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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미국 반도체 보조금 논란, 국내 경쟁력 높이는 계기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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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초과이익 공유 등 기업 경영 과도하게 침해 우려

미국, 동맹 한국의 호혜적 상생 기대를 감안해야

2년 전만 해도 한국 대기업의 공격적인 미국 투자는 한·미 동맹의 빛나는 상징이었다. 한·미 정상회담이 열릴 때마다 미국에 투자하는 한국 대기업은 박수를 받았다. 문재인 정부 시절인 2021년 5월 백악관에서 열린 정상회담에서 조 바이든 대통령은 삼성·현대차·SK 등 한국 기업인을 일으켜 세우고 “생큐, 생큐, 생큐”를 연발했다. 윤석열 정부 들어 지난해 5월 한국에서 열린 정상회담에서도 반도체의 삼성은 한·미 동맹을 기술동맹으로 업그레이드하는 민간 외교관의 역할을 했다. 미국은 제조 공정에 강한 한국 대기업의 투자로 자국 반도체 생태계를 강화하고, 한국은 핵심 고객사를 확보해 시장을 선점하며 미국 주도의 공급망에 올라타는 상호 보완적인 투자라고 여겨졌다.

하지만 최근 공개된 미국 반도체과학법의 보조금 지급 기준을 보면 혼란스럽다. 보조금을 받은 기업이 과도한 이익을 얻으면 초과이익을 미국 정부와 공유하고, 현금 흐름 등 상세한 재무계획을 공개해야 하며, 중국에서는 10년간 반도체 시설 확장을 할 수 없다. 미국 국민의 세금으로 390억 달러(약 50조원)의 반도체 보조금을 지원하는 만큼 미국 경제와 안보를 위해 필요한 일은 하겠다고 미국은 주장하지만 기업 경영의 자율성을 지나치게 침해할 우려가 있다. 극도의 보안 유지가 필요한 공정기술의 핵심이 노출될 수도 있다. 삼성전자 등 국내 기업들은 도널드 트럼프 못지않게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ke America Great Again·MAGA)’ 만들겠다는 바이든 정부의 자국 이기주의에 무방비로 노출됐다. 바이든도 결국 ‘점잖은 트럼프’일 뿐이라는 불평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니다.

정부가 적극 나설 필요가 있다. 경제와 안보가 한 몸처럼 움직이는 경제안보 시대라며 외교부와 산업통상자원부가 새 정부의 통상외교를 가져가겠다고 영역 다툼을 벌였던 게 불과 1년 전이다. 외교부와 산업부가 제 역할을 하고 있음을 제대로 보여줘야 한다.

중국과 미국 어디에도 휘둘리지 않도록 우리만의 반도체 경쟁력을 유지하는 것은 가장 핵심적인 과제다. 반도체 첨단 공정 기술 등 우리의 핵심 역량을 국내에 보전하는 종합적인 전략이 필요하다. 반도체 산업의 경쟁력 확보를 위해 국회도 반도체지원법 통과를 더 이상 지체하지 말아야 한다.

대기업의 대미 투자는 국내 일자리와 수출을 줄인다. 미국과의 ‘일자리 제로섬 게임’이 될 우려에도 불구하고 한국 기업이 대미 투자에 나섰던 것은 호혜적인 상생 가능성을 기대했기 때문이다. 말로는 동맹 중심의 공급망 재편을 내세우면서 미국이 자국 중심의 반도체 패권만을 추구하는 것처럼 비치는 건 바람직스럽지 않다. 그런 게 봉(鳳)이지 무슨 동맹이냐는 볼멘소리가 나오지 않도록 한·미 양국 모두 균형을 잘 잡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