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 투사’로 불리는 스웨덴의 기후활동가 그레타 툰베리(20)가 1일(현지시각) 노르웨이 오슬로에 있는 정부청사 앞에서 시위를 하다 경찰에 연행됐다. 그가 시위에 나선 건 석탄화력발전소 건설에 반대하거나 정부에 기후 대응을 촉구하려는 목적이 아니었다. 친환경 에너지원인 풍력발전소 가동을 막기 위해서였다.
세계적인 기후투사는 왜 ‘친환경’이라는 이름에 맞섰을까. 외신 보도에 따르면, 툰베리는 이날 노르웨이 중서부 포센 지역에 있는 풍력발전소의 철거를 촉구하는 시위에 참여했다. 지난달 23일부터 시작된 시위에서 기후활동가들은 “순록 목초지에 들어선 풍력발전 단지가 원주민인 사미족의 고유한 순록 방목 방식에 악영향을 끼친다”고 주장하면서 가동 중단을 요구했다.
시위대는 재무부와 에너지부, 기후환경부 등 일부 청사 출입구를 점령했고 이 과정에서 경찰과 마찰을 빚었다. 툰베리는 출입구를 점거하다가 경찰에 의해 끌려나갔다. 테르예 아슬란드 노르웨이 에너지 장관은 출입구를 막은 시위대의 영향으로 이날로 예정됐던 영국 방문 일정을 연기했다.
풍력 터빈을 둘러싼 사미족과 발전소 측의 갈등은 오랫동안 계속됐다. 사미족은 북유럽 지역에 사는 유목 원주민으로 6만 5000명가량이 노르웨이에 터를 잡고 있다. 이들 중 상당수는 순록을 방목하면서 생계를 유지해 왔다. 그러던 중 사미족의 거주 지역에 두 개의 풍력발전소가 건설되면서 갈등이 시작됐다. 151개의 터빈으로 구성된 풍력발전소는 2019년과 2020년에 각각 가동되기 시작했다.
사미족은 풍력터빈이 순록의 이동 경로를 방해할 수 있다며 건설 업체를 상대로 소송을 벌이는 등 거세게 반발했다. 이에 노르웨이 대법원은 2021년 “일부 풍력발전 터빈이 국제적 협약에 따른 원주민들의 고유 권리를 침해한다”며 사미족의 손을 들어줬다. 하지만, 풍력발전 단지는 여전히 가동되고 있다. 툰베리는 로이터 통신에 “원주민의 권리는 기후 행동과 동반돼야 한다. 일부 사람들의 희생으로 기후 행동은 일어날 수 없다. 그렇다면 그것은 기후 정의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친환경 에너지원인 풍력은 왜 ‘녹색 갈등’ 일으키나
풍력 발전은 태양광과 함께 녹색 에너지 전환의 핵심축으로 꼽힌다. 연료 없이도 바람만 있으면 전기를 만들 수 있고 온실가스도 배출하지 않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재생에너지 국가인 노르웨이도 지난 10년간 풍력발전을 10배가량 늘렸고, 현재 전체 에너지원의 6.5%를 풍력이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풍력 발전은 건설과 운영 과정에서 이른바 ‘녹색 갈등’을 종종 일으킨다. 건설 과정에서 산림 등의 환경을 훼손하거나 지역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이다. 풍력발전기의 블레이드에서 발생하는 소음으로 인해 주민과 마찰을 빚는 경우도 많다.
국내에서도 육상풍력과 해상풍력 모두 주민·환경단체와 갈등으로 인해 확대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국내 최대 육상풍력발전 밀집 지역인 경북 영양군에서는 AWP풍력발전단지 건설을 놓고 논란이 몇 년째 이어지고 있다. 지역 환경단체에서는 “건설 예정지가 멸종위기 1급인 산양은 물론 삵, 담비 등이 서식하는 백두대간이기 때문에 환경이 훼손될 수 있다”며 반대한다.
2030년 탄소중립을 목표로 내건 제주도도 해상풍력 설치를 놓고 갈등을 빚고 있다. 환경 운동가들은 “제주 남방큰돌고래의 서식지에 해상풍력 발전단지가 생기면 이동 경로가 막히는 등 서식 환경이 악화된다”는 이유로 사업 철회를 요구하고 있다. 국제적 멸종위기종인 남방큰돌고래는 국내에서는 유일하게 제주 연안에 약 120마리가 살고 있다. 어민들은 “마을 어장이나 양식장에 피해가 갈 수 있다”며 해상풍력 설치를 우려한다.
서재철 녹색연합 전문위원은 “풍력은 대규모로 진행되는 개발 사업이기 때문에 지금처럼 추진된다면 생태계 파괴 논란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며 “마을과 소통하고 주민 수용성을 높이는 방식으로 지속가능한 풍력 발전을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