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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보조금, 신청해도 안해도 고민…전문가 “尹 대통령도 나서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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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왼쪽)이 지난해 11월 차세대 전력 반도체 핵심 소재인 실리콘카바이드(SiC) 웨이퍼를 생산하는 미시간주 베이 시티 SK실트론 CSS 공장을 방문해 이 회사 지안웨이 동 최고경영자(CEO)로부터 생산 공정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로이터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왼쪽)이 지난해 11월 차세대 전력 반도체 핵심 소재인 실리콘카바이드(SiC) 웨이퍼를 생산하는 미시간주 베이 시티 SK실트론 CSS 공장을 방문해 이 회사 지안웨이 동 최고경영자(CEO)로부터 생산 공정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로이터

미국 정부가 초과이익 공유, 중국과 공동 연구 시 보조금 전액 반환 등을 포함한 반도체과학법(Chips Act) 보조금 심사 기준을 발표하면서 국내 반도체 기업들이 진퇴양난에 빠졌다. 반도체·통상 전문가들은 “기밀사항을 요구해 기업의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다”며 “정부가 보다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고, 기업은 투자 계획을 조정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2일 미 상무부와 외신 등에 따르면 이번에 발표된 반도체과학법 심사 기준은 공장의 장기간 운영 여부, 수익성 지표 제출, 경제적 약자 채용 계획 제출, 보육 서비스 제공 여부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중국을 겨냥한 가드레일(안전장치) 조항의 세부 규정은 이달 중 추가 공개할 예정이다. 법안은 527억 달러(약 69조원)의 재정 지원과 투자 세액공제 25%를 담은 법안으로 지난해 8월 발효됐다.

김양팽 산업연구원 전문연구원은 이에 대해 “보조금이라는 이름으로 미국 정부가 ▶중국 견제 ▶자국 반도체 경쟁력 강화 ▶고용 증대라는 세 마리 토끼를 잡으려고 한다”며 “신청 안 하면 중국과 우호적 관계를 유지하겠다는 걸로 오해를 살 수 있는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개별 기업은 운신의 폭이 좁다”며 “후공정 시설 보조금 신청이 시작되는 6월 전에 정부가 나서 나서서 대처 방안을 내놔야 한다”고 강조했다.

“필요하면 윤 대통령 협상에 나서야”

박재근 한양대 융합전자공학부 교수는 “필요하다면 윤석열 대통령도 나서야 하며 동시에 우리나라 내부에서 반도체 경쟁력을 높이는 투트랙 전략을 펴야 한다”고 말했다.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국내 기업이 보조금을 받는 과정에서 첨단기술이 노출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왔다. 김선우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제조 시설의 세부사항과 기술 역량이 공개되면 치명적일 수 있다”며 “향후 10년 동안 중국과 거래를 하지 못하는 등 자금 활용과 사업 확장에서 감시에 가까운 제한을 받을 수 있다는 것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김양팽 연구원은 보조금 1억5000만 달러(약 2000억원) 이상 수령 기업은 초과이익을 공유(최대 보조금의 75%)한다는 항목에 대해서도 “성공적인 투자로 귀결된다 해도 초과 수익은 상당 부분 반납해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혁중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발표된 내용이 예상보다 과도하다”며 “특히 초과이익 공유는 사실상 보조금 혜택을 무효화 할 수도 있다”고 꼬집었다.

초과이익 토해내고, 기술 노출 위험까지 

문제는 이런 미국의 자국 중심주의 기조가 계속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이승훈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미국은 자국 내 투자를 유치해 미국 고용에 긍정적 효과를 내려는 것”이라며 “정권이 바뀌어도 비슷한 정책이 유지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권석준 성균관대 화학공학과 교수는 “올해 역시 반도체 경기의 하강 국면이 예상돼 대미 협상에서 더 불리하다”고 말했다.

이 같은 조항에 대해 미국 내에서도 비판적인 견해가 나왔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사설에서 “(반도체 회사들은) 진보적 사회 정책의 하인이 될 것”이라며 “비싼 생산비용을 만회하려고 보조금을 지급한다며 기업에 비용을 전가하는 것은 모순”이라고 지적했다.

삼성전자는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에서 170억 달러(약 22조원)를 투자해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공장을 짓고 있다. 사진은 삼성전자 테일러시 파운드리 공장 부지. 삼성전자=연합뉴스

삼성전자는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에서 170억 달러(약 22조원)를 투자해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공장을 짓고 있다. 사진은 삼성전자 테일러시 파운드리 공장 부지. 삼성전자=연합뉴스

전문가들은 기업들이 현실에 맞춰 투자 계획을 수정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미 정부가 발표한 지원 비율로 단순 계산하면 삼성전자의 경우 신청 시 텍사스주 테일러에 투자하는 170억 달러(약 22조원)에 대해 직접 보조금 8억5000만∼25억5000만 달러(약 1조1000만~3억4000만원), 대출과 보증을 포함해 59억5000만 달러(약 7조8000만원)까지 지원받을 수 있다.

김혁중 부연구위원은 “보조금을 포기한 채 미국에 투자하면 큰 이익을 내지 못할 것이고, 앞으로 어떤 구체적 조치가 나올지 모르니 한 번에 대규모로 투자하기보다 단계별로 나눠야 현실적일 듯하다”고 말했다. 중국 투자에 대해서는 “추가 라인 증설이나 신규 공장 건립은 하지 않는 게 낫다”고 덧붙였다.

“중국 추가 라인 증설 않는 게 나아”

권석준 교수는 “미국에서의 투자와 반도체 생산이 중국과 분리된다는 것을 가정해 투자 계획을 수정해야 한다”며 “미국에 대한 대규모 투자는 당장의 수익 확보나 비용 절감보다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를 기반으로 미국의 주요 팹리스(반도체 설계) 기업들과 관계를 강화할 기회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삼성전자는 미국에 텍사스주 오스틴에 파운드리 공장을 운영하고 있으며 테일러에 제2파운드리 공장을 짓고 있다. SK하이닉스는 미국에 후공정 공장을 세울 계획이다. 중국에는 삼성전자의 낸드플래시 공장(시안)과 후공정 공장(쑤저우)이 있다. 삼성전자가 시안에서 생산하는 낸드플래시는 전체 물량의 40%를 차지한다. SK하이닉스는 다롄에 낸드플래시 공장, 충칭에 후공정 공장, 우시에 D램과 8인치 파운드리 공장을 두고 있는데 D램의 절반, 낸드플래시의 20%를 이곳에서 생산한다.

신청 안 해도 미 당국 설득 부담  

업계는 보조금 신청 계획에 아직은 말을 아끼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면밀히 검토하겠다는 말 외에 현재 어떤 얘기를 할 수 있겠느냐”며 난색을 보였다.

김선우 연구원은 “삼성전자의 경우 보조금 활용을 전제로 미국 내 D램 생산도 가능한 상황이었지만 정보 공개 우려, 초과이익 반납 가능성 등을 고려하면 고수익성 제품 생산을 기피할 가능성이 커졌다”고 내다봤다. 업계에선 SK하이닉스의 경우 보조금 신청 여부를 더 신중하게 고민할 것으로 봤다. 다만 업계 관계자는 “만약 신청하지 않는다면 단지 중국 사업을 이어가기 위해서가 아니라는 점을 미국 정부에 이해시켜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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