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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조금·핵심장비 개발 투트랙…미국, 반도체 노골적 영토확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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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미국 어플라이드 머티어리얼즈(AMAT)는 지난달 28일(현지시간) 센튜라 스컬프타(Centura Sculpta) 패터닝 시스템’ 출시했다고 밝혔다. [사진 어플라이드 머티어리얼즈]

미국 어플라이드 머티어리얼즈(AMAT)는 지난달 28일(현지시간) 센튜라 스컬프타(Centura Sculpta) 패터닝 시스템’ 출시했다고 밝혔다. [사진 어플라이드 머티어리얼즈]

미국이 막대한 보조금을 통해 삼성전자·SK하이닉스·TSMC 등 반도체 제조 기업을 자국으로 유인하는 한편, 반도체장비 분야에서도 ‘영토 확장’을 노리고 있다. 제조뿐 아니라 설계·장비 분야에서도 미국 주도의 반도체 패러다임이 형성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2일 외신과 관련 업계에 따르면 미국 어플라이드 머티어리얼즈(AMAT)는 1일(현지시간) 반도체 칩 제조 장비 ‘센튜라 스컬프타(Centura Sculpta) 패터닝 시스템’을 인텔에 공급했다.이 기계를 사용하면 극자외선(EUV) 노광 단계를 줄여 반도체 제조비용을 줄이고, 기존보다 친환경적인 공정이 가능하다고 회사 측은 설명했다. 노광은 미세한 반도체 회로 패턴을 웨이퍼 위에 그리는 공정을 말한다. 블룸버그통신은 “이 기기는 노광공정에 들이는 시간을 줄여 준다”며 “ASML이 지배하고 있는 노광공정 시장에 변화를 줄 수 있다”고 보도했다.

EUV 노광장비는 7나노미터(㎚·1㎚는 10억분의 1m) 이하 첨단 공정에서 필수 장비로 꼽힌다. 지금까지는 네덜란드 ASML이 최첨단 미세공정에 필요한 EUV 노광장비를 독점 생산해왔다. 반도체 업계에서는 ‘ASML 장비를 얼마나 확보하느냐’가 큰 과제였다. 대당 2000억원 하는 가격도 가격이지만, 생산량이 연 40여 대에 그쳐서다. 소부장(소재·부품·장비) 업체지만 ‘수퍼을(乙)’로 불리는 이유다. 삼성전자가 보유한 EUV 장비는 TSMC의 절반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2020년과 지난해 두 차례에 걸쳐 네덜란드 에인트호번에 있는 ASML 본사에 직접 방문하며 장비 확보에 공을 들여왔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AMAT 측은 “더블 패터닝(기판에 원하는 회로를 식각하는 것) 기술을 통해 기존보다 웨이퍼당 50달러의 비용을 줄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매달 10만 개의 웨이퍼를 처리하는 라인의 경우 기존보다 2억5000만 달러(약 3300억원)를 절약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블룸버그통신은 “인텔이 AMAT의 새 제품을 채택했다”고 전했다.

반도체 업계에서는 ‘메이드 인 USA’를 강조하는 미국이 설계·제조부터 소부장까지 장악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익명을 원한 업계 관계자는 “미국 반도체과학법 가이드라인을 보면 노골적으로 미국에서 만들라는 식”이라며 “첨단 반도체 장비 기기까지 미국산이 늘어난다면 미국의 지배력이 더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여기에 미 정부가 초과이익 공유, 중국과 공동 연구 시 보조금 전액 반환 등을 포함한 반도체과학법 보조금 기준을 발표하면서 국내 반도체 업계는 진퇴양난에 빠졌다. 반도체·통상 전문가는 “기밀사항을 요구해 기업의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다”며 “정부는 더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고, 기업은 투자 계획을 조정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김양팽 산업연구원 전문연구원은 “미 정부는 ▶중국 견제 ▶자국 반도체 경쟁력 강화 ▶고용 증대라는 세 마리 토끼를 잡으려 한다”며 “그렇다고 보조금 신청을 하지 않으면 중국과 우호적 관계를 유지하겠다는 걸로 오해를 살 수 있는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이어 “후공정 시설 보조금 신청이 시작되는 6월 전 정부가 나서 규제를 막는 방안을 생각해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보조금 1억5000만 달러(약 2000억원) 이상 수령 기업은 초과이익을 공유(최대 보조금의 75%)한다는 항목에 대해서도 문제가 제기됐다. 김혁중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이는 사실상 보조금 혜택을 무효화할 수는 내용”이라고 꼬집었다.

김혁중 부연구위원은 “보조금을 포기한 채 미국에 투자하면 큰 이익을 내지 못할 것이고, 앞으로 어떤 구체적 조치가 나올지 모르니 한 번에 대규모로 투자하기보다 단계적으로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박재근 한양대 융합전자공학부 교수는 “필요하다면 윤석열 대통령도 나서서 강력하게 항의하고, 동시에 국내에서도 반도체 경쟁력을 높이는 투트랙 전략을 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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