없기에, 가능한 모든 방법을 사용해야 한다.

정부의 정책 관점과 우선순위에 따라 변하는 정책들도 많지만, 정파와 이념을 넘어 모든 정부가 일관되게 노력해야 하는 정책이 있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자살률과 출생률에 관한 정책이다. 사는 것이 고통스럽지 않고(자살률), 다음 세대가 행복해질 수 있는(출생률) 사회를 만드는 것은 정부의 기본 책임이다. 가짜뉴스 때문일지언정 자살예방 정책과 정부 역할에 대해 이렇게 관심이 컸던 때는 없었던 것 같다. 그 관심이 당파를 초월한 생산적인 논의로 건강하게 이어지기를 바란다.

송인한 연세대 교수 사회복지학·리셋 코리아 보건복지분과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